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역. 태어나서 처음 와봤다. 요새 혼자 여기저기 잘 다닌다. 요마적 내 유일한 낙이다. 서울구경.
약수시장이라는 데가 있다. 논현동엔 영동시장이 있고, 약수동엔 약수시장이 있구나. 서울 풍물지리
수첩에 한 줄 더 추가한다.
시장 안 가게들이 정감있다. 미용실의 노란 색감이 따뜻하다.
약수시장 안에 약수순대국이 있다.
안에 들어왔다. 어마어마한 명성에 비해 좁다.
“한 명이요” 하니까, 1인석으로 안내해주신다. 너무 좁은데. 좌우도 좁지만 앞뒤는 큰일이다 이거. 의자를 조금만 뒤로 밀면 바로 뒤 테이블에 부딪힌다. 좁은 틈으로 사람이 지나갈 때 마다 치고간다.
“순댓국 하나 주세요.”
밑반찬은 별거 없다. 깍두기는 직접 테이블 위 통에서 퍼담으면 되고, 새우젓도 앞 작은통에서 적당히 덜어담으면 된다.
나왔다. 빠르다.
국물 부터 한 숟가락 먹어본다. 깨끗하고 맑다. 곰탕같은 모양새. 밍밍하다. 별 맛이 안난다. 이게 순댓국 매니아들에게는 호불호가 있을 듯 하다.
하얀 도화지 같다. 도화지 위에 내가 이제부터 그림을 그리면 된다. 사용할 붓과 물감은 소금과 새우젓이 되겠네.
소금하고 새우젓으로 적당히 간을 하고 안에 들어있는 다대기를 풀어준다. 어디 한 번 맛을 볼까.
자 그럼.
아니 이 맛은!!!
한 숟가락 먹고. 바로 감탄이 나왔다. “오!”
깨끗하지만 마냥 가볍지만은 않고, 적당히 진한 육수가 매콤짭짤하게 입안 가득 퍼진다.
밥이 말아져나온다. 토렴식.
깍두기 아삭아삭 새콤쪽이다. 달콤하기도 하고. 큼직큼직해서 좋다.
고기 진짜 맛있네. 여기 진짜 뭐지.
새우젓이 남다르다. 새우가 크고 실한데다가 청양고추가 썰어 들어가있는데, 고기와 같이 먹기에 최고의 조합이다. 새우가 커서, 새우젓에 찍어먹는 느낌이 아니라, 새우 요리를 겻들여 함께 즐기는 기분이다.
고기 양이 어마무시하다.
내가 좋아하는 오소리감투까지.
여긴 고기가 다했다. 고기가 쫄깃쫄깃, 아니 쫠깃쫠깃하다. 씹으면서도 탄탄한 식감에 쾌감이 몰려온다. 인류가 원시시대부터 고기를 씹어 먹으며 느꼈던, 턱 근육의 뻐근함에서 오는 그런 쾌감이다. 게다가 고기가 죄다 크고 두껍다. 이건 먹어보면 안다. 여타 국밥집의 흐물흐물하고 얇은 고기와 차원이 다르다.
고기봐라 진짜. 이거이거 이래도 되는건가.
여기 진짜 잘한다. 나는 맛 없으면 그대로 솔직히 글로 표현하려고 한다. 근데 여긴 맛있다. 감히, ‘발군’이라는 단어를 써보고 싶다.
줄어든다. 아.. 안돼 ㅠㅠ
다 먹었다.
단거리를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게 뛰고 난 기분이다. 정신없이 달렸다. 맛있게 뛰었다.
단점도 있다.
다닥다닥 좁은 실내가 불편하다. 일인석은 거의 구속수사 받는 느낌인데, 사람 많을 때는 폐소 공포증 올 것 같기도 하다. 가방은 커녕, 겉옷을 벗어놓을 작은 공간도 없다. 사람이 바글바글 했다면, 난 어쩌면 체했을 수도 있겠다.
대기가 길다보니 저녁에 여럿이 와서 안주와 함께 술도 한잔 하면서 웃고 떠들며 즐기기엔 눈치 보이고 불편할 것 같다. 미안하기도 하고. 실제로 바쁜 시간엔 술 안판다고 한다. 차라리 혼밥자리로 전석을 세팅했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어쩌랴. 맛있는 건 사실이니. 가볍고 깨끗한 국물이 부담스럽지 않아 술술 들어갔다. 거기에 큼직하고 쫄깃 탄탄한 고기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뚝배기에 고개를 처박고 정신없이 먹었다. 이렇게 먹은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여유 있을 때, 낮에 사람 별로 없을 때, 혼자 와서 천천히 먹는다면 최고의 집이다. 긴 대기를 참아내고, 눈치도 좀 보며, 좁은 자리에 다닥다닥 앉아 먹을 수 있다면 저녁에도 도전할 가치는 충분하다.
맛있으니까.
그거면 된거지.
오늘도 정말 잘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