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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Jun 27. 2021

지금 이직을 한다구?

회사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PM으로서의 이직.

이것은 내 이직의 합리화를 위한 글이다.


'안락 지대' 라는 말이 있다. Comfort Zone. '쑤린'의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 에 나오는 단어로. '익숙한 환경과 자신이 잘하는 일, 친한 사람들과의 교류 등 한 개인이 살면서 편안함을 느끼는 범위' 를 말한다고 한다. 이 '안락 지대'에 오래 머물게 되면 성장의 기회를 잃고, 마치 따뜻한 물 속의 개구리처럼 서서히 익어가며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안락 지대에 연연하면 게으름이 습관이 되고 열정은 식어버린다. 보통 '매너리즘'에 빠진다. 라고 표현한다.

책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가> 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삶은 변화의 연속이다. 그러니 지금의 편안함에 안주하지 마라. 편안함에 익숙해지면 바보나 멍청이가 되어 아무 일도 이룰 수 없게 될테지만, 지금의 편안함을 과감히 포기할 줄 알면 분명 달콤하고 신선한 치즈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위 글귀들의 맥락은 모두 비슷하다. '고이면 썩는다.' 라는 거다.


근데, 정말 솔직히 말해보자.

한 직장에 오래 다니면 편하잖아.

그건 우리 모두가 안다.


오래 다니면 일도 루틴하게 익숙해진다. 패턴을 몸에 익힐 수 있다. 아는 사람 많아지고 네임드가 되면 업무 협업도 스무스하다. 큰 부담 없이 다닐 수 있다. 친한 사람들하고 점심먹고 커피도 한 잔 하고, 히히덕 거릴 수도 있다. Comfort Zone, 그 동그라미 안은 안락하고 따스하다. 온실 같다.


전 직장에서 이직한다고 했을 때, 윗 차장이 나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야, ㅇㅇ아. 너 조금만 더 버티면 진급도 하고 리더도 할 수 있잖아. 이 업무도 이제 빠삭하고. 왜 그러는거야 대체. 옮겨갈 회사가 어디라고? 아니 왜 사서 고생을 하려고 하냐. 참 나, 이해가 안가네."

며칠 전, 이직 의사를 전달한 직후에 있었던 직속 상사와의 면담에서는 이렇게 얘기하더라. "아니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네, 왜, 왜그러는거야 대체? 뭐가 문제야? PM역할 잘 하고, 그 도메인은 ㅇㅇ씨 없으면 돌아가지 않을 수준으로 꽉 잡고 있잖아. 스톡옵션들은 다 포기할꺼야? 지금처럼 일하면서, 옵션 행사도 하고, 편하게 지내면 되는 걸 아니 대체 왜. 이해가 안가서 그래 내가."


모두 이해가 안간다고 했다. 그냥 있으면 되는데, 대체 왜.

하지만, 한 도메인에서 사람이 히스토리가 되고 네임드가 되면 반드시 썩게 되어 있다. 권력이 발생하고, 팀원들과의 관계에서 알 수 없는 힘이 영향을 끼친다. 정치가 등장하고, 친목으로 의사 결정이 이루어진다. 누구도 컨트롤 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그래서 대기업은 업무 순환이라는 걸 시킨다. 조직장 한 명이 혹은 핵심 팀원 한 명이 한 도메인을 오래 점유하면, 언터처블이 되니까, 사람이 히스토리가 되니까, 그걸 무기로 써서 권력을 행사하니까, 그렇게 썩어가니까.


