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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Jun 13. 2023

네, 런던에 혼자 왔습니다 4

2023.06.12


4일차


최고기온 - 26
최저기온 - 16
일출 - AM 4:43
일몰 - PM 9:18
비 예보 있음


점점 늦게 일어나게 된다. 적응하고 있다는 것이겠지. 오늘은 07:30에 숙소를 나선다. 반팔을 입고 다니기에 딱 적당한 날씨다.

역으로 가는 길. 이런 풍경을 매일 보는 이곳 주민들이 부럽다.


공원에 좀 가서 앉아있고 싶은데, 엊그제 다녀온 버킹엄 궁전 옆 그린파크가 좋았던 기억이다.

그린파크로 출발. 킹스크로스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가보자.


매일 이용하는 킹스크로스역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킹스크로스역은 1852년 생긴 역이다. 김정호 대동여지도가 1861년인데, 지금 이 역이 1852년에 지어진 건물이라는게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들은 1800년대에 이미 기차를 만들어 타고 다녔다. 나는 늘 궁금하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온 것일까. 같은 인간인데, 왜 발전의 속도와 수준에서 차이가 났던 것일까.

킹스크로스 역


출근 시간 지하철을 꼭 타보고 싶었다. 이 나라 직장인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다. 그건 여행의 중요한 목적이기도 하다.


이 시간. 지하철은 많이 덥다. 지하 깊은 곳을 움직이는 강철통안에 사람들은 가득차있고,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으니 더울 수 밖에.


출근 시간인데 다들 묵묵하다.

10명 중 3~4명은 종이책을 읽고 있다. 의외로 자리에 앉아서 자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장 차림은 지금까지 딱 1명 봤는데, 여기가 금융지역하고는 거리가 있는 동네여서 그럴수도.

청바지에 옥스포드 셔츠가 가장 자주 눈에 띈다. 로퍼가 한 둘, 나머진 대부분 운동화다.


세계 어디를 가도 밥벌이는 해야 하고, 우리 시민들은 매일 아침 군말없이 집을 나선다. 이 곳 런던의 아침도 별반 다르지 않다.

출근 길 시민들


프레 타 망제

커피와 샌드위치 , 스프 등을 파는 우리나라로 치면 김밥천국(?) 은 좀 심했나. 아무튼 지점이 많다.

영국 글로벌 프랜차이즈인 프레 타 망제의 브랜드 철학은 ‘옳은 일을 하는 것doing the right thing’ 이라고 한다. 그날 남은 음식을 모두 기부하여 자원 낭비와 환경오염도 줄인다고 하니 그 사상이 마음에 든다. 그린파크역 앞 프레 타 망제에서 커피랑 크로아상을 하나 샀다. 여긴 어쩐지 앞으로 자주 올 듯.

프레 타 망제
프레 타 망제


가지고 버킹엄 궁 가까운 그린파크 벤치에 앉았다.


짹짹 새 소리 외에 아무 것도 안들린다. 남들 출근하는 걸 멍하니 보고 있자니, 문득 런던에 있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다.


커피가 맛있다. 가득 담아줘서 따뜻하게 실컷 마셨다. 크루아상은 코스타 보다는 낫지만, 그저그렇다. 파리바게트 크로아상이 정말 맛있는거였구나. 설탕이랑 버터를 들이부어서 그런건가.


공원에는 잔디밭에 누워서 자는 사람도 많다. 영국인들은 단체로 쯔쯔가무시 저항력이라도 있는 걸까.


공원에서 두 시간 정도 책을 읽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그 어떤 게임보다 더 오락적이라 중독되기 쉽다. 그나저나 한 권 다 읽었다. 5일 남았는데 이제 한 권 밖에 안남았다. 더 아껴서 읽어야겠다.


어제 웨스트민스터 사원 입장을 미리 예약해놨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영국 왕실 그 자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곳이다. 성공회로 상징되는 영국의 심장과도 같다. 웨스트민스터가 귀족의 상징이라면, 세인트폴은 서민의 믿음. 다이애나가 세인트폴에서 결혼식을 요청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웨스트민스터에는 영국의 왕과 위인들이 많이 묻혀있기도 하다. 찰스 다윈, 아이작 뉴턴 을 비롯해 최근에는 스티븐 호킹이 안치되었다.


자유 여행을 오니 예약 및 입장권 구매를 웹으로 할 일이 많은데, 처음에는 걱정했으나, 막상 해보니 별 거 아니다. 내가 했다면 여러분은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듯


이제 웨스트민스터로 가보자


사원 앞 줄이 길어서 깜짝 놀랐는데, 2023 런던 테크 위크가 시작되어 거기 입장하는 줄 이란다. 구글, IBM, META 등에서 많은 연사가 스피커로 참여한다. 아쉽게도 한국쪽에서 참여한 기업은 없는 듯 하다.

2023 런던 테크 위크


사원 앞은 입장하기 위한 대기줄로 이미 인산인해다. 뙤약볕아래 저 줄에 서야한다고 생각하니, ‘그냥 숙소로 돌아갈까?’라는 유혹이 떠오른다. 정말 뜨거운 햇볕이다.

사원 입장을 기다리는 긴 줄
사원 입구의 디테일 들

왕족도 성직자도 아닌 나같은 일반인이 웨스트민스터에 들아오다니, 시간이 참 무상하구나.


