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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누군가의 추억이었다니

by 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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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았다.

아내와 같이 장을 보고,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빽다방 앞을 지나가는데 아내가 갑자기 말했다.

“500원?”

"뭐가?"

매장을 봤더니 아메리카노 500원 행사 중이란다. 요새 긴축 재정 중인 우리도 이건 참을 수 없었다.


매장에 들어가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했다. 기다리며 주방을 슬쩍 봤다. 알바생들 표정이 지치고 피곤해 보였다. 500원 행사에 수백 명이 몰린 것이리라. 어쩐지 미안해졌다. 커피를 받아 들고 평소보다 조금 더 큰 목소리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다.


커피를 받아 들고 나와 걸으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응?

고새 부재중 전화가 한 통 와있었다.

모르는 번호.


혹시 회사일 수도 있어서 바로 콜백 했다.

상대가 금방 받았다.

“여보세요?”

“형님! 저예요!”

"……??"

모르는 번호였다. 근데 나를 형님이라고 부른다. 큰일이다. 누구지. 나는 전화번호를 잘 저장하지 않는다. 휴대폰을 바꾸면 연락처를 늘 정리한다. 그래서 알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누구지. 누굴까?


“여보세요? 형님? 저예요 저!”

“누구...”

“저예요 ㅇㅇㅇ!“


아! ㅇㅇ이는 15년 전, 내가 신입사원 지도선배로 연수에 참여했을 때, 그 때 지도했던 후배였다. 이게 얼마만인가. 마지막으로 연락한 지 10년도 더 넘었다. 나는 기억 못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우리는 한참을 통화했다.


당시 신입사원이던 ㅇㅇ이는 지금도 여전히 S사를 다니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이번에 부장(수석)으로 진급했고, 신입 부장(수석) 교육연수에 와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맙소사. 너희가 벌써 부장이라니.) 교육에 들어와 있으니 갑자기 신입 연수 때 지도선배였던 내가 떠올라서 전화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반갑고 고마웠다.

나는 이럴 때 참 감사하다.




내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나쁘지 않은 추억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세상에는 기분 나쁜 기억으로 존재하는 사람도 많잖은가. 나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그럭저럭 잘 살고 있구나’라고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안하고 따뜻해진다.


후배의 '별일 없이 열심히 지낸다'는 말 한마디가, 나에겐 작은 위로처럼 느껴졌다.

그가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내 기분이 다 좋다.

잊지 않고 전화해 줘서 정말 고맙다.

서로 각자의 인생을 열심히 행복하게 살다가, 기회가 될 때 얼굴 한 번 봤으면 좋겠다.


어떤 이의 기억 속에 머무르는 한, 우리는 영원히 존재할 수 있다.

당신도 역시, 누군가의 추억 한 켠에 따뜻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그런 게 인생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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