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서 Jun 18. 2023

네, 런던에 혼자 왔습니다 9 (마지막)

2023.06.17


9일차


최고기온 - 26
최저기온 - 10
일출 - AM 4:43
일몰 - PM 9:20


07:00 숙소를 나선다. 오늘은 한국으로 떠나는 날이다. 가방이 백팩 하나뿐이라 어디든 갈 수 있다. 큰 캐리어였다면 마음대로 이동하기 힘들었을거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 했듯 유럽의 도로는 캐리어를 끌고 다니기에 적합하지 않다.


저녁 비행기라 시간이 좀 있다. 마지막으로 뭘 할까 어딜 갈까 고민하다가 가장 좋았던 것을 한 번 더 하기로 했다.


그린파크에 가서 앉아있고 싶다.


지하철은 많이 탔으니 걸어가보기로 하자. 좀 멀지만 마지막 날이니 괜찮다.


아침엔 시원해서 걷기 좋다

영국박물관, 차이나타운을 지나 피카딜리를 거친다.

피카딜리


갔던 장소들을 다시 만나며 걷는다.

아침은 하루를 준비하는 가게들로 분주하다.


그린 파크 도착. 한시간 반 걸었다. 선선하고 해가 뜨겁지 않아 걷기에 좋았다.

커피와 크로아상을 사서 오늘은 버킹엄 궁이 보이는 벤치에 앉는다.


이상하게 사람이 많다.

오늘이 마침 찰스왕 생일 기념 퍼레이드 하는 날이란다. 사람 많은 건 싫은데, 백만명 모이겠구만.


경찰들이 모여든다. 역시나 말을 타고 다닌다.



뭐하는 건가 싶어서 가까이 가봤다. 이미 사람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다. 심지어 텐트를 쳐놓고 기다린 사람도 있나보다.


기왕 온거, 나도 구경하고 가야지.

펜스를 사이에 두고 퍼레이드가 시작된다.


찰스왕이 즉위한 첫 해, 생일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옆에 어떤 할머니가 말해주셨다.


퍼레이드는 이런 느낌이다.


아래 영상에서 군악대가 지나간 직후, 홀로 말을 타고 선두로 지나가는 게 찰스왕, 그 다음이 왕자(아들)들, 마차에탄 건 왕비와 며느리, 그리고 손자들이다. 옆에 할머니들이 말 안해줬으면 난 누군지도 몰랐을거다. 뜬금없이 영국왕과 그 가족을 눈 앞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퍼레이드가 끝나면 왕과 가족들이 버킹엄궁 중앙 발코니에 나와 인사한다.

작게 보이는 발코니에 나와서 인사하고 있다.


행사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니, 역사와 전통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런던에 왔다가 별 걸 다 보고 가는구나.


히드로 공항으로 가는 길에 킹스 크로스역 9와 3/4 게이트도 한 번 보고 간다. 해리포터 소설 속에서 호그와트로 가는 열차를 타는 게이트가 바로 킹스 크로스역 9와 3/4 게이트다.

해리포터 영회속
실제 킹스크로스 역의 9와 3/4 승강장


이제 공항으로 간다. 언더그라운드로 한 시간 정도 이동한다.


히드로는 보안검사가 굉장히 굉장히 엄격하다. 액체류는 아예 처음부터 비닐봉지에 따로 모아서 검색대로 가져가야 한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로션 등등 불안한 건 전부 꺼내서 봉지에 넣었다.


검색대에 가방을 넣고 지나가는데 내 가방이 안나온다.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갑자기 직원이 다가온다.


“익스큐즈미 써. 마이 네임이즈 ㅇㅇㅇ. 댓 컬럼비아 백팩 이즈 유어즈?”

느낌이 안좋다. 본인 이름은 왜 밝히시는거에요 불안하게. 재빠르게 그 직원이 총을 가지고 있나 허리춤을 봤다. 다행히 총은 없구나.


내꺼 맞다고 하니, 검색 도중에 이상 물품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혹시 가방 속에 전자기기 가 있냐고 한다. 난 랩탑도 패드도 없다고 했더니.


“진짜야? 다시 한번 잘 생각해봐“ 라고 한다.

이건 본디 취조의 기술.


생각이 날 리가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고 하니, 따라오란다. 구석 어떤 검색 테이블로 간다. 무섭게 생긴 남자 직원이 서있다. “가방을 전부 열어서 검사할건데, 동의해?” 라고 묻길래, “당연하지. 열어봐바” 라고 답했다. 이 상황에서도 동의를 구하며 예의를 차리는 런던인.


가방을 열어 물건을 하나하나 검사한다. 그랬더니, 가방 저 아래서 접이식 키보드가 나왔다. 가져와서 쓰지도 않던 물건. 기억에서 잊고 있었다. 아이고.


