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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Mar 20. 2024

신의주 찹쌀순대, 순댓국의 표준 같은 맛


꼭 노포가 아니더라도 좋다. 체인점도 맛있다. 오래된 체인점은 이유가 있다. 치열한 순댓국 시장에서 살아남았다는 건, 한번 방문해 볼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신의주에 직접 가 본 적은 없지만, 신의주 순댓국이 궁금하다. 신의주 사람들은 어떤 순대를 만들고 먹을까.

신의주 찹쌀순대. 간판에서 세월이 느껴진다


순댓국 하나 주세요. 하고 구석 자리에 앉았다. 밑반찬이 탁탁 빠르게 세팅된다. 오래된 집은 프로세스가 명확하다. 깍두기, 무생채, 부추, 새우젓.


순댓국밥도 금방 나온다. 바글바글 끓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렇지, 바로 이거지.


맑은 순댓국 같지만 뒤적뒤적해보면 다진 양념이 안에 들어 있다. 고기와 순대가 적당한 양이다.

다대기가 숨어있다.


다진 양념을 풀었다. 빨간 국물로 서서히 변하는 모습이 신비롭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우주가 연상된다. 순댓국과 우주의 관계는?


들깨 가루 한 스푼, 고소함을 넣는다.

들깨 가루


국물이 막 얼큰한 건 아니다. 보기엔 빨간데 안 얼큰하다. 국물이 기름지다. 게다가 좀 싱겁다. 입맛에 맞게 간을 할 수 있는 것이 순댓국의 매력 아니던가. 새우젓으로 간을 했다. 좀 짜야 맛있다. 나트륨의 힘이다.

새우젓


이게 바로 신의주 찹쌀순대구만. 새우젓에 찍어 먹어본다.

순대


밥은 반만 말았다. 밥을 한 번에 다 말아버리면 국물이 전분기에 걸쭉해진다. 나는 그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항상 밥을 반씩만 말아먹는다. 이건 괜한 고집이 아니다, 어느 순댓국 집에 분명히 그렇게 쓰여 있었다.

좋은 가이드다.


적당히 말아 놓은 밥이 국물을 흡수한다. 탄수화물과 나트륨이 조화를 이룬다. 인간이 좋아하는 맛.

밥을 조금 말았다.


계속 고기가 나온다. 건더기가 실하다. 막 어마어마하게 많은 건 아니고 딱 적당한 정도다.

고기


깍두기는 싱겁고 밍밍하다. 단무지를 고춧가루 물에 담갔다 건진 느낌인데, 가벼워서 국밥과 어울린다는 분들도 있겠다. 난 아니다. 난 진한 양념을 좋아한다.

깍두기


매뉴얼에 무생채를 넣어먹으라고 해서 넣었다. 인생을 살며 무슨 일을 하든, 매뉴얼은 꼼꼼히 읽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무생채를 넣고 휘적휘적한다. 앞서 넣은 무생채와 부추의 색감이 좋다. 이 정도 야채가 들어가면 건강식이라고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무생채 투하


한 입 떠먹어 보니, 오 좋다. 기름진 국물을 무생채가 눌러준다. 역시 매뉴얼을 읽어봐야 한다. 짭짤한 국물과 함께 아삭아삭 씹히는 무생채의 식감이 좋다.


결국 다 먹었다.


신의주 찹쌀순대의 국물은 순댓국계의 표준 같은 국물이다. 어느 한쪽에 치우쳐 과하지 않다. 적당히 고소하고 기름지다. 점도가 낮아 끈끈한 맛은 없다. 쿰쿰한 냄새도 없고.


적당한, 선을 넘지 않는, 현대화된 순댓국의 전형이다. 그러다 보니, 막 특출 나거나 인상 깊은 맛은 아니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는 뜨끈한 한 끼 식사로 적절하다. 중도의 미학, 이것이 체인점의 힘이 아닐까.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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