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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Jul 20. 2024

영화 ‘달콤한 인생’도 결국은 직장생활 이야기지



영화 '달콤한 인생'


좋아하는 작품이다. 김지운 감독은 이 영화의 전작인 '장화, 홍련'을 시작으로, '달콤한 인생', '악마를 보았다' 등을 연출했는데. 언급한 영화 이외에는, 나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기진 못했다. 최근 발표한 '거미집'도 괜찮긴 했..


이 영화 '달콤한 인생' 만큼은 솔직히 말해 조금 충격이었다. 스토리와 액션도 물론이었지만, 미장센, 소위 때깔이 너무 좋았다. 당시에는 드문 세련된 연출이 돋보였으며, 진지함과 유머를 넘나드는 ('지금 웃어야 되는 건가?' 싶은) 묘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주인공은 이병헌이 연기한 '선우'. 그는 호텔 지배인이라는 타이틀이지만, 사실은 사장의 오른팔. 사장이 시키는 온갖 궂은 일은 다 한다. 이 영화는 그의 살아남기 위한 고군분투를 그린다.


뒤에 이야기하겠지만,

나는 이 영화의 내용이 우리네 '직장 생활'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쭉 해왔다.


선우


손꼽히는 오프닝 씬. 나레이션이 기가 막힌다.

이병헌이 낮은 목소리로 읊조린다.

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것입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것입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은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니 마음 뿐이다."


혹시 듣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로 들어가시면 됩니다.(29초 소요)

https://youtu.be/hHW6_Sd81do?si=B0ioaQt3CKAgTiVv


앞서 이야기했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한 남자의 직장 생활을 그려낸 것 같아서 자주 깊게 몰입한다.


남의 일 같지 않은 것이다.


어떻길래? 몇몇 장면들을 같이 보자.


장면 1

선우와 문실장의 다툼씬.


문실장은 사장의 왼팔로 선우와는 라이벌 관계다. 그는 양아치 혹은 깡패에 가깝다. 선우와 문실장은 서로 영역을 적당히 갈라놓고, 각자 사장에게 충성을 다한다. 선우는 문실장이 자꾸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수습할 수 없는 판을 벌이는 게 못마땅하다. 문실장 때문에 선우의 업무에도 영향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문실장이 처리(수습)해야 할 일을 선우가 대신해 주었다. 하지만 문실장은 고맙다는 말은커녕, 왜 그렇게 일을 처리해서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냐며 오히려 적반하장이다.


선우 : "문실장, 이거 니일이야. 너 없을 때 내가 처리한 거라고, 이 정돈 니 선에서 막았어야지."

문실장 : "너 지금 나한테 설교하냐?"


자기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동료가 대신 힘든 상황인데,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은커녕 막무가내에 안하무인이다.


아,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저 '문실장' 이라는 인물은 내가 가장 무서워하고 피하고 싶은 '몰상식한' 인간의 전형이다.


문실장과 그의 행동, 정말 회사의 누군가와 비슷하지 않은가?



장면 2

사장님(조직 보스, '강사장')과 울분에 가득 찬 대화


선우 : "저한테 왜 그랬어요? 말해봐요. 저한테 왜 그랬어요?"


강 사장은 왜 선우를 버렸을까. 답을 들어보자.

강사장 :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아, 모욕감을 줬단다. 일을 그렇게 잘했는데도, 개처럼 7년 동안 일했는데도, 모욕감을 주면 안 되는 거구나.


선우는 그 답을 듣고 더욱 화가 나 묻는다.

선우 : "아니 그런 거 말고, 진짜 이유를 말해봐요. 말해봐요. 저 진짜 생각 많이 해 봤는데, 저 정말 모르겠거든요? 말해봐요.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된 거죠? 말해봐요. 저 진짜로 죽이려 그랬습니까? 나 진짜로 죽이려고 그랬어요? 7년 동안 당신 밑에서 개처럼 일해온 날! 말 좀 해 봐요. 무슨 말이든지 좀 해 봐!"


결국 이병헌은 7년 동안 회장님을 위해 개처럼 일했음에도 버림받는다.

고작 회장님의 심기를 거슬렸다는 이유로.

일을 아무리 철저하게 잘해도, 결국은 기분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직장인의 설움이다. 팀장님 기분 따라 달라지는 그날그날 우리네 인생사.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우리 마음 뿐이다.



직장 생활이란 그런 것이다.

일을 잘하는 사람보다, 자기랑 밥 먹어주는 딸랑이. 자기 농담에 오버액션하며 웃어주는 딸랑이. 술자리 따라다니고, 골프 따라다니는 딸랑이들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


결국 자기에게 입에 발린 좋은 말만 하는 팀원을 찾는다. B급이 C급만 찾게 되는 이유다.


일 잘하는 것보다, 팀장님 심기 보좌하는 게 효과가 더 좋은 웃기는 상황.


오늘도 우리들은 팀장님이 혹시나 '모욕감을 느끼시진 않을지' 전전긍긍이다.

대한민국 직장인들, 화이팅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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