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 많은 것이 해결됩니다
광화문에 갈 일이 생겼다.
기왕 가는 거 걸어가자.
혹시 모르지. 걸으면 문제가 해결될지도.
강남역에서 광화문을 가려면 한강을 건너야 한다.
강을 넘는 두 가지 옵션이 있다. 한남대교와 반포대교.
나는 잠수교를 좋아하니까 반포대교를 건너가기로 한다.
예상시간 3시간 35분.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다.
어쩜 이렇게 파랄수가 있을까.
끝을 알 수 없는 무한한 우주 속, 작디작은 별 지구에서 바라본 푸른 하늘.
새삼 신기하다.
초등학교 앞을 건넌다.
여기서 왼쪽으로 꺾어서 반포 쪽으로 향한다.
고속터미널 역에 도착했다.
너무 열심히 걸었나. 덥다.
날씨가 따뜻해진 것 같기도 하고.
잠수교를 건넌다.
자전거 타는 사람이 많다.
나는 움직이는 두 다리의 감각에 집중한다.
강물이 잔잔히 흐른다.
역사도 저렇게 결국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겠지.
용산 미군기지 옆 가로수가 높다.
가을에 이 길은 은행이 많이 떨어진다.
특유의 냄새 때문에 걷기에 힘든데, 요즘엔 길이 깔끔하다.
시기가 딱 걷기 좋고 쾌적하다.
이태원.
낮이라서 그런지 한적하다.
간혹 외국인들이 보인다.
녹사평 역에 도착했다.
해방촌으로 들어왔다.
여기를 통해 남산을 넘어간다.
아기저기한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많다.
근데 언덕 경사가 심상치 않다.
해방촌이 이렇게 가파른 곳이었나.
힘들다. 숨이 차다. 덥다.
호흡에 집중한다. 깊게 쉰다.
열심히 걷는다.
이렇게 묵묵히 걸으면 언젠간 다 올라가서 편해진다.
세상일이 다 그렇다.
마침내 올라오니 전망이 좋다.
지붕마다 사람들이 앉아있다.
루프탑 카페에서 햇살을 즐기며, 저마다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
남산공원을 지난다.
남대문 시장에 도착했다.
경기가 안 좋은 게 느껴질 정도로 사람이 없더라.
남대문이다.
이걸 볼 때마다, 화재로 소실된 예전 남대문이 그립다.
그 남대문은 중후한 ‘멋’이 있었다.
시청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저 앞 쪽 분위기가 심상찮다.
덕수궁 대한문 앞도 혼란하다.
이 아름다운 곳이 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착잡하다.
광화문 가는 길이 막혔다.
극우집회가 한창이다.
옆으로 빠져서 어떻게든 헤쳐나간다.
참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볼 수 있다.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하는가', '나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광화문 극우집회에 와서 찬찬히 다양한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도 도움이 되겠다.
우여곡절 끝에 광화문에 도착했다.
3시간 조금 넘게 걸었다.
지난 길들과는 다르게 도심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다 보니,
한적하고 조용한 느낌보다는 복잡하고 번화한 분위기였다.
공기도 그다지 좋진 않고.
오늘 광화문에 온 목적은 바로 이 옆이다.
이미 많은 시민들이 모여있다.
슬슬 안국역으로 걸어간다.
저마다 표정이 비장하다.
가족과 함께한 사람들도 많다.
다들 이렇게 또 거리로 나왔다.
길거리 공연이 한창이다.
흥겨운 음악을 들으니 즐겁다.
우리는 화 낼 필요 없다. 모든 건 순리대로 될 테니.
안국역 앞에 도착했다.
이미 인산인해다.
다들 목청껏 구호를 외친다.
그 안에 담긴 염원이 간절하다.
다시 집회에 참여할 일이 없기를 바랐건만.
뜻대로 되지 않는구나.
나는 내가 할 일을 할 뿐이다.
흐르는 강처럼 결국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리라 믿는다.
역사는 늘 그래왔다.
여전히 추운데 모두 고생 많습니다.
부디 모두가 행복한 시절이 다시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