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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May 24. 2023

PPT 사용을 금지하라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슬프지만, 이게 현실이다.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고칠 수 있다.

많은 회사에서 실무자들은 고통받고 있다.


https://youtu.be/YGqtoO5yA8w


블라인드 제보를 보자.

대한민국 기업의 후진적인 보고 문화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위 게시글의 1번 항목은 고인의 사인에 대한 의견이었다. '보고문화'가 주제인 이 글과 무관하여 제외했다. 출처/블라인드


높으신 분들 회의를 위한 보고자료를 위해 리뷰,재보고,리뷰,재재보고 하며 PPT 장표에 금칠을 하나보다. PPT를 그리느라 주말출근을 한다. 심지어 해당 자료를 실제로 들고 보고하는 실장/담당급은, 정작 내용을 몰라 질문에 답을 못한다. 실무들은 언제 질문이 올지 모르니, 카톡을 열어놓고 24시간 대기해야 한다.


출처/블라인드


장표가 '엄청나게 자세하고 깔끔하고 많아야' 한단다.

'PPT기술자'들만 인정받고 승진할 수 밖에 없다.


츌처/블라인드


책임지기 싫은 사람들의 특징은, 논리를 두루뭉술하게 넓게 펼쳐놓는다는 것이다. 뾰족하게 집중시킨 보고자료의 방향이 틀렸을 경우,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보고자료의 목적과 방향,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면 좋을텐데, '뭘 보고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보직자들이 많다. 뾰족한 논리 따위는 없다. 일단 이것저것 많은 장표를 아주 예쁘게 만들어 보고하면 그럴듯해 보인다고 생각하는 윗 분들이 많기 때문에 벌어지는 슬픈 상황이다.


출처/블라인드


소위 말하는 '보고주간' 이었다고 한다.

2차보고, 3차보고, 4차보고.

보고, 재보고, 재재보고.

임원 및 보직자들의 짓일테지. 안봐도 뻔한 상황이다.


자기가 무슨 발표자료를 가지고 올라가야 할지 명확히 알지 못하는 임원들은 두루뭉술하게 자료를 지시한다.

그 아래 실장들은 임원님이 잘 모르시니까 일단 아무거나 전부 다 준비한다. 실무 팀원들은 그를 위해 자료를 취합하고 정리하고 말도 안되는 PPT를 '그리느라' 밤을 샌다. 문서 작성이 아니다, '그리는거다'. 자료 취합은 쉬운가? 각종 협업 파트에 협조 요청 메일을 보내고, 응답을 기다리고, 부탁하고, 응답이 오면 필터링,전처리를 해야 한다.


A지역 매출만 간단하고 단순하게 한 페이지로 보고하면 될 일인데, A지역 상권현황, A지역 전출입인구, A지역 날씨, A지역 도시개발계획 까지 보조 자료로 만들어 올리란다. 임원은 자기가 책임지기 싫으니까, 명확하게 자료의 목적과 스콥을 지시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그냥 다 준비해'라고 책임을 전가한다. 무책임하다. 이러다가 A지역 맛집 리스트까지 뽑아오라고 할 판이다.


임원 및 리더들은 발표 자료 준비를 지시하고 저녁 술자리 가시겠지만, 직원들은 밤을 샌단 말이다. 그것도 결혼기념일에. 1시간 짜리 회의 준비에, 실무진들은 2주, 3주간 밤을 새며 PPT를 만든다. 제출하면 폰트가 어쩌고, 다시 제출하면 이미지가 어쩌고, 또 제출하면 문구가 어쩌고. '전략회의 보고_최종.ppt' , '전략회의 보고_최최종.ppt' , '전략회의 보고_진짜 최종.ppt' , '전략회의 보고_진짜진짜 최종.ppt' 보고보고재보고재재보고.


그들은 자기가 직접 보고할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만들 능력이 없다. 어느 정도냐면, 대표가 'A부문은 요새 상황이 어때?' 라고 회의 중에 슬쩍 언급하면, 임원들은 답할 능력이 없으니 카톡으로 아랫사람들을 닥달한다. A관련으로 자료 전부 조사해서 보고해. 지금 바로. 얼른 답장줘. 대표님 지시사항이야. 나 재계약 안되는 꼴 보고싶어!?!! 초긴급!!!



