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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Feb 04. 2023

가까이 앉아 귓속말로 전해주는 이야기 12

진로



밤이 깊었다.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다.

모두 가까이 모여 체온을 나누자.


드라마였다.

TV 드라마.

제목은 '내일은 사랑' 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꽤 예전 작품이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지금은 세계적인 스타가 된 이병헌 배우가 건축과 학생으로 등장해서, 열연을 했다.

드라마 '내일은 사랑'의 신범수(이병헌) 역할 소개. 건축과 2학년생.


그래, 맞다. 나는 건축과에 진학하고자 하는 꿈을 드라마를 보고 키웠다. 디자인/설계를 하고, 모형을 제작하며 학교를 다니는 드라마상의 건축학과 학생을 보고, 건축이 주는 매력을 느꼈다.

하지만 사실 제대로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지는 알지 못했다. 당연하지. 드라마에 나오는 건 정말 파편적인 모습이고, 실제로 무슨 공부를 하고, 졸업 후 어떤 직업을 택해 어떤 인생을 살 수 있는지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건축가'라는 직업과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해 줄 스승을 만나지 못했음은 당연하다. 더군다나 나는 그 드라마를 볼 당시에 꼬꼬마 어린이였다. 기억이 미화되고 조작된다는 것도 몰랐다. 그냥 막연한 동경(?)만 가지고 있던거다. 당연하게도, 그 당시에는 변변한 진로 상담 따위도 없었고, 도움을 줄 만한 인터넷이라는 환경도 존재하지 않았으니 말 다했지.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에 대한 고민은 단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


결국 나는 고교 장래희망란에 '건축가'를 써넣었다.(대참사)

1학년 때, '프로그래머'를 써넣은게 킬포 (모든 건 예정되어 있던건가)

 

이과를 선택했고, 공대 '건축학과'로 진학했다. 이제와 이렇게 말하면 참 우습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문과'에 가까운 인간이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이런저런 생각하는 것(공상), 결이 맞고 지적인 사람들과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글을 쓰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고. (당시 적성결과표를 다시 꺼내봐도, 문과형 인간이었던 것이 명백한데, 나는 꾸역꾸역 우겨서 '건축학과'에 진학했다.)

적성검사 결과가 너무나도 명백한데, 나는 외면했다.


심지어 클럽활동도 '문학연구부'를 했었다. 나는 도대체 어떤 생각이었던거지.


내가 이전 글에서 몇번이고 재차 이야기한,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이고, 어떨 때 행복을 느끼는지' 나는 제대로 고민하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문과형'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공대'에 진학하게 되었다.


'건축학'이라는 학문 자체는 공대에 속해있지만, 문과에 가까운 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학문에 감성을 들먹이는 것이 우습긴 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그 학문에 끌렸던 걸까.


결국 대학시절 '건축기사' 까지 취득했지만, 건축은 생각만큼 낭만적인 학문이 아니었다. 나는 길가에 있던 수많은 건설 현장의 건축 기사분들처럼, 현장 기사로 일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원하는 삶은 그게 아니었다. 머릿속 상상력을 표현하고 실물로 구현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설계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재능도 찾지 못했다. 결국, 건축은 내 길이 아니었다. 망했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환상 속에 살아왔던 결과였다.

졸업반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주변 친구들에 휩쓸리듯 건설회사에 지원했다. 하지만 고민이 됐다. 대부분의 건설사는 신입을 뽑으면 현장기사로 투입했는데(그게 당연하다) 나는 현장 기사 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일을 하면 행복할까? 나는 어떤 사람이었지?


당시 우연한 기회로, 건설회사와 동시에 'S'사에 지원하게 되었다. IT서비스 업체였다. 응? 갑자기 IT? 나도 당황스럽다. 나는 프로그래밍도 건축 처럼 구조를 설계하고 쌓아나가 실물을 구현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했고, 그 당시에 유행이던 건축 IoT를 실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정말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뛰어들었다. 당시 리쿠르터로 찾아온 선배도, 그 생각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고, 나는 납득했다.


기술과 기능은 학습을 통해 습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에 해당 회사에서는 비전공자에 대한 교육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었다. (실제로 나는 수개월 동안 강한 교육을 받고 실무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입사 과정에서 그 선배 이외에 누구의 조언도 듣지 못했고, 책을 통해 깊게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무지했다. 나는 그렇게 IT회사에 입사했고, 'S'사에서의 시간이 흘러갔다. 좋은 사람들을 소수 만났다. 물론 배우고 성장하려고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긴 시간을 들여,

재미도 없는 이야기를 왜 이렇게 길게 하냐면,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에 대한 고민을 스스로 깊게 하지 못했고,
그래서 그런 어리석은 결정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고민과 후회의 과정을 거쳤다. 일하면서도 매번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었다. 그건 실패한 결정이었다.


그래서 회사를 옮기기로 결심했다. 'S'사에서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 안정적으로 업무를 진행할 수 있었고, 진급도 무난히 잘 하고 있었지만, 지금의 일로는 결코 성장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일하던 선배들은 이직과 도전은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존경할 만한 사람은 찾지 못했다.)

무엇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깊게 고민해본 결과였다.

나는 'K'사로 이직했다.


옮기며 많은 경험을 했다.

나는 'K'사에서 정말 많이 깨닫고 성장했다. 180도 바뀌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아니다, 나는 나시 태어났다.

('S'사에 계속 있었더라면 굉장히 불행한 인생을 살았겠구나. 생각만해도 무섭다.)

정말 감사하게도, 나는 지적이며 친절하고, 늘 노력하는 훌륭한 동료들과 함께 지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인생의 의미도 배울 수 있었고 , 일이란 무엇인가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내가 모든 글에서 이야기 했듯,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기 위해 꾸준히 고민하라.

어떤 사람과 어울릴 때 즐거운지, 어떤 것을 할 때 행복을 느끼는지 잘 생각해보라.

그러려면 계속 도전하고 실패해야 한다.

그래야 경험치가 쌓이고 자신만의 기준과 원칙, 안목이 생긴다.


마침내 판단이 섰다면, 밀고 나가는거다.

후회할 수도 있지. 하지만 그 후회조차도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깨달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라. 그게 당신의 진로이자 커리어가 된다. 물론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수는 없다. 하고 싶은 일도 '직업'이 되는 순간 싫어질 수도 있을거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적어도 '행복해 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잘 못하고 싫어하는 일을 하는 것보다는 반드시 낫다.


하고 싶은 일은, 스스로 노력을 할테니 잘 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최대한 많이 경험하고(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실패하라.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의견을 듣자. 대화하자.

독서하고, 공부하고, 찾아보자.

그렇게 꾸준히 고민한다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그게 맞는 커리어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혹여 잘못된 선택이면 뭐 어때? 또 다시 조정해서 도전하면 된다.

겉만 번지르르한 '직장' 타이틀을 찾지 말고, 평생에 걸친 '직업'을 찾자.


나는 당신을 믿는다.

당신은 잘 할 수 있다.


당신은 어떨 때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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