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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Apr 13. 2023

멀티버스는 존재할까?

상호 유사성을 띠는 평행우주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가 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7개 상을 휩쓸었다. 이미 많이 우려먹어 식상해진 '멀티버스'를 새로운 시각과 구성으로 화면에 펼쳤다. 나에겐, 'B급 감성'이나 '병맛'에 가깝게 와닿았다. 보는 내내 '어? 이게 뭐지?'라고 당황하게 만들며, 나를 시종일관 스크린 앞에 붙들어놓았다. 이런 신선한 시도는 언제나 매우매우 환영이다.


마블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선, 이런 식의 '멀티버스'에 대한 궁금증이 많다.

정말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어떤 식일지 등등.


혹시 멀티버스가 존재한다면 꼭 같은 시간에 병행하여 존재해야만 할까?

하나의 타임라인위에 동일한 내용이 반복된다면, 그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상호 유사성을 멀티버스로 본다면 어떨까. 시간이란게 결국 인간 관점이니까. 꼭 평행우주가 아니더라도 과거에서 유사점을 찾아낸다면 그걸 멀티버스가 존재하는 근거로 삼아보면 어떨까 싶다. 비슷한 것으로 'Parallel Life', 즉 ‘’평행이론‘ 이라는 가설이 있다. 이 주제로 '평행이론' 이라는 제목의 한국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평행이론


'과거의 일이 반복되는 것을 멀티버스로 보자' 는 생각이다.

그 이론 하에서 아래와 같은 궁금증을 미리 찾아본다면, 미래에 닥칠 어려움을 사전에 예상, 방지할 수 있다. 평행우주안에서 어차피 사건은 유사성을 띠고 발생할테니.


나라가 망해가는 과정이 있을까?


망한 국가의 사례에서 비슷한 내용(평행우주)을 찾는다면, 혹시 모를 어려움을 미리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세계 여러 '망한 나라‘의 과거 사례를 레퍼런스로 찾아보기로 했다.


찾아보니, 망해가는 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더라.

정리해본다.


1. 권력과 재물을 탐한다.

왕과 왕비는 나라의 재산을 개인 돈인 듯 착복하여 각종 사비로 지출하였다. 특히 왕비는 국부를 멋대로 탕진하며 낭비를 일삼았다. 당시 구하기 힘든 마차 등을 비싼 값을 주고 들여오는 등 사치를 저지르기도 하였다. 표범 수십마리의 가죽으로 만든 양탄자 등을 수입하여 장식했다. 미신을 좋아해 각종 의식 등을 비싼 값을 내며 매주 벌였다. 궁궐 안에서 말이다. 그 부족함을 충당하기 위해 매관매직을 하여 국가기강을 문란하게 하였다.



2. 주변 인물로 요직을 채운다.

왕비는 자신의 친인척과 지인들을 국가 주요 요직과 지방 관리에 앉히고 탐관오리가 되어도 방관하였다. 친인척의 기세는 하늘을 찌르고 부정부패는 이루 말할 수 없어,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왕비의 친인척 중 하나는 국가에서 군인에게 지급해야 할 돈을 착복하고, 급료로 지급할 쌀에 모래를 섞어 주는 등 악행을 일삼았다. 결국 군인들이 들고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3. 무속에 의지한다.

왕비는 무속에 빠졌다. 나라의 재산을 탕진하고, 무속인을 궁 안에 들여 막강한 권력을 주었다. 무속인의 지인들이 주요 보직에 앉아 각종 악행을 일삼았지만 외면했다. 국가의 중요한 정책 등 여러가지 사안을 무속인에게 결정하도록 하였다. 그 꼴을 보다 못한 충신 하나가, 목숨을 걸고 아래와 같은 의견을 올렸지만 묵살당했다.


신이 억만 백성의 입을 대신해 자세히 아룁니다.
정사를 전횡하고 임금의 총명을 가리며,
신령의 힘을 빙자해 임금을 현혹시키고 기도한다는 구실로 재물을 축내며
요직을 차지하고 농간을 부린 요사스러운 무당에 의해
온 세상 사람들이 그의 살점을 씹어 먹으려고 합니다.

저 극악한 행위가 아주 큰 데도 문책하지 않으며
마치 아끼고 비호하는 것처럼 하니 백성들의 마음이 어찌 풀리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빨리 상방검으로 죄인을 주륙하고
머리를 도성문에 달아매도록 명한다면
민심이 비로소 상쾌하게 여길 것입니다.

