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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Oct 01. 2024

주니어에게 희망을


내가 졸업 후 처음으로 입사한 회사에는 '신입입문교육' 이라는 과정이 있었다.

몇 주간 신입사원들을 모아놓고 합숙하며 회사 문화와 일하는 방식 등을 교육하는 것이었다.


회사 문화 및 역사 교육, 일하는 방식, 협업의 기술, 커뮤니케이션 능력, 체력 단련을 비롯한 다양한 커리큘럼이 있었지만, 그중 기억나는 것은 '물건을 직접 팔아보라'는 경쟁 과정이었다. 회사의 실제 제품을 받아 들고 연수원 밖으로 나가, 거리에서 물건을 직접 팔아야 하는 과제였다. 팀 미션이었다. 팀원들이 각자 흩어져서 판매를 하고, 판매액을 합산하여 순위를 매겨 금,은,동 깃발을 수여했다.


다들 의욕에 불탔다. 물론 일부 태도가 불량한 동기들도 있었다. 당시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던 일부 신입사원들은 PC방으로 가서 시간을 때운다던가,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며 놀다가 들어온다던가 했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당시 태도가 좋지 않았던 사람들은 입사 후에도 결국 변변한 역량을 보이지 못하고 도태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정말 열심히 미션을 수행했다.


나는 구형 mp3 플레이어를 배정 받았다. 당시 아이팟이 이미 시장을 지배하던 시기였는데, 물건을 처음 받아 들고 ‘와, 정말 촌스럽다’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일부러 날 골탕 먹이려고 이런 물건을 준 건가 싶었다.


미션은 아침 일찍 시작되었다.

신입사원들을 잔뜩 실은 버스는 도시 여기저기를 넓게 돌며 신입사원들을 떨궜다.

나는 아침 7시 조금 넘은 시간에 읍내 같은 번화가에 내려졌다.



아침일찍이라 인적이 드물었다.

사람이 보여야 물건을 팔든 말든 할 거 아닌가.

나는 무작정 걸었다. 어떻게 해야 물건을 팔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걷다 보니 힘들었다. 아 어쩌지, 그러는 순간.

전자제품을 판매하던 하*마트 가 보였다.

다가갔다. 아직 오픈 전.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직원 몇몇이 청소 중이었다.


이런 느낌 비슷했다. (사진은 본 이야기와 관계 없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잠가진 정문을 두드렸다.


점원은 나를 발견했다.

나는 당시 츄리닝 같이 후줄근한 옷에 큰 가방을 메고 있었다.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행색.


"뭔가요?"

"사장님 좀 뵈러 왔습니다."

"네? 왜요?"

"제품 관련 일인데, 뵙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점원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따라오라고 했다.

사장실은 계단을 올라 2층 구석에 있었다.


사장실 문은 열려있었다. (지점장이었는지 사장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나는 그대로 들어가 '안녕하십니까' 라고 인사했다.

사장은 모닝커피를 마시고 있던 듯, 방 안 가득 따뜻하고 고소한 커피 향이 코끝을 찔렀다.

컴퓨터 모니터 속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던 사장은 뜬금없는 나의 등장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네?"

"안녕하십니까. 저는 OO 신입사원 으로, 전자제품 하나를 소개해드리려고 왔습니다. 5분만 시간주십쇼. 마음에 안 들면 바로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시 그분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묘한 미소를 띠고 '이거 봐라?' 라는 알 듯 모를 듯 한 표정.


"해보세요."

나는 얼씨구나하고 밤새 준비했던 제품 소개 멘트를 줄줄 큰 소리로 떠들었다.


소개가 끝나고 사장님은 나를 조용히 쳐다봤다.

그러다가 천천히 말했다. 예의 그 알 듯 모를듯한 미소를 띠며.


"여기가 어떤 덴 줄은 알죠?"

"네 압니다. 전자제품 판매 매장입니다."

"우리가 이 비슷한 제품을 하루에 몇 개나 주문하고, 판매하는지도?"

"네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건 굉장히 구형이네요."

"....."

"몇 개 가지고 있어요?"

"O개 입니다."

"그거 다 주세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나는 한 시간도 안되어 제품을 전부 팔았다.

입문교육의 목적이었겠지만, 당시 '할 수 있다'는 성취감은 당연히 대단했다.

뭐든지 시켜만 주면 다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벌써 수십년 전 이야기다.

당시 하*마트 사장님은 뭘 믿고 그 구형 제품들을 떠안아주셨을까.

아마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놈이 귀여워 보였을 수도 있었을 거고.

이 새파란 어린놈 도와줘야겠다는 측은지심도 있었겠지.


하나 확실한 건, 그가 제품을 모두 구매해 주면서 어떤 충고나 조언을 비롯한 생색 따위는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무엇이든 도전해 볼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나중에 실제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일단 해보고 안되면 어쩔 수 없지 라는 마인드로 일을 했다. 이게 모두 하*마트 사장님 덕이다.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니어들에게는 계속 이렇게 희망을 북돋아주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감을 얻어 신나게 일한다.

나도 그랬다.


시니어들은 그걸 잘 기억하자.

저 세상물정 모르는 주니어들이 쑥쑥 성장해 언젠가 이 시장을 이끌어가는 리더가 된다는 것을.

당신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잊지 말자.


주니어들에게 희망을 줍시다.

할 수 있는 한 도와주고 밀어줍시다.

그럼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세상 모든 주니어들,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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