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드라마 ‘스토브리그’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백승수 단장과 권경민 상무의 포장마차 술자리. 권상무는 만취상태에서 백단장에게 술을 권하지만, 백단장은 무시하며 마시지 않는다. (나는 그래서 백단장이 좋다.)
권상무는 소위 말하는 낙하산이다. 구단주 조카라는 이유로 '구단주인 척' 안하무인 행동한다.
그 자리에서 백단장은, 자신보다 한참 윗사람인 낙하산 상무에게 이렇게 말한다. 한국 드라마 역사상 희대의 명대사이며, 대한민국의 모든 낙하산들에게 보내는 촌철살인의 한마디.
어떤 사람은 3루에서 태어나 놓고 자기가 3루타를 친 줄 압니다.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지만.. 자랑스러워하는 꼴은.. 보기 좀 민망하죠."
위에서 꽂아준 자리에 편하게 내려앉아놓고,
그게 마치 본인의 능력인 척하는 자기객관화 결여.
낙하산들이 무서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스스로를 '선택받은 자'라고 생각한다.
본인들은 윗선의 신임을 받고 있으니, 자기들이 하는 말이 진리이며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실장님께서 말씀하시길' 이라고 밑밥을 깔며 자기들의 뒷배를 과시한다. 그 과정에서 자기 객관화 능력을 상실, 본인이 정말 역량이 있어서 3루에 있다고 착각한다. 이들이 자주 하는 말은 “인맥도 능력이야~~” 인데, 주변에서 비웃고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다.
창피를 모른다.
말도 안 되는 업무 진행, 우스운 정책 정의, 광팔이 프로젝트 등을 사람들이 반대하고 비웃어도, 꿋꿋하게 밀고 나간다.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이해도 못하고 해결할 방법도 모른다. 통찰이나 인사이트는 없다. 대충 화면만 예쁘게 고치면 실장님이 자기를 이뻐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욕하고 비웃어도 공감을 못한다. 그렇게 일하는 게 창피하다는 것을 모른다. 창피를 모르니 무서울 게 없다.
뻔뻔하다.
잘못되고, 문제가 터지고, 상황을 악화시켜도 뻔뻔하다. 내 잘못이 아니며, 부하직원들 역량이 따라주지 못해서 벌어진 일일 뿐이다. 뻔뻔하게 얼굴을 들고 다닌다. 당장 문제가 심각한 프로젝트 오픈이 내일모렌데, 당당하게 해외출장으로 도피한다. 해외에서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이슈도 딱히 없지만, '여기저기서 말 나오지 않게! 문제없도록 하세요! ' 라고 뻔뻔하게 지시하고 해외 출장을 즐기러 나간다. 남아있는 조직원들은 한숨만 쉴 뿐이다. 낙하산은 남들이 수군대든, 욕하든 뻔뻔하게 행동한다. 왜? 나는 실장님이 지켜주는 사람이니까.
질 낮은 패거리들을 영입한다.
B급 낙하산 사장 하나가 순식간에 회사를 망가뜨린다. 그는 C급 실장들을 잔뜩 낙하산으로 데려오고, 그 C급 실장들은 D급 팀장들을 잔뜩 데려오고, D급 팀장들은 폐급 실무진들을 낙하산으로 영입해 온다. 그들은 모두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창피를 모르고’, ‘뻔뻔하며’, ‘자신이 능력이 있어서 3루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순식간에 회사는 폐급들로 가득 차고, 그들은 ㅇㅇㅇ출신이라는 카르텔을 형성해 정치판을 만든다.
스스럼없이 해사 행위를 한다.
이게 가장 위험하다. 낙하산은 회사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를 꽂아준 사람에게 충성한다. 업무 프로세스, R&R, 사용자 편의, 정책의 일관성, 운영 원칙, 회사의 미래 따위는 그들에게 아무 필요가 없다. 오로지 나를 꽂아준 주인을 위해 뛰어다니는 개처럼 행동한다. 그 과정에서 팀원이나 조직원들의 어려움이나 업무과다,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의견 등은 가볍게 무시한다. 시키면 해야지? 나는 실장님이 데려온 사람인데?
나는 요새 '상식을 모르는 사람'들이 가장 무섭다. 좀비 같고, 괴물 같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회사 내에도 다수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로부턴, 공포스러운 그들과 엮이지 않으려 최대한 노력한다.
'상식을 모르는' 낙하산들이 무섭다.
그들은 회사 내에 서서히 퍼져 나가며 문화를 오염시키고,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나선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낙하산은 회사를 망가뜨린다.
명심하라.
그들은 지금도 당신 주변에 있다.
3루에서 태어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그들이 부러운가? 무서운가?
당신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