나는 “정말 미안하다. 기억이 안났다“ 라고 사과했다. 남자 직원은 접이식 키보드를 들고 접었다 펼쳤다 하면서 나를 보더니, “이거 좋은데? 어때?” 라고 물으며 브랜드를 확인한다. 나는 “편리해” 라고 대답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최초에 나를 적발한 직원이 다가와 키보드를 확인하고는, “어쩔 수 없었다. 고맙다.” 고 말했다. 나는 “그게 당신 일이다. 고맙다.” 라고 하고 자리를 뜰 수 있었다.


집에 못 오는 줄 알았다.

진땀 난다.


시간이 좀 남았다. 라운지를 이용한다.

히드로 공항 플라자 라운지


이제 비행 시간까지 좀 쉴 수 있겠다. 쉬는 동안 글 쓰고, 업로드 하면 되겠구나.


생각난 것들 기록한다.



재미로 보는 그들의 삶.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며칠 지내면서 느낀 것으로 사실과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냥 재미로 기록한다.


카페

아메리카노를 많이들 마시더라. 에스프레소 말고 우리가 아는 아메리카노 스타일. 카페는 코스타가 많이 보였고, 스타벅스도 적지 않았다. 프레 타 망제 에서도 커피를 샀었고, 네로 같은 곳도 나쁘지 않았다. 한국처럼 저가 커피 매장은 보지 못했고, 테스코(마트) 내에 커피 머신에서 싸게 뽑아 마실 수 있더라.


패스트푸드

의외로 맥도널드보다 파이브가이즈가 많은 느낌이다. 버거킹은 한 번 봤나? 중국음식은 차이나타운 이외에선 거의 못봤고. 오히려 프레 타 망제가 패스트푸드에 가까운 느낌이다. 매장이 꽤 많다. 어딜 가도 나타난다. 케밥, 인도음식 등등이 종종 보인다.


장보기

적어도 내가 오고간 런던 시내에서는 테스코가 소매점은 대부분 장악한 듯 하다. 주요 지역마다 테스코 익스프레스가 영업중이었고, 내부 구성이나 판매하는 물건의 종류도 다양했다.

과일, 야채, 정육 등 신선한 식품도 다양하고, 냉장/냉동 식품까지 두루 갖추고 있어, 따로 시장에 갈 필요없이 테스코에서 대부분의 생필품 조달이 가능하다.


경제

영국은 물가가 많이 올랐다고 한다. 금리도 치솟고 있고, 런던 렌트비 비싼거야 워낙 유명하다. 교통비도 싸지 않다. 브렉시트 효과가 있는건지 모르겠다.


브렉시트는 49:51로 통과되었다고 들었다. 일반 영국 시민들에게 브렉시트가 뭐냐고 물었더니 대부분 구체적인 내용을 몰랐다고 한다. 이래서야 민주주의 다수결 제도가 과연 올바른 의사결정 방법인지 의문이 들 지경이다.


분리수거

여긴 분리수거 안한다. 그냥 모두 쓰레기통에 넣는다. 좀 억울하다. 나는 집에서 철저하게 분리수거 하는데, 우리보다 더 큰 나라에서는 분리수거 따윈 없다니. 지구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걸까.


결제

모든 상점 및 교통 이용시 100% 카드 결제가 가능하다. 심지어 시장에서까지도. 모두 nfc결제 방식에 굉장히 익숙하며, 가게 주인들도 아주 작은 무선 결제 단말기를 들고 다니면서 빠르고 간편하게 결제를 처리한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아주 자연스럽다


보행자

무단횡단이 잦다. 차가 없는데,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게 실용적이지 않다고 느끼는 건지, 차보다 사람이 우선이라고 느끼는 건지 잘 모르겠다. 나쁜 의미는 아닌게, 그래도 운전자가 빵빵대는 걸 본적이 없다. 오히려 무단횡단자를 기다려준다. 사람 중심의 도로라는 게 느껴져 부럽다.


외국인관광객

나라 이름은 거론하지 않겠지만, 특정 어떤 국가의 젊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느라 벌이는 민폐는 내가 다 창피할 지경이다. 한 껏 차려입고 주요 스팟에 나타나 마치 잡지 모델인 듯 갸륵한 표정과 제스쳐를 취하며 포즈를 잡는다. (꽤 웃긴다) 그럼 남자친구 혹은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이, 지친 얼굴로 열심히 사진을 찍어준다. 한 장소에서 수십장씩. 주변에 관광객이 있어 프레임에 걸리면 노골적으로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비켜달라는 분위기를 풍긴다. 헛웃음이 나왔지만, 젊을 땐 그럴 수 있지 라고 넘기기로 했다.


