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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May 13. 2023

같이 햄버거 먹을래요?


명확한 선후배 관계라는 것이 있다.

주로 학교나 군대 등에서 만난 사이.

이 관계가 시간이 아주 많이 흘러 어느 정도 편해지면 선후배라는 딱딱한 개념은 흐려진다.

애초에 친구로 만난 사이보다 진한, 그 무언가를 갖게된다.


K와 Y, 그리고 나는 이전 직장에서 선후배로 만났다.

공채문화가 강하게 자리잡은 곳이었다. 입사연도를 기준으로 기수가 존재했던 그룹사. 맡은 업무는 다르지만, 쭉 같은 파트에서 근무했던 터라 이야기 나눌 기회가 많았다. 몇 년의 기수 차이를 극복하고 종종 티타임을 가졌다. 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은 내가 강제로 불러냈다.(선배 권력 행사였다.) 이 친구들이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K는 내가 대리때 신입사원으로 우리 팀에 배치되었을 때 만났고(아직도 그 동그란 원탁 앞에 앉아있던 K의 첫인상이 기억난다.),

Y는 K보다 몇 년 뒤, 인턴을 잠깐 했다가, 졸업 후 정식으로 입사 시험을 거쳐 우리 팀에 합류했다.(Y가 연말 송년회에서 신입사원 장기자랑을 했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들에게 나는 어떤 인상이었을지 모르겠다.

아마 꼰대 대리나 과장. 대충 그런 느낌이었을 듯.


우리는 모두 햄버거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모여 햄버거를 먹었다.


그게 언제부터였는지 궁금해 K에게 물어봤더니

1차 : 2015년 5월 4일 맥도널드
2차 : 2015년 6월 9일 KFC
3차 : 2015년 7월 8일 가판대 버거 구매 후 사내 식당으로 이동


위와 같은 기록을 보내고,

4차 이후 자료가 더 필요하면 가르쳐주겠단다. 다 기록해놨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K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정기 모임을 가진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이미 한참 전에 모두 이직하여 서로 다른 회사에 다니지만,


우리는 계속 만났다.


솔선수범 모임을 챙기지 않는 내 막돼먹은 성격에도 불구하고,

K와 Y는 잊지 않고 나를 만나주었다.


맥도널드,버거킹,롯데리아,쉑쉑,파파이스 같은 프랜차이즈부터 숨겨진 수제 햄버거, 길거리 햄버거 가게까지 많은 곳에서 모임을 가졌다.


이번 모임은 강남역 '슈퍼두파'


베이컨 에그 온 버거, 슈퍼두파, https://www.mk.co.kr/news/business/10509414


맛있더라.


우리는 서로의 근황부터, 최신 트렌드, 각자 회사 이야기(Y는 작은 스타트업을 준비하고 있다.) 등등 가리지 않고 대화했다.


나는 요새 열심히 사색하고 있고, 더 많이 깨닫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Y는 반대했다. '그냥 지금 이대로 행복하자'고 이의를 제기했다. Y의 말에 일리가 있다.

맞다. 나는 늘 너무 과한 면이 있다.


어떨 때 행복한지도 이야기했다.

낯선 곳, 많은 사람들 틈에서 오히려 자유를 느끼는 K. 출근하는 길이 힘들었던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는 Y. (회사 업무에서 성취감을 많이 느끼는 Y는 반드시 고위직에 올라가리라 믿는다.)


리더가 되고 싶지는 않은 K의 고민에 공감했다.

생각이 깊은 K의 성격을 아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 밖에 없는 고민이었다. '좋은 리더가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걱정이었는데, 나도 마찬가지라서 더 와닿았다. 하지만 내가 10년이 넘게 보아온 K는 그 누구보다 팀원을 생각하는 좋은 리더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기본도 갖추지 못한 자격 미달의 리더들이 회사든 어디든 여기저기 판치는 요즘, 스스로 준비된 리더인지 고민하는 모습이 어딘지 근사했다.


Y는 만날 때 마다, 내가 요새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물어봐준다. 나는 또 신나서 떠든다. Y의 '요새 어떤 책 읽고 있어요?' 라는 질문은 그냥 접대용 멘트가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그래서 사실은 이 모임을 나갈 때 마다, 요새 읽는 책을 한 번 더 머릿속으로 정리하곤 한다. 이런 자극은 언제나 환영이다.


20대에 만나 어느덧 40대가 된 이 친구들이, 언제까지 나를 만나줄 지는 모르겠다.

그 때 까지 햄버거를 걱정없이 먹을 수 있도록 몸 관리를 잘 해놔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파이브가이즈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이런 친구들이 있다면 먼저 연락해 약속을 잡아보는 것은 어떨지.

(지금 머릿속에 떠오른,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나저나 곧 파이브가이즈 강남점이 오픈한다던데,

우리 다음 모임은 거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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