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사고로 악명 높은 SPC그룹.
파리바게뜨, 던킨도너츠, 배스킨라빈스 등을 운영하는 식품기업이다.
무려 사람이 공장에서 사망한 다음날에도 버젓이 기계를 돌린 회사인데, 궁금하신 분은 아래 글을 보자.
https://ko.wikipedia.org/wiki/평택_SPL_제빵공장_끼임_사망_사고
물론 위 사건 이외에도 SPC그룹은 많은 사고를 일으켰다.
도넛이나 빵을 매우 좋아하는 나로서는 대한민국 빵값을 이렇게 폭등시킨 원흉이라는 점이 가장 열받는 포인트.
SPC그룹의 제품을 구매해 본 사람이라면 '해피포인트'가 익숙할 것이다. 뭔가 적립은 늘 하고 있는데, 어디에서 어떻게 확인하면 좋을지 애매한 그것.
해피포인트란,
해피포인트는 전국 6천여 개의 매장(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 던킨 등)에서 적립/사용할 수 있고, 다양한 제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생활 속 필수 멤버십 서비스입니다.
라고 앱스토어 앱 소개에 나와있더라.
필수.. 라는 단어를 이럴 때 쓰는 게 맞나.
얼마 전, 던킨에서 몇 가지 도넛을 쟁반에 담고 계산대 앞에 섰다.
ㅇㅇ원 입니다. 라고 직원이 알려줬다.
나는 결제하려고 카드를 꺼내다가 문득 떠올랐다.
아 맞다, 해피포인트. 쌓여만 있는데 여기서 써야지.
휴대폰을 꺼내 해피포인트 앱을 열었다.
"해피포인트 사용 되나요? 바코드는 여기 있습니다."
"네, 비밀번호를 아셔야 됩니다."
"비밀번호요?"
아놔, 비밀번호가 뭐지? 지금 찾을 수 있나.
내 흔들리는 동공을 본 점원분의 표정이 굳어간다.
뒤를 돌아보니 이미 줄이 길다. 민폐 끼칠 수는 없지.
"그냥 카드로 할게요."
생각해 보니 이런 일이 전에도 몇 번이나 반복되었었다.
나는 그걸 매번 비밀번호 입력 때 깨닫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해피포인트 앱을 다시 열어, 도대체 무슨 비밀번호를 바꾸면 되는지 찾아봤다.
아무리 찾아도 어디에서 뭘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앱을 닫았다.
그제야 문득 떠올랐다. 아 맞다, '비밀번호 찾기'도 몇 번이나 반복되었던 시도였지.
포기. 안 쓴다 안 써.
SPC 그룹의 해피포인트 앱을 통해 적립한 포인트를 사용해 보려던 경험은 꽤나 번거롭고 불친절한 과정이었다. 포인트 결제를 하려고 포스 앞에 섰을 때 비번을 요구받는 당황스러움은 차치하고서라도, 앱을 설치하고 아무리 찾아봐도 결제에 필요한 비밀번호나 관련 설정을 변경할 수 있는 메뉴를 찾을 수 없었다.
인터넷을 통해 알아본 결과, 비밀번호는 오직 PC 웹사이트에서만 변경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결국 PC를 켜고, 잊어버린 아이디를 찾고, 까먹은 비밀번호를 찾아 로그인을 한 후에, '카드 비밀번호 변경' 메뉴를 찾아 겨우 설정을 마칠 수 있었다. '카드 비밀번호'라는 명칭도 이해가 안 갔다. 갑자기 웬 '카드 비밀번호'??
앱 중심의 시대에 PC 웹에서만 가능한 기능이라는 사실 자체도 매우 비합리적이고 불편한 사용자 경험이었다. 아니, 혹시 내가 IT서비스 사용에 미숙해 앱에 있는 메뉴를 못 찾았던 거라고 치더라도, 이렇게 찾기 어렵게 만드는 게 맞나 싶다.
게다가 이런 UI/UX는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에게는 더 큰 장벽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키오스크 등 디지털 소외계층에 대한 높은 진입장벽이 문제가 되는 마당에, 해피포인트 비밀번호를 기억, 혹은 변경에 어려움을 겪는 노년층이 얼마나 많을지 예상이 어렵다.
이런 경험을 겪으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혹시 일부러 이렇게 만든 게 아닐까?"라는 생각. (에이, 설마.. 하지만 SPC그룹이라면?)
포인트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패스워드의 관리가 직관적이지 않고 메뉴 접근도 어려워, 많은 사용자들이 포인트 사용을 포기하거나 잊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낙전 수입(사용되지 않는 잔여 금액으로 인한 수익)'을 노린 설계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예컨대 ‘카드 비밀번호 변경’이라는 메뉴 명칭은 일반 사용자들이 포인트 사용과 연결 짓기 어려운 단어로, 고의적으로 사용 허들을 높인 듯한 인상을 주었다. 심지어, '비밀번호 설정'을 해제해 놓으면 비번 없이도 사용이 가능하다던데, 그런 건 사용자가 즉시 알기 힘든 정보 아닌가 싶다. (설정값이 대체 어디 있는지도 애매하다.) 포인트 사용이 매일 벌어지는 일은 아닐진대. 일단 매장에서 바코드를 찍어봐야 설정여부를 알 수 있는 건지? 설정을 해놓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양자역학 같은 상태.
게다가, 아무리 두 번 세 번 생각해도 '카드 비밀번호'라는 명칭은 이해가 안 간다. 포인트 사용에 카드 비번이 왜 나오는 건지. 나는 관련 실물 카드가 없는데, 신용카드 비번인지? 대체 무슨 카드를 말하는 건지? 네이버포인트 등 타 포인트 전환을 하려고 해도 수수료가 꽤나 크게 붙어서, 이것조차 뭔가 찝찝한 상황. 혼란하다 혼란해. 에이, 그냥 두면 뭐 언젠간 쓰겠지~ 라고 생각하다가 포인트는 어느새 소멸되어 버린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0/0003605813?sid=101
포인트 유효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는, 반가운, 위 기사 내용 중 주목할만한 부분을 발췌한다.
파리바게뜨·배스킨라빈스 등에서 쓸 수 있는 해피포인트는 가맹점주와의 협의가 끝나지 않아 유효기간(3년) 연장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
고객의 포인트 사용을 은근히 방해하는 이런 설계는, 단기적으로는 비용 절감이나 수익 향상을 유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브랜드 신뢰를 해치는 선택이 될 수 있다.
IT 서비스 기획은 사용자가 기능을 직관적으로 찾고, 쉽게 이해하며,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단순하고 쉬워야 한다. 화면을 예쁘게 그리고, 멋진 UI를 만드는 것보다, 사용자가 편하게 사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포인트와 같은 보상 시스템은 누구에게나 사용이 어렵지 않아야 한다. 특히 디지털 소외계층인 노년층의 접근성은 심도 있게 고려되어야 한다. 남녀노소 모두 제대로 챙겨서 ‘해피하게’ 쓰라고 만든 포인트가 아니던가?
고객 경험을 최우선에 두지 않는 기획의 끝은 불 보듯 뻔하다. 결국 서비스 이탈과 부정적 반응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어떤가?
나는 과연 고객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두고 일하고 있는지?
내 서비스에는 과연 저런 부분이 없는지?
며칠 전, 친구 완수가 내게 문자로 이렇게 말했다.
"야, 너네 앱 안된다. 나 지금 써야 된단 말이야~"
그러고 보니, 남 욕할 때가 아니었군.
반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