도시

걷기 좋은 도시다. 잘 정리된 구획, 넓은 인도, 일관된 건물 외경이 어우러져 ‘도시란 어떤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정답처럼 보인다. 물론 불편하다. 에어컨 실외기 설치를 못해서 더운 실내에서 그대로 생활해야 한다는 등의 어려움이 있다. 불편을 감수하고 도시를 지키고, 전기 사용을 줄일 것인지.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선글래스

이건 꼭 말하고 싶다. 유럽의 태양빛이 우리나라보다 더 강한 것 같다. 느낌이 아니라 진짜로. 고위도 지역이라 그런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선글래스는 꼭 쓰고 다녀야 한다. 이러다 눈알이 타버리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멋이 아니라 생존이 걸린 일이다. 그래서그런지, 거리 위 대부분의 런던 사람들은 선글래스를 착용하고 다니더라.


구글맵

구글 지도는 그냥 정말 끝내준다. 해외 여행에서 (적어도 런던에서) 종이 지도는 이제 더 이상 필요 없다. 교통편에 대한 정보는 다양한 루트와 더불어 실시간 혼잡도 까지 제공할 정도다. 구글은 정말, 그냥 끝내준다. 대신 계속 구글맵을 켜고 다니면 배터리가 녹습니다. 보조배터리 필수.


온갖 스타일이 공존한다. 개성있고 자유롭게 입는다. ‘유행’이라고 부를 만한 건 없는 것 같다. 사치품을 드러내고 과시하지 않는다. 남들이 입는 대로 따라 입지 않고, 본인의 생각을 의복으로 표현하는 개성들이 모여, 런던이라는 도시를 이룬다.


치안

치안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다. 주요 도심에만 있기도 했지만, 소매치기 혹은 그와 비슷한 분위기나 상황은 겪지 못했다. 카페에서도 가방을 두고 다녔지만, 후줄근해서 그런지 아무도 손대지 않더라. 밤에도 별 걱정없이 다녔다. 하지만 그래도 혹시 여행하실 분들은 신중하게 행동하시길.


사족

나의 아이폰12 미니 배터리 타임은 엉망이다. 구글맵을 계속 사용하니, 오전에 배터리가 거의 방전이다. 물론 오래 쓰기도 했다. 보조배터리 안가져온게 가장 안타깝다.


개인 기록

다음 여행에서 짐을 간소하게 준비하기 위해, 준비했지만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을 개인적으로 기록한다.

- 현금 : 모든 결제는 카드 터치만으로 처리가 가능했다.

- 경량 패딩 : 패딩을 입을 정도로 추운 곳에 오래 있지 않았다.

- 휴대용 키보드 : 모든 글은 휴대폰으로 작성했다. 애초에 배터리가 들어간건 가져가지 말자.

- 슬리퍼 : 슬리퍼가 숙소에서 제공되었다. 실제 도심을 돌아다닐 때 슬리퍼는 불편하고 위험하다. 무엇보다 보기에 좋지 않다. 다음부터는 숙소에서 제공되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가져가자.

- 긴 잠옷 바지 : 런던 집에는 에어컨이 없다. 숙소가 더웠다. 반바지로 지내기 적당했다.

- 자물쇠 : 자물쇠를 사용할 정도로 치안이 불안하지 않았다.

- 무선충전기 : 유선으로 충분하다. 중복 기능은 필요없다.

- 1일 1글 : 하루 일과를 그날 그날 정리해서 올리는 게 쉽지만은 않더라. 인터넷 속도가 느린 이런 곳에서, 사진과 영상이 포함된 게시물 업로드는 특히나 더 어려웠다. 하지만 결국 해내니까 뿌듯하다.



마치며.


나는 과거를 견문하고 왔다. 세계 과학 및 문명 발전의 원류를 과거로 돌아가 확인하고 싶었다.


한가지는 확실하다. 길을 비켜주고, 문을 잡아주면 감사하다고 하는 곳. 엘리베이터 문이 다 닫혔는데 굳이 꾸역꾸역 열어서 탑승할 때 미안하다고 하고, 아침에 커피를 살 때 눈을 마주치면 좋은 하루 보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운전자보다 보행자가 우선이라 도시를 걷는 데 행복한 곳.


돈,권력,지위를 가진 자가 스스로 희생했던 역사를 가진 곳. 그리고 그런 조상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기릴 줄 아는 곳.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린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넘치는 곳.


그 곳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이런 소중한 기회를 준 아내와 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다.


철저하게 홀로, 낯선 곳에서 이방인으로 지냈던 지난 9일이었다.


잘 보고 갑니다.

즐거웠어요 런던.


끝.


매거진의 이전글 네, 런던에 혼자 왔습니다 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