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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Jul 01. 2023

산출물의 가치는 어디서 오는가

한국근현대미술전


루브르 박물관이었다.


모나리자를 직접 눈 앞에서 봤을 때 들었던 첫 생각은 ‘작네?’ 였다. 내 상상 속의 모나리자는 그 가치만큼이나 거대했었나보다. 조금 실망했다. 저거였구나. 저 작은 그림에 인류는 열광했구나. 그렇다면 저 그림에서 어떤 걸 느껴야 할까. 나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2017년. 파리의 박물관 한 켠에 앉아, 그런 생각을 했었다.


상상 속에서보다 작았던,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관광객들이 많았다.


이렇게, 역대급 명작을 감상하는 것은 단순히 '관광'의 차원을 넘어서는 그 무언가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뇌 저 안쪽, 무의식의 영역을 자극하는 것이다. 멍하니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몰랐던, 평소에 쓰지 않았던 뇌의 영역을 사용하는 기분이 든다.


얼마 전 한국근현대미술전을 관람했다.



관람한 전시회에서, 그 유명한 이중섭의 ‘황소’를 볼 수 있었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작품. 역시 '황소'도 내 상상속에서의 크기보다 작았다. 생각보다 작아서, 모나리자가 떠올랐다. 인구에 회자되는 명작들은 결코 거대한 크기나 화려함을 자랑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사이즈가 곧 가치는 아니다.


나는 명작들을 볼 때마다 궁금했다.

이런 작품이 엄청난 의미로 인정받는 이유는 그 구현의 기술적 어려움 때문일까? 사용된 재료가 비싸고 희귀한 것일까? 정말 타고난 천재적인 재능으로 누구도 따라하지 못할 그 무언가를 만들어냈기 때문일까?


이중섭 '황소'


물론 '모나리자' 혹은 '황소'에 구현된 회화기법이나, 기술적 뛰어남이 반드시 있을거다. 하지만, 기술이란건 전파되고 학습이 가능하다. 그러니 그림을 어느정도 그린다면 '따라 그릴 수 있다'. 모나리자, 이중섭의 황소와 같은 작품은 당연히 모작이 있고, 그건 모사가 가능한 수준의 기술이라는 거다. 이 작품들의 가치를 폄하하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나는 그런 논평을 할 정도로 그림을 알지 못한다. 단지, 이런 작품들이 단지 기술적인 이유만으로 명작이라 평가받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렇다면 혹시 창작자의 '스토리' 때문이 아닐까.

그 작가, 한 인간이 걸어온 길이, 그의 노력이, 깊은 고민이, 권위와 관습에 도전해 온 인생의 스토리가 그가 만들어낸 작품의 가치를 높여준 것이 아닐까.


단순히 '잘 그리는 능력 뽐내기'로만 우수 화가를 가린다면, 사진과 똑같이 그릴 수 있는, 말 그대로 ‘기술적으로’ 뛰어난 솜씨를 갖춘 작가는 많다. 아래 이미지를 보자.





위 이미지는 사진이 아니다.

그림이다.




무언가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기술 만으로 명작 여부를 결정한다면, 위 그림은 당연히 우주급 걸작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인류는 그렇게 단순히 판단하지 않는다. 기술을 넘어서는 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2% 부족하다.



회사는 어떨까.

어느 영역이나 마찬가지다. 법을 달달 외워 ‘법 기술자’가 된 변호사/검사/판사 보다, 사람들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법조인이 존경받는다. 그 사람의 걸어온 길이, 행동이,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의 가치를 높여준다. 일관된 삶의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낸 산출물들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열광한다. 단순히 작품에 구현된 기술이 아닌 그 너머의 이야기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고민하고, 배려하며, 노력함으로써 스토리가 풍부한 사람이라면. 그렇다면 당신의 업무로 구현한 결과물들의 가치는 자연스레 더 높아질 것이다. 그게 비록 누구나 해 낼 수 있는 일이라도, 당신이 했기 때문에 박수 받을 수 있다.


그러니 지금 당장의 어려움과 고통에 너무 괴로워하지 말자.

인생에 풍파가 있고, 굴곡이 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살다 보면 별 일이 다 있을 것이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답답하고 눈 앞이 깜깜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고난과 역경이 한 사람의 인생 스토리를 차곡차곡 흥미롭게 만들어준다.


그렇게 쌓인 ‘스토리’가 우리의 행동이나 말, 회사에서는 업무 산출물에 가치를 부여해 준다.

명작은 그렇게 탄생한다.


회사에서 당신의 가치를 만들어주는 건 잘난 보직도 아니고, 넓은 책상도 아니다. 임원과의 새벽 골프 라운딩은 더더욱 아니다. 당신의 화려한 말빨과 기가 막힌 업무 스킬은 또 다른 경쟁자의 등장에 속절없이 무너질 것이다. 주위에서 사탕발림 귓속말을 속삭이는 동료들은 당신이 힘을 잃으면 사라질 것이다. 순식간에.


명작을 만들어내고 싶다면

주위를 배려하고, 공감하며, 긍휼히 여기는 애민의 마음을 가지고 모든 일에 임하자. 그 일관된 삶의 태도가 스토리를 만들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퍼져나간다. 우리는 그걸 평판이라고 부른다. 좋은 평판이 쌓이고 쌓여, 시간이 흘러, 당신 삶의 가치는 고귀해진다.


그렇게 되면 무엇을 만들어 내든 명작이 된다.


피카소가 프랑스 파리의 한 카페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어느 행인이 지나가다 피카소를 발견하고 냅킨을 주며 피카소에게 스케치를 부탁했다.

행인 : "혹시 여기에 그림을 그려 주실 수 있나요? "

피카소는 잠시 생각하더니 냅킨에 스으윽 그림을 그려주었다.
정말 짧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조금 비싼 가격을 받았다.

행인 :  "아니 그림그리는데 1분도 걸리지도 않았는데 너무 비싼거 아닌가요?"
피카소 :  "아니요, 저는 그 그림을 그리는데 40년이 걸렸습니다."

'Money', 토니 로빈스


켜켜이 쌓인 자기 만의 '스토리'가 있다면, 냅킨에 그림을 그려도 명작이 된다.

기술을 넘어선 그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꾸준히 읽고, 고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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