내부에서 티켓 확인을 하고 가이드 디바이스를 나눠준다. 다행히 한국어도 지원한다.

헤드폰은 알아서 가져가면 된다.


웨스트민스터는 거대한 무덤 그 자체다. 역대 왕들은 물론이고 헨델, 셰익스피어, 오스카와일드, 찰스디킨스 등 여러 유명인들까지 안장되어 있다. 실제로 내부 장식 대부분은 관과 장식물이다.

셰익스피어 기념비
에드워드 3세의 관
엘리자베스 1세의 관


조상들에 대한 존경과 배려가 그대로 녹아있다. 역사와 전통, 그 영광에 대한 자부심은 이렇게 부려야 하는 것이다.


사원은 천 년이 되었다던데, 천 년 전에 이 건축물을 설계한 사람은 어떤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었을지 궁금하다. 그 구조의 아름다움을 한 번 살펴보자.


엘리자베스 1세의 묘실 천장 조각의 세밀함이 인상 깊다. 어떻게 깎은거지 대체.


이렇게 넓은 공간을 중심 기둥 하나로 구현한 아치의 미학

아치는 이렇게 위대하다


나는 아래 사진이 왜 멋지지 않은지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코스프레? 아마도 현대의 시대정신과 맞지 않을는지도 모르겠다.

 

이 대성당 지하에 있는 한 영국성공회 주교의 묘비에 적힌 글이 의미심장하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에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리라는 꿈을 가졌었다.

좀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자리에 누운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약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


나는 어떤 깨달음에 와있는 상태일까.


사원을 나와 지하철 역으로 걸어가는 데 빅벤 앞 공원에서 많은 학생들이 어르신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보기 좋더라. 우리나라도 저렇게 어르신들이 지혜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주빌리 라인타고 런던 브릿지 역으로 간다. 버로 마켙에서 점심을 먹어야겠다. 안 열었네. 이 시장은 대체 언제 여는걸까.


포기할 수 없지. 바로 옆 falafel 가게가 줄이 길다. 도전.

라지 하나, 스파이시 로 부탁합니다.

팔라펠은 병아리콩을 으깨 만든 작은 경단을 납작한 빵과 함께 먹는 중동 지방 음식이라고 한다.

요렇게 생겼다.

한 입 베어물고 찍어서 죄송


포장을 받아들고, 어디로 가서 먹을지 고민했다. 다리를 건너자. 런던 브릿지 북쪽, 오피스 구역에 가서 먹어야겠다. 직장인들도 점심시간일테니, 이 나라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하다.


템즈 강변에 있는 작은 공원. 직장인들이 손에는 샌드위치 등을 들고 혼자, 혹은 둘이 앉아 점심을 먹는다. 유독 혼자 오는 사람이 많다. 조용히 벤치에 앉아 멍하니 뭔가 먹고 사라진다. 어째 여기 회사원들이 더 외로운 듯 하다.


팔라펠 맛은 동그랑땡을 빵에 넣어 먹는 맛이다. 일단 움직여야 되니까 열심히 씹어서 넘긴다. 혹시 버로 마켙 근처에 가실 분들은 딴거 사 드세요.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날씨가 뭐 이러냐.

갑자기? 비가?


사람들이 다 비를 맞고 걸어다닌다. 우산은 나 하나뿐이다. 홀딱 젖는데 다들 어떻게 저렇게 태연한거지.


배터리가 얼마 안남기도 했고, 비도 쏟아져서 근처 스타벅스로 들어왔다. 내가 아는 충전할 수 있는 카페는 스타벅스 뿐이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버스타고 숙소로 간다. 에어컨을 안틀어서 버스 안이 찜통이다. 이러다 누구 하나 쓰러질 것 같다. 기사님은 땀을 비오듯 흘리고 있는데, 영국은 과연 살기 좋은 나라인 것일까. (너무 더워서 별 의문이 다 생긴다.) 한참 이동하다가 에어컨을 살짝 틀긴 튼다. 1단 정도로.


숙소에서 두꺼운 옷(해가 지면 춥다)을 좀 챙기고, 핸드폰도 충전하고, 간단히 요기를 한 후 다시 나왔다.


평소대로라면 해 질 무렵에는 돌아다니지 않는다. 오늘은 밤에 보는 런던은 어떨지, 궁금해서 나간다.


버스를 타고 템즈강 근처로 향한다.

그래도 영국에 왔으니, 버스 2층에서 바라본 풍경이 궁금하다. 유명한 영국의 2층 버스. 2층에 올라와서 보면 이런 느낌이다. (굳이 안봐도 됩니다. 그냥 기록용. 여러분의 데이터는 소중하니까요.)


해가 지길 기다린다. 런던의 야경은 또 다른 느낌이다.

해질녘 타워 브릿지


낮엔 그렇게 덥더니, 해가 떨어지니 쌀쌀하다. 아니 춥다. 패딩 필요하다.


저 멀리 세인트폴 성당이 보인다.
런던 아이 (스폰서 대표 색깔로 밝혀준다고 한다.)

런던 아이 한 칸에 25명이 탄다. 그게 32칸이 빙글빙글 돈다. 생각보다 크고 많다. 한 시간에 8000만원씩 번다고 하니, 런던 입장에서는 효자 상품이다.


빅벤


늦은 밤, 얼큰하게 취한 런던 젊은이들이 많다.

이제 그만 들아가서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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