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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Jun 10. 2023

네, 런던에 혼자 왔습니다 1

2023.06.09


1일차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소속된 사회와 멀리 떨어진 장소에 가서
자신의 주변과 타인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즉, 자기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 '라이프 스타일을 팔다' (마스다 무네아키)


지난 터키 여행에서 패키지에 대한 회의를 많이 느꼈다.


물론, 당연히 패키지 여행의 장점이 있다. 교통, 숙박, 식사 등 일일이 예약하지 않아도 된다. 많은 나라의 여러 관광지를 1주~2주 기간 동안 빠르게 찍고 올 수 있다. 가이드의 상세한 설명을 통해 더 의미있는 관광이 될 수 있다. 여러 나라를 짧은 기간에 돌아보기에는 패키지 만한게 없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패키지 여행을 좋아한다.


하지만,

새벽 4시,5시에 일어나 일정을 시작하여 늘 피곤한 상태라는 것.

원하는 곳에서 맘 편히 앉아 책도 읽고, 멍하니 쉴 수 없다는 것.

장거리 이동을 위해 버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일부 무례한 사람들과 열흘이 넘게 같이 지내야 한다는 것.

그런 다양한 점들 때문에 몸이 피곤하고, 정신이 피폐해졌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서 더 심하게 느꼈던 것 같다. 어릴 땐, 두 달 동안 중국을 배낭여행 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았던 내가 아니던가. (그 땐 정말 아무거나 타고 다니고, 아무데서나 잤다.)

역시 여행은 젊을 때 하라는 옛 어른들의 말은 진리였다.


그래서 그런 것 없이 ‘한 도시에서’ 그냥 쉬다가 오고 싶었다.

늦잠도 자고,

카페에서 몇 시간씩 책도 읽고,

벤치에 앉아서 볕도 쬐고.

슬슬 걸어 유명한 곳에도 가보고 말이다.

한 도시에서만.


그렇다면 어디가 좋을까?

단 하나의 도시.


제임스 본드의 고향.

런던이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Daniel Craig as James Bond, in his hometown, London. (https://www.escape.com)


그래서 간다.

아무 계획도 없이.


서울/인천 - 런던/히드로

인천까지는 공항버스를 이용했다. 지하철로 두번 갈아타면 되지만, 체력을 아끼고 싶었다. (나이들면 이렇다.)


인천 공항은 사람들로 붐빈다. 일찍 도착해서 기다린다. 늦어서 헐레벌떡 하는 건 싫다.


캐리어는 없다. 32L 백팩 하나로 간다. 부칠 짐이 없으니 체크인 하느라 줄을 길게 설 필요가 없다. 부족하거나 필요하면 현지에서 조달하면 되겠지. 간소한 짐은 옳다. 가벼운 것도 옳다. 그건 인생에서도 마찬가지.



짐은 열심히 줄였는데, 책은 줄이지 못했다. 책을 두 권 넣으니 가방이 다시 무겁다. 한국에도 하드커버 말고 가벼운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전자책도 고민해봤지만, 역시 종이책이 맞다. 이번 여행에도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를 선택했다. 두 권 밖에 없으니 아껴 읽어야 한다.


책은 뺄 수 없었다.


아시아나는 제일 끝 게이트를 사용하는데, 독립된 공간이라서 그런지 공연도 한다. 드골 공항으로 가는 옆 게이트에서 좋은 노래를 들려주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천 년 전 사람을 현재로 데리고 와 저 문을 통과시키면 ‘공간이동’ 장치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런던 행 비행기.


출발.

14시간 소요 예정이다. 멀다. 몸이 버틸 수 있을까.


첫 끼. 비행기에서 쌈밥을 먹을 줄은 몰랐다. 당분간 한식은 힘들 것 같아 골랐다.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둬야 한다. 야채가 딱 적당히 신선하고, 고기는 질기지 않다. 쌈장은 언제 먹어도 입맛을 돋운다. 나한텐 딱 이 정도 양이 알맞다.


책을 읽다가 눈이 아파서 영화를 본다. 시간이 많다. 몇편이나 볼 수 있을지 도전.


써치2. 본격 맥북 구매 권장 영화. 이 영화는 애플에서 돈 줘야된다 진짜. 써치1이 워낙 잘 만든 영화라서 기대 안했는데, 웬걸? 이 영화 재밌다.


올빼미.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이토록 비정한 픽션이 나오는구나. 권력과 자리보전을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정치인,고위층,경영자,리더 들은 수백,수천년을 이어 존재해왔나보다. 그나저나 유해진은 정말 연기 잘한다.


두번째 식사, 낙지덮밥. 먹을 수 있을 때 열심히 먹어둬야 한다. 짜고 달고 매콤하다.


더 웨일. 영화제 수상작들에 늘 실망했었는데. 이건 뭐지. 여러분 시간이 되면 꼭 관람해보세요. 인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가. 후회하지 않으려면 나는 당장 뭘 하면 될까.

’더 웨일‘ 중에서


티켓 투 파라다이스. 조지클루니와 줄리아로버츠가 부부로 나온다기에 오션스 시리즈를 기대하고 선택했다. 결과는 실패. 발리 관광청 지원을 받고 만든 홍보물인 줄. 40분쯤 보다가 껐다.


타르. 현대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인간 메트로놈에 불과한가? PM들은 봤으면 좋겠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에서 PM이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태도와 자세가 지휘자의 그것과 꽤 흡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제든 누구나 배신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종족의 특성이라는 점에서 영화의 마무리가 와닿았다.


도착했다.

영국시간 저녁 07:00


입국심사대가 인산인해다. 한국은 전자여권게이트 허용 국가로 입국심사가 따로 필요없다. 말그대로 영국에서 인정받는다. K-POP의 인기가 영향을 준 게 아닐까 싶은데, 문화의 힘이 이토록 대단하다.


이제 드디어 공항을 나간다.


지하철을 찾아야 되는데 묘하게 헷갈린다. 오기 전에 대충이라도 알아볼껄 그랬다. 일단 간다. 뭐라도 나오겠지 뭐.

언더그라운드랑 트래인은 다른건가. 노랑과 파랑의 차이는? 에이 몰라. 왼쪽으로 간다.



어찌저찌 찾았다. 교통카드 개찰구가 전부 nfc방식이다. 터치결제. 여기가 우리보다 낫다. 왜 우린 이걸 못하는걸까. 편하구나.

히드로 공항 언더그라운드


nfc신용카드로 결제가능하다. 그냥 신용카드 가져다 대면 끝.


지하철은 작고 좁다. 맞은편 사람 무릎이 닿을 지경이다. 좀 지저분하다. 팔걸이가 좌석마다 있는 건 좋다. 차량 내 형광등이 깜빡깜빡한다. 이거 고담시에서 본 것 같다.



자리가 있어서 앉았다. 완벽히 백인으로만 둘러쌓인 지하철에 혼자 앉아있으려니, 위축되기도 하고, 묘한 기분이 든다. 이 기분이 구체적으로 무엇때문인지는 여행 내내 고민해봐야겠다.

킹스크로스역까지 한시간을 타고 간다.


언더그라운드 내부


킹스 크로스역 도착


이런 골목을 지나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도미토리라서 4명이 한 방에서 자는 구조다. 침대

4개, 공용 회장실, 공용 샤워실.


나는 11993km를 14시간동안 날아서 별 탈 없이 도착했다. 행운이고, 다행이다.

오늘은 피곤해서 더 이상 글 정리 못하겠다.

(글이 엉망인데 퇴고는 나중에 해야겠다.)

씻고 컵라면 하나 먹고 잔다.


런던 일몰 - PM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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