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 많은 것이 해결됩니다
어쩌다 보니 서울 구경이 되어버린 걷기.
꼭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 나가야만 여행일까.
지방 유명 관광지에 가야만 여행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서울 안에도 재미있는 곳들이 많다.
서울을 즐기면서 여행할 수도 있다.
기왕 서울 여행하는 것, 걸으면서 해보자.
걸으면서 보이는, 동네 모든 것이 새롭고 즐겁지 아니한가.
건강에도 좋고, 생각도 정리되니 그 또한 1석 2조.
오늘은 강남역에서 여의도역까지 걸어가 보자.
11km 3시간 코스를 선택했다.
그나저나 네이버 지도 같은 서비스가 없었다면, 이렇게 걷지도 못했겠구나.
네이버 지도 서비스 담당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선다.
날씨가 좋다. 조금 쌀쌀한 게 걷기에 적당하다.
더 더워지면 이렇게 멀리 걷긴 힘들 것 같다.
길이 단순하다.
서쪽으로만 쭉 걸어가면 되겠다.
교대역에 도착했다.
조금 더 걸어서 서초역 도착.
저기 대법원 건물이 보인다.
언덕을 따라 쭉 올라간다.
어느새 고속터미널역까지 왔다.
몰랐는데, 반포천을 따라 걷기 길이 조성되어 있더라.
오 좋은데?
따라 걸어보자.
걸어보니, 반포천에 조성된 산책길을 걷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 저 흐르는 물의 근원이 어디인진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하수구 쪽과 연결되어 있는지, 냄새가 좋지 않다. (더 적나라한 단어를 쓰고 싶지만 꾹 참아보자.) 관리가 전혀 안 되는 것 같다. 어쩐지 사람이 없더라니. 결국 일반 도로로 다시 올라와 걸었다.
넓은 운동장에서 축구, 농구 각자 즐겁게 뛴다.
마음껏 움직일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오리 한 마리가 둥둥 떠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아래 사진처럼 고가도로가 쭉 이어지는데, 다리 아래쪽은 어둡고 음침해서 치안에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차량보다는 보행자를 위해 고가도로는 이제 철거하고, 자전거와 걷기를 위한, 시민을 생각하는 방향의 도시정비가 이루어지면 좋겠다.
동작역에 도착했다.
현충원이 저 멀리 보인다.
배가 고프다.
집에서 챙겨 온 사과 한 개를 꺼내 먹었다.
달고 시원하다.
현충원 앞의 문구가 인상 깊다.
한글은 참 예쁜 문자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걷는 길 한쪽에 재개발이 한창이다. 도시의 일상이다. 먼지와 소음이 공사장을 가득 메우고 넘쳐, 급기야 보행로를 침범한다.
또 서울 어딘가엔 아파트가 가득 차겠군.
흑석역에 도착했다.
그렇게 자주 왔던 곳인데, 효사정에 한 번도 올라가 본 적이 없다.
오늘은 올라가서 구경해 보자.
계단이 좀 있지만, 어차피 걷는 것 조금 더 걸어보지 뭐.
올라보니 한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게 바로 효사정.
전망이 기가 막힌 곳에 위치해 있구나.
또 열심히 걸어보자.
한강을 따라 걷는다.
자전거 타는 사람, 러닝 하는 사람 다양하게 한강을 각자의 방식대로 즐긴다.
나는 걷기로 동참한다.
한강에서 빠져나와 영등포구로 들어간다.
분명히 자전거길에는 아래 사진처럼 '보행자 우선'이라고 적혀있다.
횡단보도도 있고, 정지선까지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사람이 지나간다고 멈춰서는 자전거를 단 한대도 보지 못했다. (실제로 10분 정도 지켜봤다.) 속도를 올리려고 브레이크 기능을 아예 제거한 자전거까지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무섭다. 사람이 앞에 갑자기 나타나면 어쩌려는 건지.
이젠 자전거족에 대한 없던 선입견이 생길 지경이다. 보행자가 우선이니, 사람이 근처에 있다면 자전거는 속도를 줄이고 정지선에서 일단정지했으면 좋겠다.
한적한 공원길을 따라 계속 걷는다.
샛강역에 도착했다.
여의도에 들어온 느낌이 물씬 난다.
여의도는 특유의 오피스타운 분위기가 있다.
여의도역에 도착했다.
3시간 정도 걸렸다.
반포천 길은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여의도 쪽 길은, 그 색다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기분 좋게 걷기를 마칠 수 있었다. 당연히, 모든 길이 만족스러울 순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 길이 있다면, 또 행복한 길도 있다. 마치 인생처럼 말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나는 어떤 길을 좋아하는지 취향을 찾아나간다. 싫어하는 길은 피해 가면 된다. 그뿐이다. 끝없는 개인화의 반복. 그것도 마치 인생과 같구나. 걷기는 인생의 축소판인 걸까.
오늘도 잘 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