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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May 10. 2024

청송옥, 서울 시내에 이런 장터국밥이 있다고?


광화문에 왔다. 늘 그렇듯 국밥 먹으러.

식당까지 걸어가는 길이 운치 있다.

청계천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운가보다.


돌담길도 오랜만이다.

덕수궁 돌담길


이 동네는 낭만이 있다. 강남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 무엇.

대한문, 날아오르는 처마 끝이 아름답다


오늘은 경상도식 장터국밥을 먹으러 왔다. 시청 앞에서 근무할 때 자주 찾던 맛집이다. 1984년 오픈 40년 된 노포.


실내. 저 위 들보와 서까래를 보면, 이 집의 역사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 이런 분위기가 바로 노포지. 내가 처음 찾았던 20년 전과 다를 바 없어서 좋다. 요샌 이렇게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경외심이 더 커졌다. 한결같은 게 참 어려운 거다.


벽에 걸린 신문기사를 보자.

이 가게 소개 같은데, 2004년 신문이니 딱 20년 전 기사군.


기사를 읽어보면, 당시 여기 국밥 한 그릇 값이 5500원 이란다. 물가 상승이란 게 새삼 무섭구나 싶다.


자리에 물주전자가 있다. 알아서 따라 마시면 된다. 보리차 같은데.


반찬은 김치와 깍두기 통에서 덜어먹으면 된다.


이렇게.


나왔다. 드디어. 장터국밥.

그렇지 바로 이거지.

어릴 적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이걸 먹으러 자주 왔었다.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구만.


이 집의 시그니처. 소면 사리가 같이 나온다. 양이 많다. 이따가 넣어먹자.


후추를 좀 뿌린다.


국물은 보기보단 덜 맵다. 사골과 양지머리로 우려낸, 우리가 익히 아는 장터국밥의 맵고 짠맛. 얼마 전 리뷰했던 ‘우리나라 국밥’의 매운맛은 조금 고통이었는데, 이 집은 맛있게 맵다. 이것이 전통의 힘인 건가.


건더기가 많다.


고기


얼른 소면을 넣어보자. 삶은 지 오래된 소면은 뚝뚝 끊어지고 밀가루 맛 밖에 안 나는데, 여긴 탱글탱글하다. 바로 삶아서 내주는 것 같다. 이런게 디테일이지. 만족스럽다.


풍덩


소면에 국물이 코팅되었다.

적당한 기름기의 고소함과 맵고 짠 양념이 면발과 함께 입으로 들어온다.


고기랑 같이 집어 올린다. 부드러운 소면의 식감이 쫄깃한 고기와 어울린다.


김치랑 먹어도 좋고.


깍두기도 새콤달콤. 그냥 다 맛있다.


잘 익은 무가 입 안에서 스르르 녹아 사라진다.


국수를 조금 남기고 밥을 만다.

숟가락으로 밥을 떠올릴 때, 소면 몇 가닥이 같이 따라 올라오면 그 맛이 또 기가 막힌다.

그래서 국수를 조금 남기고 밥을 말았다.


이런 느낌적인 느낌으로. 면 가닥이 따라 올라온다.


김치도 올려서 크게 한 입 뜬다. 장터국밥은 이렇게 먹어야 제 맛이지. 고개도 들면 안된다.


소면과 밥의 전분기가 녹아들어 국물이 진해졌다. 지금 국물 상태가 맘에 든다.


아쉽지만, 다 먹었다.

완료


점심시간에 사람이 항상 꽉꽉 들어찼던 기억이 난다. 여기서 먹으려고 사무실에서부터 뛰어오곤 했었는데, 그게 벌써 10년이 훌쩍 넘은 옛이야기라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고, 아련하다.


그땐, 이 국밥이 왜 그리도 맛있었는지. (물론 지금도 맛있다.) 당시 선배들과 회사 구내식당에서 먹기 싫었던 것도 컸다. 점심시간은 온전히 나를 위해 쓰고 싶었다. 뜨끈한 국물을 들이켜고 땀을 뻘뻘 흘리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기도 했고.


조금 더 첨언하자면, 점심시간만큼은 후배나 부하사원 건드리지 말고, 자유롭게 좀 놔뒀으면 좋겠다. 숨 좀 쉽시다. 숨 좀. 요새도 밥 따로 먹겠다고 하면 삐치고, 성질부리고 하는 리더나 조직장이 있으려나. 부디 그러지 않길 빈다. 너무 촌스럽잖아 그런 건.


간만에 추억 여행 잘했다. 그나저나 이 근처에 오랜만에 와보니 맛집이 많구나. 왜 옛날엔 몰랐을까. 조만간 시청 앞에 다시 와야겠다. 맛집이 많은 걸 확인하니 두근두근하고 설렌다. 이런 재미로 사는 게 인생 아니겠는가.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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