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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Jun 14. 2023

네, 런던에 혼자 왔습니다 5

2023.06.13


5일차


최고기온 - 25
최저기온 - 12
일출 - AM 4:43
일몰 - PM 9:18


06:28에 숙소를 나선다. 버킹엄 궁 옆 그린 파크에 책을 읽으러 간다. 도로변에서 청소부들이 열심히 작업중이다. 이 도시도 저렇게 아침부터 노력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유지된다.


이 동네 교통하나는 정말 좋다. 사통팔달. 그린 파크역에 가려고 빅토리아 라인으로 간다.


앗, 갑자기 트래블페이 카드가 안찍힌다. 삑삑 에러만 뱉고 게이트가 열리지 않는다. 교통카드 사용금액이 일 정산되어 새벽에 빠져나가던데, 그 때 잔액부족이 났던게 이유같다. 확실하진 않다. 새벽에 바로 충전해놨는데, 안된다. 어쩌지 카드는 한 장 뿐인데.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 서성인다. 바쁘게 지나다니는 출근길 사람들이 이상한 듯 쳐다본다. 일단 공원에서 먹으려고 손에 들고 온 바나나를 먹었다. 이럴 땐 뇌에 에너지를 보충해줘야 한다. 그래야 생각할 수 있다.


아 맞다. 혹시 하는 마음에 애플페이로 대본다. 된다. 이렇게 먼 타국에서 한 번 더 도움을 받네요. 현대카드. 다시한번 감사합니다.


그린파크역에 내려서 프레 타 망제에 들어간다. 아메리카노, 크루아상 하나를 포장해달라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트래블카드를 가져다대니 이번엔 승인이 성공한다. 아마 일정 시간마다 재정산을 하고 그 결과를 카드 상태에 업데이트 하는가보다. 배치가 도는건지. 아무튼. 됐으니까 다행이다.


공원은 아침 일찍이라 그런지 한산하다. 조깅하는 사람들 몇몇 외에는 보이지 않는다.


어제와 같은 벤치에 앉았다. 여기가 해가 강하지 않고 좋다.


쌀쌀하다. 바람막이 걸치니 딱 좋다.

커피가 따뜻하고 고소하다.


두 시간 조금 넘게, 출근 길 사람들도 구경하고, 책도읽다가 일어선다.


테이트 모던 뮤지엄으로 이동한다.

밀레니엄 브릿지와 함께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00년에 개관한 현대 미술관이다. 원래 화력 발전소였던 공장 건물을 개조했다. 그래서 굴뚝이 그대로 남아있다. 발전소와 현대미술, 그럴듯한 조합이다.

굴뚝이 그대로 남아있다


테이트 모던 뮤지엄

테이트 모던

평일 오전. 미술관이 주는 고요한 평화가 있다. 현대 미술은 잘 모르지만, 일단 본다. 보면, 나의 무의식 저 편에서 어떤 반응이 있으리라 믿는다.


내가 알만한 작가들의 작품들도 만났다.

몬드리안, Composition C (No. Ill) with Red, Yellow and Blue 1935
마티스, Studio Interior c.1903-4
피카소, Dish of Pears 1936
마그리트, Man with a Newspaper 1928
헨리 무어, Composition 1932
피카소, The Three Dancers 1925
잭슨 폴락, Birth c.1941


인상 깊었던 작품.

제목이 ‘바벨‘ 이라고 한다.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라디오들이 현대 사회의 SNS 홍수를 표현한 걸까. 신에게 올라가려던 바벨의 시민들은 결국 언어가 뒤섞여 흩어지는 형벌을 받았다. 21세기 바벨탑 또한 언젠가 무너질런지. (동영상입니다. 데이터를 아낍시다)

Cildo Meireles, Babel 2001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이 작품이었다. 역시나 그림 앞에 한참 앉아서 지켜봤다. 믿음직스러운 척 하는 가볍고 얇은 파랑이 아니라, 찐득하고 두꺼운 파랑이라 맘에 든다.


마지막으로. 사실 이거 보러 간거였다. 근데 레플리카 란다. 에잉.

뒤샹, Fountain 1917, replica 1964


배가 고프다. 사람도 슬슬 많아지고.

버러 마켓으로 걸어서 간다.

드디어 오픈했네. 세번째 만에 성공.

먹거리들의 총집합
사람이 많다
신선한 과일들


버섯 리조또를 선택. 근데 줄이 길다.

