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서 Sep 13. 2023

강남진해장(양선지해장국), 늦은 밤 맑은 국물을 찾아서

국밥을 좋아합니다


가끔 저녁을 건너뛸 때가 있다. 간헐적 단식이나 다이어트 같은 거창한 목표는 아니다. 점심을 늦게 먹어서, 저녁 시간임에도 딱히 배고프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저녁을 거른 날은 어김없이 늦은 밤에 헛헛하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이 '규칙적인' 식생활을 강조하셨나 보다.


오늘도 그렇게 끼니를 넘겼다가, 야심한 시간에 허기가 지는 상황을 맞이했다. 벌써 11시인데, 그냥 굶을까. 그러기엔 시장기가 심상찮다. 늦은 밤, 뭘 먹는 게 부담 없을까 의미 없는 고민을 하다가, 대충 옷을 입고 부리나케 집을 나선다.


진해장에 가자.


강남역으로 슬슬 걸어간다. 늦은 밤인데도 사람이 많다. 젊은이들은 행복한 얼굴로 웃으며 삼삼오오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어디 갈까, 거기 가자, 서로 시끄럽게 떠들며 왁자지껄하다. 딱히 목적지가 없어도 즐거울 수 있는 것은 젊음의 특권이다. 또래들끼리 모여,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장소가 무슨 상관이랴. 길에서 캔맥주를 나눠 마셔도 마음이 넉넉한 시절. (나는 이제 나이가 들어서 조용하고 깔끔한 곳이 좋다)


진해장은 강남역 번화한 곳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은근히 외지고 한갓진 골목 안에 있어서 맘에 든다. 들어간다. 밤늦은 시간인데도 사람이 많다. 내부가 널따랗다. 공간이 여유 있어 번잡스럽지 않다. 다행이다.


‘한 명이요’

‘편한데 앉으세요’


혼밥 하시는 분들이 몇몇 보인다. 저분들도 늦은 저녁을 드시는구나. 대충 구석진 귀퉁이 자리에 앉는다.


‘해장국 하나 주세요‘


조금 기다리니 음식이 나온다.


진해장 양선지 해장국


부글부글 끓는 뜨끈한 국물이 맑다. 넉넉한 내장이 푸짐하다. 찾던 그 해장국이다. 이걸 양평식이라고 하나. 국물이 매콤하지만 무겁지 않고 소고기뭇국을 먹는 듯 산뜻하다. 바로 밥을 말기 싫다. 밥을 말면 국물이 걸쭉해진다.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맛있지만, 일단 지금은 맑은 국물을 더 즐기고 싶다.


소스


소스에 양을 찍어먹으면 쫄깃쫄깃 새콤달콤하다.

매콤하고 고소한 내장과 잘 어울린다.


건더기가 푸짐한 걸 표현하고 싶었는데


위에 사진에서 잘 보일지 모르겠는데, '양'이 듬뿍 들어있다. '양'은 소의 위인데, 식감이 쫄깃하고, 맛이 고소해 내장 국밥에 많이 쓰인다. 저 '양'을 적당히 집어, 위에 소개한 소스에 찍어먹으면 쫄깃,고소,새콤,달콤한 갖가지 맛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김치


김치는 시원하고 산뜻한 맛이다. 명동칼국수 식의 찐한 김치도 좋아하지만, 각자의 음식에는 어울리는 김치 스타일이 있는 법. 이미 진한 해장국의 맵고 짠맛에는 이런 식의 상콤한 김치가 어울린다. 자극적인 국물을 한 입 먹고 김치로 입을 달래주면 질리지 않고 오래 먹을 수 있다.


'맥주 하나 주세요'


맥주도 하나 시켰다. 국밥엔 소주가 제격이지만, 어쩐지 오늘은 덥고 습해서 그런지 맥주가 더 끌렸다. 혼자 오면 천천히 내 페이스대로 먹을 수 있어서 좋다. 뜨끈한 국밥 한 숟갈을 삼키고, 시원한 맥주를 한 모금하니 입을 깔끔히 헹구는 느낌이다. 국밥과 맥주, 영원히 반복할 수 있겠다. 와인도 아닌데, 이런 묘사가 열없긴 하지만 느낌이 그렇다는 거다.


주변을 둘러보니 회식을 온 팀부터, 친구끼리 한 잔 하려고 온 무리들까지 참 다양하다. 직장에서 고된 하루를 보내고, 각자의 삶을 버텨낸 사람들이 모여 내남없이 웃고 떠들며 애환을 달랜다. 저마다 애처롭고 딱한 사연을 안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근심걱정을 잊는다. 그러기에 국밥보다 더 좋은 음식이 있을까 새삼 따끈한 국물에게 고맙다.


천천히 음미하며 국밥 한 그릇과 맥주 한 병을 거뜬히 비우고 나니, 배가 따뜻하고, 기분이 만족스러워 느른하다. 이대로 집까지 걸어가면 적당히 소화도 되고 딱 좋겠다.


나는 국밥을 좋아한다.

세상엔 맛있는 국밥집이 많으니, 앞으로도 가 볼 곳이 무수하다.

다음은 어떤 국밥집에 가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