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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Apr 26. 2023

청계산, 누가 오르기 쉽다고 했나?

하와이랑 청계산은 다르지

2019년, 회사 워크샵으로 하와이에 다녀왔다.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해가 질때 쯤, 와이키키 해변에 앉아 책을 많이 읽었다


나는 당시 한국에서 걷기에 빠져 있었고,

하정우의 '걷는 남자' 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은 상태였다. 하정우는 '걷기 위해' 하와이에 종종 간다고 한다. 오직 걷기 위해.

하정우 '걷는 남자' 중


기왕 하와이에 왔는데,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걷기로 했다.


원래 혼자 걷기로 생각했지만,(누가 하와이까지 와서 굳이 5시간씩 걷고 싶을까? 라고 생각했다.)

당시 나의 계획을 이야기 하자 흔쾌히 같이 걷자고 제안한 동료들이 있었다.

평소, 괴팍한 내 성격을 받아주고 어울려 준 분들 이었다.


그렇게 의기투합했고,

결국 우리는 4시간 넘게 하와이 바닷가를 걸었다.


당시 숙소였던 와이키키 쉐라톤에서 하나우마 베이 전망대 까지 11.2마일, 약 18km정도였다. 걷기라는게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데, 그 이유는 코스에 따라 난이도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하와이는 언덕이 많았다. 게다가 제대로 된 길이 아닌 고속도로 갓길도 걸었다. 걷기 힘들었다. 애초에 내가 코스를 잘못 선택한 까닭이었다. 미안했다. 하와이의 한 여름 뙤약볕은 안그래도 힘든 코스를 두 배는 어렵게 만들었다.


빨간선을 따라 걸었다.



하와이는 걷기 좋은 곳이다.


힘들었다. 몇몇 동료들은 짜증도 냈다. (나는 당시 이러다 한 대 맞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온 후, 같이 모여 이야기 할 때 마다 좋은 추억이 되었다고 말해주어 고맙다. (당시 나를 때리지 않은 것도 고맙다.)


4시간 20분을 걸어, 하나우마 베이 전망대에 도착해서 바라본 노을. 아름답다.


이번에 그 동료들이 다시 모여 청계산을 올랐다.

나는 산에 가자는 말을 아무에게나 못한다. '등산'은 꼰대의 시그니쳐와 같은 단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친구들은 좀 다르다. 우리는 '하와이를 같이 걸었던' 사이 아니던가? 라기 보다는, 까여도 맘이 불편하지 않을 것 같았다. 왜 그런 느낌 있잖은가. 나를 편하게 막 대하는 사람들에게 느끼는 이상한 친밀감.


퇴사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만나 모임을 가졌는데, 이번엔 오랜만에 '걸어보기로' 했다.


등산로 입구, 사람이 많다.


그래서 선택한 건, 청계산.

등산이 오랜만이라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나는 "산책 하듯 걸으면 돼. 높지 않은 산이라 즐기듯 걷자" 라고 허세를 부렸다.

(그러지 말껄...)



결국 나만 깔딱고개에서 뻗고 말았다.

열심히 계단을 오르다가 문득 눈앞이 살짝 흔들리더니, 얼굴이 급격하게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잠깐 쉬자. 라고 말하고 주저 앉았는데, 어지러움이 더 심해졌다.

아무래도 내가 기분이 좋아서 너무 빨리 걸었나보다.


먼저들 올라가라고 했다.

다른 친구들은 나에게 '쉬고 있으라'고 말하고, 계단을 올라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려운 산 아니니, 산책하듯 오르면 돼." 라고 말했던 스스로가 창피했다.


조금 쉬자 컨디션이 돌아왔다. 다시 열심히 따라 올라갔다.

매봉에 도착했는데 사람들이 줄을 서서 '매봉'이라고 적힌 돌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찍지 않았다.


진달래가 많이 피었다.


산 정상에는 막걸리와 음료수 등을 파는 아저씨가 계셨다.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비쌌지만 이해했다. 산 정상까지 누군가는 이 무거운 아이스크림을 옮겼으니, 비싼 게 맞다.


정상 아무 바위에나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대화했다.

같이 산에 오른 친구들은 하와이 때와는 달리, 이제 회사 내에서 어엿한 리더가 되었다.

리더가 되어 겪는 다양한 고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간관리자라는 것이 아무래도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다들 고생이 많다.


올라오면서 한 번 뻗었더니, 하산은 상대적으로 조금 편했다. 내려오는데 사람들이 많이 올라오더라. 해가 높이 떠서 더울텐데 화이팅입니다.

아무래도 일찍 올라오길 잘했다.


점심으로 산 입구 근처에서 곤드레밥을 먹었다.



근처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졌다.


요즘 산이 예쁩니다. 혹시 관심 있으신 분들은 친구들과 함께 올라보시길. 이런 저런 세상 사는 이야기 하면서 천천히 걷다보면, 어느새 정상에 오를 수 있습니다. 어렵지 않아요. 산책하듯 걸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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