- 1894년 7월 5일


왕비는 국가의 주요 산맥 일만 이천 봉우리마다 쌀 한 섬, 비단 한 필, 돈 천 냥을 바치는 제사를 계획했으며, 궐내에 무속인들을 불러들여 굿판을 자주 벌였다. 또한 매일 백미 500석으로 지은 쌀밥을 강에 뿌리려고 한다는 제보도 잇따랐다. 그것은 국민의 혈세. 나라의 백성들은 실제로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무속인은 왕과 왕비의 총애를 받았다. 왕과 왕비는 그녀에게 커다란 사당을 지어주었다. 백성들은 먹고살기도 힘든데, 도성 내에 큰 공사를 일으킨 것이다. 이미 나라 살림은 거덜난 상태였다. 혈세를 쥐어짠 꼴이다. 무속인은 자신을 관우의 딸이라고 지칭했다. 그래서 사당을 ‘북관왕묘’로 불렀다.



4. 외세에 의지한다.

위에 이야기 한 것처럼 나라가 엉망인 상황. 지방의 탐관오리는 자기들 배를 채우기 바쁘고, 국가의 주요 보직은 왕과 왕비의 친인척과 지인들이 모두 해먹고 있는 상황. 결국 먹고 살기 힘들어 백성들은 들고 일어난다. 민중봉기.

왕과 왕비는 궁을 버리고 도망친다.

왕과 왕비는 반성하고 국민을 위해 개혁하길 원했을까?


아니다. 왕과 왕비는 청나라에 도움을 요청한다. "반란이 일어났네요, 어서 군대를 끌고 들어와 우리 국민들을 해치워주세요."라고. 청나라의 힘이 빠지자 그 다음엔 결국 러시아에 의지한다. 그 과정에서 외세들은 무혈입성할 수 있었다. 봉기한 농민군을 제압하려고 일본군을 끌어들여 개틀링건(기관총)을 국민들에게 난사하도록 지시한 사람은 누구인가. 러시아가 일본에 패하고 나라는 일본에 넘어가고 말았다.

왕에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생각은 없다.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더더욱 없다. 국민이 왜 화가 나고, 바꾸려고 하는지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자신들의 안위와 권력, 재산을 이어가는 것에만 몰두한다. 소중한 건 오직 내 왕위뿐.



5. 글로벌 호구가 된다.

나라가 그 꼴이 나자, 주변국들이 호구로 보기 시작한다. 호시탐탐 이권을 챙기려고 한다.

예를 들어 이런 식으로 당하곤 했다.

왕은 나라를 제국으로 칭하고(꼴은 엉망인데, 그냥 스스로 그렇게 부르기로 한다) 해군 전력을 강화한답시고 전함을 수입한다. 거액을 들인 전함이 입항하는 장면을 본 내외 귀빈들과 열강의 외교관들은 너무 민망해서 비웃음을 참지 못한다. 왜냐면, 그 배는 전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국이 석탄 운반선으로 쓰다 버린 선박을 일본이 구입해서 조금 손본 후 비싼 값에 떠넘긴 것이다. 일본은 자신들이 배를 산 가격의 두배를 넘게 받고 팔아치웠다. 배의 가격은 나라 1년 예산의 10%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이런 식으로 주변 국들에게 소위 '눈탱이를 맞는' 일이 잦아진다.


당시 궁내 의사로 재직했던 리하르트 분쉬의 서한을 살펴보자.

이 나라 정부는 ..... 유치한 일에 수천 냥을 바치니 계산능력이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나라가 놀랍게 메말라버렸고, 남부 지방에서는 세금이 혹독하다고 폭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도 포대가 몇 개 달린 낡은 일본전함을 사들일 수백만 마르크는 있는 모양입니다. 얼마 전에는 궁중에서 영사기를 샀는데, 신품이라고 4,000마르크를 주었다지 뭡니까. 몇 년 전 프랑스 파리에서 500프랑밖에 안 하던 낡은 것으로, 램프도 없는 망가진 기계였는데 말입니다. 거의 매일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하는 충고는 받아들이지 않고, 닥치는 대로 사기꾼에게 걸려듭니다.

백성들은 굶어 죽고 있는 마당에, 대체 영사기가 왜 필요했던 걸까. 이런 식으로 낭비된 국민의 세금이 얼마나 많았을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6. 열강의 전쟁터로 전락한다.

결국 주변 국들의 힘 싸움에 제대로 끼어보지도 못하고, 전쟁터를 내주는 처지로 내려앉는다. 전쟁은 자기들 나라에서 해야 할 터인데, 엉뚱한 호구국에서 총을 쏘고 싸우는 것이다. 청일, 러일 등등. 그 싸움의 끝에 결국 나라는 주변 외세에 통채로 넘어가게 된다. 불공정한 조약을 맺고 말이다. 조약의 내용을 살펴보자.


