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서 Aug 23. 2024

무교원 원대구탕, 얼큰하고 시원한 대구탕 국물의 매력


이렇게 더운 날씨엔 시원한 음식이 땡긴다. 시원한 음식에는 냉면만 있느냐? 천만의 말씀, 아니올시다. 오히려 우리는, 얼큰하고 뜨끈한 국물을 먹으면서 ‘어우~ 시원하다’라고 감탄을 내뱉는다.


그렇다. 감각적으로 시원한 것을 넘어선, 정서적으로 시원한 음식이 있다. 오늘은 ‘시원한’ 국물이 일품인 뜨끈한 대구탕을 즐겨보자.


대구탕이란 게 생소할 수도 있겠지만, 의외로 비리지 않고 맛있다. 옛날 어르신들이 말하던 ‘시원한 국물’이란 바로 이런 걸 지칭한 게 아닐까 싶다.


무교원 원대구탕, 시청 앞에서 근무할 때, 참 많이도 왔었다. 점심시간이면 사람들이 바글바글 하던 곳을 정말 오랜만에 찾았다. 많이 걸었더니 덥다. 얼른 가서 맛있게 즐겨보자.


어? 근데 폐업했다. 이럴 수가. 이게 무슨 일인가.

간판은 사라졌고, 문은 굳게 잠겨있다.


다행히도 시청 본점 말고, 광화문 분점이 있었지. 오늘은 일보 후퇴.


며칠 후, 다시 광화문을 찾았다.


이럴 수가. 영업종료? 쉬는 날인 건가? 두 번째 방문도 실패. 괜찮다. 그런 날도 있지. 인생이란 그런 거다.

영업 종료


며칠 후, 세 번째 방문. 이번엔 퇴근하자마자 광화문으로 헐레벌떡 뛰어왔다. 다행이다. 영업 중이네. 성공.


실내는 많이 넓진 않지만, 적당하다. 조명을 반 만 켜놓아서 그런지 좀 어둡다. 블라인드도 다 내려놓으셔서 더 그런 듯.


먼저 밑반찬부터 소개해보자. 깍두기, 멸치볶음, 미역줄기볶음, 오뎅볶음, 김까지. 참 알찬 구성이다. 이 정도면 백반집이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겠다.


오늘의 주인공. 대구탕이 나왔다.


사실 별거 없다. 빨간 국물에, 무 2개와 대구살 1개, 이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구나. 나는 이런 식의 ‘정량’ 개념이 좋다.


국물이 붉다. 하, 이 국물이 대체 뭐길래. 나는 세 번이나 여길 찾아온 걸까. 한 입 떠먹어보니, 특유의 칼칼한 맛이 뜨끈하게 휘몰아친다. 그래, 바로 이거지. ‘시원~~~하구만’


무가 부드럽다. 한 입 배어무니 느낄 새도 없이 녹는다.


대구살. 크게 한 덩어리.


 와사비 소스에 찍어서 먹는다. 냉동이 원래 그런 건지 뻣뻣하다. 원래부터 이랬다. 질긴 생선살의 매력. 씹는 맛이 매력적이다. 소스의 와사비 향이 코끝을 찌른다.


계란말이도 시켜봤다. 예전엔 늘 이렇게 ‘대구탕+계란말이’ 세트로 먹었었지.


잘 구워진 계란 냄새가 향긋하다. 윤기가 흐른다.


맛있다. 부드럽고. 적당히 익었다.  설탕이 좀 들어갔는지 달착지근한 맛이 뒤에 숨어잇다.


뭔가 밍밍한 듯한 심심함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이 집의 매력이다. 국물을 계속 떠먹게 된다. 왜 멈출 수가 없는 걸까. 자극적이지 않아서 그럴 수도.


대구살을 계속 먹는다. 가시가 있으니 잘 발라내야 한다.


계란말이는 좋은 밥반찬이지.


때가 되었다. 밥을 말아보자.


흰쌀밥과 대구탕 국물의 얼큰함이 조화롭다.


한 숟가락 떠서, 김을 올려서 먹는다. 이렇게 먹는 게 또 별미.


케찹에 찍어 계란말이 한 번 먹고, 밥 한 숟가락 한 번 또 먹고.


아, 안돼. 끝이 보인다.

매콤한 맛을 음미하며 마지막까지 천천히 즐겨본다.


다 먹었다.

완료


세 번이나 이 먼 곳을 찾아온 보람이 있다. 나는 이럴 때 기분 좋고 뿌듯하다. 오래된 좋은 친구를 만난 느낌이다. 반갑고 또 반갑다.


누구나 추억의 음식을 기억 속 저 편에 간직하고 있다. 나에겐 이 대구탕이 그중 하나다.


숨겨놓은 사탕을 몰래 하나씩 꺼내 먹으며 행복을 느끼듯, 요새 기억 속 추억의 맛집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있다.


당신도, 세상 일에 지치고 힘들 때가 있을 거다. 그럴 때 즐거웠던 추억 속의 맛집을 찾아 작은 기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 그 정도 행복을 누릴 권리는 있잖는가.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을밀대, 평양냉면 잘 몰라도 좋아할 순 있잖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