버섯 리조또 가게
왼쪽이 버섯 볶은 것. 오른쪽이 밥 볶은 것. 둘을 섞어서 치즈를 올린다
이게 버섯 리조또

매우 짠 버섯 죽. 거기에 치즈를 섞은 맛이다. 먹을만 하다. 난 식도락쪽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시장에 사람 진짜 많네. 나는 음식 맛은 잘 모르지만, 사람 적은 곳을 좋아하는 개인 성향은 확실히 안다. 얼른 먹고 세인트폴로 간다. 아우 짜.


세인트폴 대성당

세인트폴에 미사 시간에 맞춰서 왔다. 버러 마켓에서 걸어왔는데 덥구나. 이 정도면 이상기온 맞다.

세인트폴 대성당

귀족과 사제 중심의 웨스트민스터 보다는 서민 중심의 세인트폴에 더 관심이 간다.

입장하면서 짐 검사를 했다. 모든 사원은 입장시 가방 검사를 한다. 혹시나 사원에 갈 예정이라면 쓸데없는 건 가져가지 마세요.


직원에게 ‘미사에 참여하려고 한다’고 말했더니 한쪽 방에서 기다리란다. 12:25분 쯤, ‘너 미사드리러 왔지?’ 라고 부르길래 예스 라고 하니까 들어가란다.

12:30 미사 시작.(미사 도중엔 촬영 금지다)

아름답다. 구조도, 장식도, 디테일도.


세인트폴 대성당은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 이어 유럽에서 두번째로 높은 성당이다. 크리스토퍼 렌이 설계, 1675년 첫 삽을 뜬 후, 1710년에 완공되었다. 1981년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찰스 왕세자가 결혼식을 올린 곳으로 유명하다.


’존경‘이라는 말 밖에 생각이 안난다. 성당 내부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인물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로 가득 차 있다.

위인들을 기린 조각들


여러 위인들의 납골당과 기념비를 성당 지하에 모셔놨다.

나이팅 게일
넬슨 제독


심지어 이 성당을 설계하고 건축한 건축가를 위한 전시회까지 진행중이다.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 엄청난 걸 남기셨군요.
그의 기록을 전시중이다.


꼬꼬마 학생들은 이곳에 단체로 관람하러 온다. 이런게 제대로 된 교육이다. 우리는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물론, 친일행적 등 치욕의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채 근대화를 맞이한 우리나라에, 올바른 위인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초등학생들이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지하 납골당을 관람한다


셰익스피어‘s globe

1599년에 지은 셰악스피어‘s globe를 재연해 놓은 곳이다. 셰익스피어가 직접 쓴 각본을 스스로 연출, 무대에 올린 곳이라고 한다. 극장이라고 하면 될 듯.

셰익스피어‘s globe

셰익스피어가 활동했을 당시에 연기를 하려면 귀족의 엑센트(발음)를 해야 하고, 귀족의 의상도 직접 챙겨야 하며, 그들의 문화를 알아야 했다. 대부분의 희곡이 귀족들에 대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배우들은 모두 귀족이었다.


그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셜록’의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리처드 왕의 후손이며, 휴 그랜트도 귀족 자제다. 예전 영국 출신 배우들의 독특한 분위기는 귀족의 그것이었구나. 새삼 신기하고 재미있다.


하지만 헐리우드를 통한 데뷔가 가능해진 지금, 그러한 분위기는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스파이더맨의 톰 홀랜드도 영국 출신이지만 귀족은 아니듯.


The Anchor

셰익스피어가 극을 올리고 자주 찾았다던 단골 펍이란다. 1615년에 오픈했다고 한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술을 한 잔도 입에 대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그러겠지. 하지만 셰익스피어가 단골이었던 펍이라는데 한 잔 안 할 수가 있나. 무려 셰익스피어라는데. 400년 된 펍에서 맥주를 마신다. 퍼블릭 하우스니까 나도 환영해주겠지.

The Anchor

영국에 왔으니 에일을 마시는 게 좋겠다. 기네스는 아일랜드 맥주인데, 맥주는 원산지에서 가까운 곳에서 마실수록 맛있다고 한다.


게다가 기네스는 영화 ‘킹스맨’의 요원 해리 하트의 맥주가 아니던가.

“난, 이 멋진 기네스를 마저 마셔야겠어.“ 라는 아래 장면의 대사를 기억하는지.

”난, 이 멋진 기네스를 마저 마셔야겠어“


그렇다면 기네스. 파인트로 부탁합니다.


그냥 맥주 맛이다. 술을 잘 못하는 나로서는 딱히 좋은지 모르겠다. 역시 나는 그냥 콜라가 좋다.


영국에서의 시간은 이렇게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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