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눈이 펑펑 내렸던 날, 아파트 단지에 미켈란젤로가 나타났다.
이런 눈사람을 만들어놨더라.
너무 잘 만들어서, 이리저리 살펴봤다.
코는 실제 당근이었다. 팔로 표현해 놓은 나뭇가지의 한쪽이 위로 올라가 있어서 마치 나에게 인사라도 하는 듯했다. 이런 디테일이 훌륭하니 더 마음에 들더라. 나는 디테일을 챙기는 사람을 좋아한다.
동네 꼬마들과 아기들도 눈사람과 사진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덩달아 나도, 혼자 실없이 웃으며 한참 흐뭇하게 구경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눈사람은 우리 동 바로 앞에 있어서, 오며 가며 매일 만났다. 아침에 출근하던 나는 어느새 그 친구에게 마음속으로 인사도 하고 있었다. '다녀올게~'라고.
눈은 녹는다. 나는 그 친구가 서서히 녹아 사라질 것이라는 슬픔에 대한 마음의 준비도 어느 정도 갖추었다. 다행히도 그는 생각보다 단단하게 만들어졌는지 꿋꿋이 버티고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며칠 후 아침, 늘 그렇듯 출근하며 인사하려고 그 친구 쪽을 쳐다봤다.
없어졌다?
가까이 가봤다.
이렇게 되어 있었다.
코였던 당근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젠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눈더미 위에는 워커로 보이는 어른의 발자국이 선명했다.
기분이 묘했다.
고작 며칠 동안 아침마다 인사했던 친구였다고, 내적 친밀감이 생긴 걸까.
그러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저 눈사람을 부숴버린 사람은 대체 어떤 마음이었을까'
인간은 원래 악하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는 건가.
아름다운 작품을 보고 행복해하는 타인을 용납하기 어려운 건가.
아니면, 눈사람을 부순 행위를 '악'으로 치부하는 내가, 너무 과몰입한 걸까.
마음속 분노를 표현할 수단이 폭력뿐이었고, 우연히 만만한 눈사람이 눈에 띄어 무참히 파괴한 거라면, 그런 사람은 언제든지 '인간'에게도 폭력을 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순수히 파괴하는 행위 자체에서 쾌감을 느낀다면, 그건 더욱 위험한 사람이다.
나는 적어도 그런 사람과는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다.
사람의 사소한 행동에서 그런 미묘한 징후들을 포착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음식점에서 종업원을 대하는 태도. 공공장소에서의 행동. 약속을 지키는 자세.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은 그런 곳에서 무의적으로 발현되기 때문이다.
인간 삶의 목적인 '정의롭고 고결하며 절제하고 지혜로우며 사려 깊고 정직하며 겸손한 것'을 지키고 있는 사람인지 살펴보는 것으로서, '평상시 행동'은 매우 중요한 지표다.
눈사람을 발로 밟고 차 부수는 사람은,
저 의자 위 구둣발과 비슷한 마음가짐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평소에도 사람들을 잘 살펴봐야 한다.
그래야 주변에 가까이 둘 사람과, 거리를 둬야 될 사람을 판단하고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 (누구나 저 눈사람 꼴을 당할 수 있다.)
생각해 보라.
길에서 아무렇게나 담배를 피우고, 침을 뱉으며, 쓰레기를 던지는 사람과 친구로 지내고 싶은지.
우리는.
어떤 것이 인간 본성에 부합하는지 스스로 늘 고민하고 있어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성찰하지 않으면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책을 읽고, 사색하며,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그래야 나만의 기준과 안목이 생기고, 그 결과로 우리는 진짜 훌륭한 사람을 곁에 둘 수 있다.
무례하고 이기적인 사람의 곁에 있다가는 당신도 눈사람처럼 부서질 수 있다.
한 번 부서진 눈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그게 무엇이든지, 발로 차고 밟아 부수며 분노를 표출하지 말자.
우리, 눈사람을 부수는 사람이 되지는 말자.
안녕, 올라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