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에 괜찮은 맛집이 있다는 L의 제보가 있었다. 그렇다면 가봐야지. 바로 날짜를 잡았다. 유부남들의 약속은 간결하면서도 명확하다. 군더더기가 없다. 카카오톡으로 두세 번 대화가 오가면 약속이 정해진다.
그래서 찾은 ‘우이며녹’
'우이면옥'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우이며녹’이란다. ’우이‘가 오이지라는 뜻이라고 간판에 풀이가 적혀있던데, 그래도 우이며녹이 무슨 뜻인지는 당최 모르겠다.
맛만 있다면야 이름이 무슨 상관이랴.
실내가 넓은데 사람들로 가득 찼다.
맛집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밑반찬 김치. 중국산 김치가 아니라 제대로 담근 김치다.
백김치. 이게 또 맛있더라.
L의 추천으로 몇 가지를 주문했다.
차례대로 음식이 나오기 시작한다.
먼저 '한우차돌수제비'
차돌의 자태가 곱다.
수제비가 이렇게 따로 나와서 넣어주신다.
보글보글 잘 끓는다. 야채가 많아서 마음에 든다.
국물이 탁하지 않다. 맑고 기름지다. 오히려 매콤한 곰탕에 가깝다.
이런 메뉴에 맥주 못 참지.
차돌에 깻잎을 함께 먹는다. 조합이 좋다.
깻잎은 오직 한국에서만 먹는다던데,
아니 세계인 여러분, 이 맛있는 채소를 대체 왜 안 드시는 겁니까.
수제비가 잘 익었다. 쫄깃쫄깃하다.
국물이 배어들어 얼큰하다.
군만두도 나왔다.
한 입 베어무니 육즙이 그득하다.
다음 타자는 '해물파전'
크기가 압도적이다.
두껍다.
방금 구워내 따뜻하다.
양념간장에 살짝 찍어 먹으니, 부추와 오징어가 밀가루 반죽에 섞여 쫄깃하게 씹힌다.
바삭바삭하다.
이거이거 안 되겠다.
막걸리로 가보자.
좋구나.
국물이 진국이 되었다.
건더기에서 진한 고기국물 그 자체가 느껴진다.
이번엔 '우이지 냉국수'
'우이며녹'의 '우이'가 '오이지'라는 뜻이란다. 이 집의 시그니처인 듯.
잘 보면 위에 오이지가 올려져 있다.
시원한 국물이다.
면이 우동면 같기도 하고, 쫄깃하다.
독특한 식감이다.
나는 이 상태의 국물을 좋아한다. 적당히 졸여져 액기스가 된 상태.
무엇을 넣어 먹어도 맛있는 최적의 컨디션.
후식으로 죽을 먹어보자.
보통은 볶음밥으로 마무리하는데, 여긴 특이하게 죽으로 만들어주신다.
2인분만 했는데, 양이 많다.
탄수화물로 마무리해줘야, 든든히 먹은 느낌이다.
국물이 워낙 좋았으니, 죽 맛은 말해 무엇하랴.
우리 집에서 송도는 꽤 멀다.
그래도 나는 이 친구들이 부르면 간다.
맛있는 것 먹고, 웃고 떠들다 보면 결국 또 옛날 이야기지만 뭐 어때. 재밌으면 된 거다.
C는 무릎이 많이 안 좋아서 보호대를 차고 다닌다.
이제 우리 나이가 그럴 때가 되었다고, 자조 섞인 웃음을 애써 띄워보지만.
어딘가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괜찮다.
그럴수록 더 자주 보고, 웃고 떠들어야겠다. 고 다짐했다.
인생은 짧다.
생각보다 훨씬 더.
로마의 사상가였던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쓰는 줄만 제대로 알면 삶은 충분히 길다.
주어진 수명이 어떻게 되든,
충만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인생이 되었으면 한다.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