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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Jan 22. 2024

라스베이거스에 왔습니다 5 (마지막)


아침먹으러 데니스 또 감


도시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마카오랑 비슷하다.

물론 주택가에는 가보지 않았으므로 중심 관광지만 느껴본 단편적인 인상이다.

가볍고, 얕은 분위기.

아무래도 관광객을 끌기 위한 카지노와 호텔 중심이니 그런 분위기일 수 밖에 없었겠지. 어쩐지 인위적이다. 사막 위에 만든 거대한 모델하우스. 동부 도시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역사와 전통의 분위기는 전혀 없다.

이 넓은 땅에도 교통체증은 있더라


그래서 뭐랄까.

별로 구경하는 재미가 없다.

나는 오래된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도시에 스토리가 없는 느낌이다.

알맹이는 없는, 화려하기만 한 껍데기 같다.

폐허 위에 서 있는 기분.(물론 '라스베이거스의 탄생 비화와 역사'를 제대로 공부한다면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 입장에서)

흔한 카지노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보니, 대니 오션의 어딘가 모르게 허망한 표정이 이 도시와 닮았다.

크게 한 탕을 치고도 행복하지 않은 것 같고, 다시 다른 사냥감을 찾아 나서는.

돈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

욕망으로 가득차 술에 취해 슬롯머신을 당기지만, 호텔방 안에선 외로워 아무도 웃지 않는 도시.

그 자체가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가면 뒤의 숨겨진 본 얼굴이 아닐까.

인적 없는 뒷골목


반포 한강공원 옆에 만들어놓은 '세빛둥둥섬'을 혹시 아는지? 무려 1,390억을 들여 만들었다던데. 그걸 계획한 사람과 당시 서울시장은 뿌듯해할지 모르겠다만, 나는 지나가며 그걸 볼 때마다 혐오스러운 기분이 든다. 특히 밤에 보면 촌스럽기가 이루 말 할 수 없다.

세빛둥둥섬


라스베이거스 도시 전체가, 그런 세빛둥둥섬을 수십 수백개 띄워놓은 느낌이다.

(근데 이렇게 써놓고 보니, 세계 최고의 관광지인 라스베이거스한테 미안하다. 그 정돈 아닌데. 세빛둥둥섬의 혐오스러움에 비할 바는 절대로 아니다. 사과합니다. 그냥 느낌이 살짝 그렇다는 거에요.)


잘 모르겠다.

샌프란시스코는 조금 다를지도, LA는 어떨지. 거긴 여기와 다르게 깊고 진한 분위기를 갖고 있을 수도 있다. 고작 1주일 지내본 것으로 별 같잖은 비평을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차피 여행이라는 건 개인 취향이잖는가. 정답은 없다.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다시 선택하라면 나는 역시 동부로 가겠다.

거기서 느꼈던 역사의 굴곡, 그 역동적인 스토리에서 풍기는 진한 분위기를 잊지 못했나보다.

호텔 Aria, 정말 크다


라스베이거스는, 나와는 맞지 않는 도시다.

많이 봤으니 이제 집에 돌아가자.

공항으로 이동했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 공항 출국장에 카지노 머신이 있다. 그것도 많이 있다.

아예 공항에 방을 만들어 놨네


나를 한국으로 데려다 줄, 오늘의 비행기.

잘 부탁합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기내식으로 비빔밥을 너무나 먹고 싶었다.

며칠 동안 느끼한 음식만 계속 먹었어서, 매콤한게 간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빨리 소진되는 바람에 내 차례에 이미 비빔밥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어쩔 수 없죠. 라고 말하자. 죄송하다며, '볶은 고추장'을 좀 드릴까요? 라고 하셨다.

아! 감사합니다. 라고 했다.


볶은 고추장은 어떤 음식이든 먹을 수 있게 바꿔준다. 이런게 마법이지.

친절하게 볶은 고추장을 제안해 준 항공사측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어쩐지 볶은 고추장 이야기로 여행기를 끝맺게 되어 볼썽사납지만,

살짝 우울했던 라스베이거스 여행의 마지막을,

한국 고유의 맛과 친절함으로 마무리 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누구나 자기에게 맞는 도시가 있고, 그렇지 않은 도시가 있다.

그걸 찾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짐을 싸고 어디론가 떠나, 여행한다.


지금 머물고 있는 직장과 사회,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좌절하거나 포기하면 안된다.

계속 헤쳐나가고 극복하려고 노력하면,

결국 언젠가는 나에게 맞는 도시를 찾아 자리잡을 수 있다.

그 과정이 결국, 인생이 아닐까.


죽음을 앞둔 사람이 제일 후회하는 것은
‘삶을 그렇게 심각하게 살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별의 순례자이며,
단 한번 즐거운 놀이를 위해 이 곳에 왔다.


당신도, 그 도시를 찾을 수 있길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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