보고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


쓸 데 없는 회의/보고/협의체 등을 만들어서 ‘일 하는 척’ 하는 악습은 대체 어떻게 끝내야 하는가?


도대체 왜 PPT로 발표를 시키는가?

간단한 1장짜리 흑백 문서로 내용을 압축하여 빠르게 읽고 넘어갈 순 없는가?

왜, 내용 보다 금칠한 디자인에 환장들 하는것인가?


내용을 깊게 고민할 시간에, 폰트를 고르고 글자크기를 조정하고 앉아있는 현실이 정상인가?

그럴듯한 이미지와 단어가 나열된 허울뿐인 장표가 왜 필요한가?


대체 ‘본질’은 무엇인가?


위와 같은 폐단을 막기 위해 PPT를 금지하는 조직들이 있다고 한다. 한 번 알아보자.

(출처 : https://m.blog.naver.com/kmacforever/221428634601)


미군

뉴욕타임즈에 이런 제목의 칼럼이 게재됐다. '우리는 적을 만났다. 그것은 바로 파워포인트다' 미국 중부사령관을 역임한 제임스 메티스 장군은 한 군사컨퍼런스에서 "PPT는 우리를 어리석게 만든다"고 밝히기도 했다. H.R 맥마스터 장군은 PPT 사용을 아예 금지시키며 이렇게 말했다. "파워포인트는 위험합니다.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는 환상, 통제하고 있다는 환상을 창조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PPT는 사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PPT의 큰 글씨 뒤에 맥락은 숨어버린다. 전문가들은 "복잡한 맥락을 보지 못한 채 PPT의 큰 글씨에만 집중하다 보면, 마치 문제를 이해하고 있고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한다.


아마존

제프 베조스는 직원들에게 PPT발표를 금지했다. PPT는 깊이 있는 생각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종이에 아이디어나 의견을 메모해 함께 읽도록 권유한다. 6쪽 분량의 메모로 내용을 구체적으로 '묘사'할 것을 요구했다. 직원들이 글을 쓰고 천천히 생각하는 환경을 창조하기 위함이다.


애플

스티브 잡스와 오랜기간 협업했던 켄 시걸은 이렇게 말한다. "스티브 잡스는 말 한두 마디로 전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20개짜리 슬라이드로 만드는 것은 낭비라고 여겼다." 암 투병을 하던 잡스는 의사가 PPT를 이용해 병세를 설명하자 화를 냈다는 일화도 있다.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은 제로 PPT를 선언하고, 직원들에게 간소한 보고를 강조했다. 정태영 부회장은 PPT제로 이후의 효과를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어떤 효과가 있었을까?
(정태영 부회장 페이스북, 출처/동아일보)



'사람들이 더 지적으로 보인다' 가 내게 가장 와닿는 효과다.


나는 PPT에 '혁신' , '개선' , '글로벌리제이션' 등 이상한 형이상학적 단어들을 나열하고, 색칠하고, 강조하고, 읽히지 않는 숫자가 잔뜩 들어간 표와 이미지를 넣어놓은 장표를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무시한다. 디지털 장돌뱅이. 알맹이 없는 보고용 PPT로 '일하는 척' 하는 임원과 리더들, 그들을 위해 실무진들은 오늘도 자료 조사와 장표 작성으로 밤을 새우고 있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그들이 진짜 똑똑한 사람들이다. 보고서가 심플하면 그와 같이 일하고 싶다. 심플한 리포트가 보고의 원칙이 되면, 며칠 동안 PPT를 그리고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 A4 기본 폰트의 텍스트로만 딱 한 장 리포트를 작성하면 그만이다.


구체적인 글을 통해 맥락을 설명하고, 짧고 간결한 브리핑을 하는 사람들은 귀하고 소중하다. 나도 그들이 '지적으로' 보인다.


우리도 지적인 사람이 되자.

PPT사용을 금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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