한일협상조약 (1905년 11월 17일)

제1조

일본국 정부는 동경에 있는 외무성을 통해 금후 한국의 외국과의 관계 및 사무를 감리 지휘할 수 있고 일본국의 외교대표자와 영사는 외국에 있는 한국의 신민 및 이익을 보호할 수 있다.


한일병합조약 (1910년 8월 22일)

제1조

한국 황제폐하는 한국 전부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 황제폐하에게 양여한다.




예상했겠지만,

위 모든 내용은 조선의 황제 '고종' 과 '민비'의 이야기다.


민비의 일가 친척은 '민씨척족정권'이라고 불리며 매관매직, 부패, 국고낭비 등을 일삼았다. 민중의 불만은 극에 달해 결국 임오군란으로 폭발한다. 1년 넘게 체납된 군대의 월급인 쌀에 모래를 섞고, 그조차 썩은 쌀을 제공하는 등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당시 군량미 담당은 민비의 친척 민겸호 였다.


2번의 상소는 '지석영'이 올린 상소문으로 그는 목숨을 걸고 충언을 했지만 무시당했다.

민비는 무속에 빠져있었다. 궁 내에서 굿판이 이어졌다. 그녀는 금강산 일만 이천 봉우리마다 제사를 지내려고 하였다. 매일 백미 500석으로 지은 밥을 한강에 뿌리려고 하였다. (일반 백성들에게 흰 쌀밥은 제사때나 겨우 구경할 수 있는 양식이었다.)


신기선(조선 말기 문신)의 사직 상소를 통해 당시 상황을 살펴보자.

(중략)
그런데 지금은 하찮고 간사한 무리들이 폐하의 곁에서 가까이 지내는가 하면 점쟁이나 허튼 술법을 하는 무리들이 대궐 안에 가득합니다.

대신은 폐하를 뵈올 길이 없고 하찮은 관리만 늘 폐하를 뵙게 됩니다. 정사를 보는 자리는 체모나 엄할 뿐 서리나 하인들이 직접 폐하의 분부를 듣습니다. 시골의 무뢰배들이 대궐의 섬돌에 꼬리를 물고 드나들며 항간의 무당 할미 따위들이 대궐에 마구 들어갑니다. 평소에 감히 보통 관리도 가까이하지 못하던 자들이 폐하의 앞을 난잡하게 마구 질러다닙니다.

이로 인하여 벼슬을 함부로 주고 이를 통해 청탁이 공공연히 벌어집니다. 굿판이 대궐에서 함부로 벌어지고 장수하기를 빌러 명산(名山)으로 가는 무리들이 길을 덮었습니다. (...)


고종과 민비는 한 무당을 믿고 따랐는데, 그 무당에게 '진령군'이라는 칭호까지 내려주었다. '군'이라는 이름은 왕의 아들이나 종친에게만 주어지는 칭호로 아무나 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흥선대원군 등과 같은 레벨이다. 광대와 같은 천민인 무당에게 그 정도직위를 인정해주었다. 이런 파격적인 특혜는 없었다. 민비는 무당에게 '북관왕묘'라는 사당을 지어주고, 무당은 그 안에서 하인들을 두고 귀족처럼 생활했다. 각종 이권과 주요 보직을 주변인들에게 내 준 것은 물론이다. 귀중한 백성의 세금이 복채로 둔갑하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 외세에 의지해 자국 백성들을 탄압하고, 나라가 열강의 싸움터로 전락, 결국 경술국치를 맞이한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다.


이처럼 왕과 왕비는

권력을 탐했고, 나라의 재산을 사적으로 유용했으며, 일가친척 및 지인들로 주변을 채우고, 무속에 빠졌으며, 외세에 의지했다.


그 결과

주변국에게 무시당하고, 국토를 전쟁터로 만들었으며, 결국 외세에 나라를 빼앗겼다.


그렇게 조선은 500년이 넘는 역사의 끝으로 사라졌다.


조선의 몰락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평행우주는 반복된다는 이론 하에서, 혹시 모를 불상사를 막을 수 있을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도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니 우리도 할 수 있다.

깊게 고민해봐야 하겠다.



추가)

'인디아나 존스: 미궁의 사원' 편에 아역으로 출연한 '조너선 케 콴'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남편 역할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해리슨 포드와 시상식에서 다시 만났는데, 뭉클한 장면이다. 시간을 초월한 우정은 이토록 아름답다. 수상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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