내가 썩었단 얘기는 아니다.(아니 솔직히 잘 모르겠다.) 썩을 까봐 무서웠다. 어느 순간 회의 때마다 내가 아는 얄팍한 지식을 무기삼아 타 서비스들의 업무 수행에 태클을 걸고, 안된다고 하고, 생색을 내고, 네임드로서 정치질을 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느껴졌다. 구역질이 났다. 그렇게 썩어서 악취가 나는 모습이 될까봐 걱정됐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타인은 나를 썩을대로 썩은 고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좋아하는 영화 중에 '월드 워 Z' 라는 작품이 있다. 좀비가 창궐한 세계에서 해답을 찾기위해 동분서주하는 UN소속 조사관(브래드 피트)의 분투를 그린 영화다.(이렇게 설명해도 되려나. 암튼.) 영화 초기 브래드 피트의 가족은 필사적으로 탈출하다가, 어떤 건물의 스패니쉬 가정집에 몸을 숨기게 된다. 건물 주변은 온통 좀비 천지. 언제 가정집으로도 좀비가 뛰쳐들어올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다행히도, 브래드 피트의 친구인 UN 사무국장이 해당 건물 옥상으로 헬기를 보내준다고 한다. 브래드 피트는 스패니쉬 가족에게 같이 가자고 제안한다. 어떻게 해야하지? 스패니쉬 가족의 가장은 '우리는 여기 그냥 머물겠다.'고 한다. 괜히 옥상으로 이동하다가 좀비에게 당할 수 있으니, 집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는 거다. (이해가 간다. 공포심은 이성을 마비시킨다.) 이때, 브래드 피트가 말한다. '안된다' , '같이 가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Movement is life

(이동해야 산다. 움직여야 산다. 정도로 이해했다.)


여기 멈춰 있으면 죽어요 아저씨.

움직여야 살아요.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안락한 Comfort Zone에 있으면, 따뜻한 물 속의 개구리처럼 서서히 익어간다. 발전할 수 없다.

익숙함에 젖는다. 젖은채로 고인다. 고이면 썩는다. 시나브로.


나는 과연 올바른 선택을 하는 걸까? 혹시 포기하고 도망치는 게 아닐까?

조던 피터슨은 <질서 너머> 에서 아래와 같이 얘기했다.

"어떤 것을 겨냥하라. 현재 개념화할 수 있는 최고의 목표를 정하라. 그 목표를 향해 비틀대며 나아가라. .... 높고 고상하고 심오한 어떤 것을 겨냥하라. 그 과정에서 더 좋은 길이 나타나면, 일단 몇 걸음을 걸어본 다음 경로를 바꿔라. 하지만 조심하라. 길을 바꾸는 것과 포기하는 것이 쉽게 구분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땐 방법이 있다. 현재의 길보다 더 어려워 보인다면, 마음을 바꿀 때 당신이 자기 자신을 속이거나 배신하지 않고 있다고 확신해도 좋다. 이런 식이라면 지그재그로 전진하게 된다. .... 그럼에도 배움과 변화를 통해 당신은 계속 전진할 것이다. 그리고 뜻이 있고 운이 따른다면, 당신은 의미 있고 생산적인 이야기를 발견할 것이고, 시간과 함께 그것을 더 좋게 다듬어갈 것이며, 아마 순간적인 만족과 기쁨 이상의 것을 얻어낼 것이다."


매일매일이 비슷하고 답답한 그저그런 업무가 계속됐다. 적당히 아는 업무로 그저그렇게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안락함을 탐하는 마음을 극복하고 싶었다. 여기서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움직여야 한다 잘 알지 못하는 불편한 곳으로 도전해야 한다. 그러면 내 안락 지대는 점점 넓어진다. 내 식견도 같이 넓어지고, 그 과정에서 나는 성장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 업무에서도 또 다른 도약을 위해 도전할 수 있다. 다른 팀으로의 전배도 있을 수 있으며, 업무 순환을 요청해 전혀 다른 보직으로 발령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오래 이 회사에 고여있었다. 어디를 가도 나는 'ㅇㅇ 도메인을 기획하던 ㅁㅁ씨' 로 받아들여질 것이고, 네임드로서, HIPPO를 충분히 휘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안락함의 종류와 느낌이 달라질 뿐이다. '도전'이라고 자위하고 여전히 Comfort Zone에 발을 딛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이직을 결정했다.


이 글은 내 이직의 합리화를 위한 글이다. 나는 인간이니, '이미 결정을 내려놓고 논리를 거기 끼워맞추는' 식의 생각에 익숙하다. 내 뇌는 그렇게 작동한다. 이 글도 마찬가지겠지. 이미 '이직을 결정'했으니, 이직의 이유를 어떻게든 근사하게 끼워맞추는 셈의 글일테다.


뭐 어쩔 수 없지.

결정을 했으면, 그것이 옳은 결정이 되도록 노력하면 되는거다.

'불편한 곳'으로 가보자.

어떻게든 되겠지.


Movement i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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