그동안 잘 먹고 잘 살았네
회사에서 등 떠밀리면 나가야 하는 날짜를 기다리는 동안 내 자존심 상한 문제보다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 것 인가’라는 현실적인 문제의 답을 풀기 위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자존심을 세우면서 버티기에는 내 통장에 남은 돈 액수가 내 자존심과 그동안의 누렸던 삶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내 소비 패턴 아니 삶의 패턴을 바꿔야 한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기면서 소비하고 지출한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한 일들이 아님을 알게 된 순간 멘붕이 온다.
내가 당장 포기해야 하는 사치품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동안 돈을 자유롭게 쓰면서 신경 안 쓰고 살았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다.
그야말로 그동안 잘 먹고 잘 살아온 것이다.
감사해야 했는데 만족스럽지 않다고 더 많이 벌고 지출해야 한다고 날 안달 복걸 했으니 참 내가 안쓰럽다.
사치품 하나:
내가 요즘 애정하는 브랜드는 몰튼 브라운이다. 아침에 사용하는 샤워젤은 감미로운 향으로 내 코를 자극하며 비몽사몽인 나한테 잠에서 깨라고 부드럽게 속삭인다. 하루의 일과 시작이 항상 에너지 넘치고 아름다운 향과 함께 하니 아침에 일어나는 게 좋아졌다. 이렇게 여유가 있는 아침 준비 시간을 즐기는 호사스러운 시간은 나에게 더는 허락이 되지 않을 거다. 앞으로는 고급 목욕제품에서 평범한 제품으로, 우아한 향을 맡으면 시작했던 하루를 지긋이 특별하지 않은 향과 시작을 해야 한다.
사치품 둘:
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내 몸과 마음을 다정하게 보살펴 주기 위해서 시작한 개인 요가 수업. 우아하게 늙어가기 위해서 시작한 수업과도 이제 (당분간) 이별이다.
사치품 셋:
청소 도우미분과도 결별을 선언했다. 독일은 인건비가 너무 비싼 곳이다. 가격이 비싸다고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받는다는 보장이 없는 이곳. 하지만, 여러분과 만남 이후, 드디어 만족도가 높은 청소 도우미 업체를 만났는데 역시나 지금 상황에서는 나에게는 사치다. 이제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남는 것은 시간뿐이니 청소는 내 몫이다.
인생은 정말 한 치 앞도 모르는 일이다. 내 밥그릇이 빼앗기기 전에는 월급의 소중함을 몰랐고, 내가 편안하게 걱정 없이 살았음을 몰랐다.
이제 하고 싶은 일들을 다 못 하고 살 것이라는 생각에 지금부터 마음이 괴로워진다. 이제 정신을 바짝 차려야 살아남을 수 있는데 아직 덜 정신 차렸나 보다.
잠시, 과거의 나는 잊어버리고, 간절함만 남은 현재에 집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