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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May 17. 2023

캣츠

화려한 무대 뒤에 누가 있을까

오리지널 캣츠팀이 한국에 왔다. 나는 그 무엇이든지 '오리지널'이라면 일단 좋아하는데, 놓칠 수 없지.

VIP석. 이런 좋은 자리에서 보다니 영광이다.



사람이 많다.

캣츠는 어떻게 수십년 동안 인기를 유지하는걸까. 보면 알 수 있으리라.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 공연장 바로 옆에 카페가 있어서 들어갔다.

카페 브람스.

나와 아내는 핫도그 머핀 아메리카노, 아들은 바나나주스를 주문했다.


기다리는 동안 아들은 수학 공부를 한다. 조만간 중요한 시험이 있다는데, 가방에 문제집을 챙겨다닐 정도로 열심이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저런 태도가 아들의 앞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나도 아들의 공부하는 자세에서 많이 배운다.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조와 박쥐'를 챙겨왔다.

늘 생각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작 습관을 배워야 한다고. 다작을 하면 반드시 명작이 섞여 탄생한다. 꾸준함에서 나오는 탁월함.


드디어 공연 시작.

빈틈 없는 공연이다. 아무래도 수십년의 노하우가 쌓였기 때문일테다.


많은 고양이들이 다양한 사연을 들고 등장하는데, 나는 늙고 지친 배우 고양이 Gus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거스의 스토리는 대략 이렇다.

거스는 극장에서 사는 고양이. 나이가 많아 몸이 좋지 않다. 중풍으로 걷는 것 조차 불편하다. 하지만, 젊은 시절에는 극장에서 주연배우로 화려한 날을 보냈다. 과거를 회상한다. 자신의 전성기 때 주연으로 활약했던 연극 그로울 타이거의 마지막 접전(Growl Tiger's Last Stand)을 떠올린다.


전성기 행복했던 무대를 그리워하는 퇴물 연기자의 회한에 잠긴 독백을 듣고있자니, 어쩐지 울컥했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역시나 그렇듯 나이가 들어 생기는 호르몬 이상이겠지.


요새는 유튜브에 오리지널 캣츠가 올라와 있어, 간단히 감상하기에 좋다. 물론 풀버전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늙고 병들어 힘은 없지만, 조용히 앉아 독백하는 거스의 이야기를 같이 들어보자. 파트1과 파트2로 나눠 올라와 있네요.(안봐도 됩니다.)

https://youtu.be/HCFZgLWdjFI

Gus the Theatre Cat Part 1 | Cats the Musical


https://youtu.be/vxVDcEOwALE

Gus the Theatre Cat Part 2 | Cats the Musical


확실히 공연 내용이 헐렁한 부분 없이 꽉 들어찼다. 쓸데 없이 시간 낭비 하지 않는 알찬 구성이다.

긴 시간동안 끝없이 손 본 각본 덕분이다.


코로나로 그동안 고양이들이 관객석으로 다가오지 못했다고 한다. 이번 공연에서는 '고양이들이 관객사이로 다가와 연기하는' 방식을 다시 시작했다. 실제로 공연 중 수시로 고양이들이 객석 사이로 찾아와 장난을 치는 등 관객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진행하더라.



지난 글들에서 많이 언급했듯, 나는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우리 사회는 그런 분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유지되고, 동작한다.

뮤지컬이나 발레, 오페라 등의 공연에서는 오케스트라가 그런 '인비저블'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공연장에 오면 꼭 오케스트라 연주자들 쪽으로 가서 한번이라도 슥 보고 온다(내 나름대로 하는 인사다).

그런데 캣츠는 연주자들이 있어야 할 위치가 막혀있었다.


관계자분께 여쭤봤더니, 캣츠는 앞 부분까지 무대로 사용해야 해서 연주자들이 무대 뒤편에 있다고 한다. 완전한 무대 뒤.


무대 양쪽 조그만 모니터에, 지휘자 분의 모습만 상영되고 있었다.

공연을 보면서 수시로 모니터를 봤는데, 정말 열정적으로 지휘했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을 하는 동안에도, 헤드폰으로 바깥 상황을 확인하면서 계속 지휘했다. 연기자들이 큰 박수를 받을 수 있도록.


사진으로 남겨놓고 싶었다. 제가 박수를 드립니다.


음악 없는 캣츠를 상상할 수 있는가? 장르부터가 '뮤지컬'이다. 무대 위 고양이 배우들의 화려한 연기도, 결국 음악 없이는 동작과 대사일 뿐이다. 음악과 함께 할 때, 비로소 작품이 된다. 무대 뒤에서 묵묵히 연주하는 그 분들 덕분에 좋은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저 어두운 뒤편에서 열심히 연주하는 오케스트라가 있었다는 걸, 나는 잊지 않겠다.



회사도 마찬가지.

앞에서 말로만 그럴듯하게 떠드는 광팔이 리더들의 뒤편에 맡은 도메인과 제품을 묵묵히 운영하고 있는 실무자들이 있다.


잊어선 안된다.

그 어떤 서비스에도 반드시 운영 인력은 존재한다.

실무자 없는 서비스는 존재할 수 없다.

누군가는 문의를 응대하고, 요구사항을 처리하며, 각종 운영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다.


도메인에 문제가 없어 보이는가?

별 탈 없이 운영되는 것 같은가?

그렇다면 누군가 무대 뒤편에서 열심히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고맙고 멋지다.

오늘도 그들 덕분에 우리 제품은 별 탈 없이 동작한다.

사무실 한편에서,

맡은 파트를 묵묵히 연주하고 있는 우리 팀원 분들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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