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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을 보다

by 이서


아내가 생일 선물로 뮤지컬 티켓을 예매해 주었다.

오롯이 혼자 즐기고 오라고, 한 장만 구매했더라.


퇴근 후 즐거운 마음으로 광화문을 찾았다.

맑은 하늘이 아름다운 광화문 광장에는, 한민족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인이었던 이순신 장군 동상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라를 왜구로부터 지켜낸 건, 아비가 왕이었다는 이유로 왕의 자리를 공짜로 물려받은 하찮은 권력자 조선의 왕이 아니었다.

목숨을 기꺼이 바친 장수들과 병사들, 그리고 분연히 들고일어난 의병들이 나라를 지켜냈다.

그중 이순신의 공이 가장 특출난데, 뛰어난 지략에 품성까지 갖춘 그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임진왜란의 끝에 결국 일본의 속국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그에게 영원히 감사해야 한다.

갑자기 이순신 장군 이야기가 길어졌다. (요새 역사책을 읽고 있어서 그런가 보다.)


날이 덥다.

아이들이 분수 광장에서 즐겁게 뛰어논다.


오늘의 공연장은 '세종문화회관'

블루스퀘어만 다니다가 여기는 처음이다.

웅장하지만 간결한 건축물이다.


티켓을 수령했다.

QR코드가 있으니 키오스크를 통해 간편하게 받을 수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저녁을 먹자.

광화문에 왔다면 뭘 먹어야 할까?


두 말할 것 없다.

당연히 화목순대국이지.


오랜만이다 깊고 진한 이 국물.


여전히 푸짐한 건더기.

한 그릇 뚝딱 맛있게 먹었다.

실망시키는 법이 없는 집이다.


이제 공연장으로 가보자.

뮤지컬 ‘팬텀’은 가스통 루르의 소설 ‘오페라의 유령‘을 각색한 작품으로, 그 유명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과는 다른 작품이다.

유독 한국에서 인기가 있다고 한다.

올해는 팬텀의 한국 10주년 기념 공연이다.


세종문화회관은 매력적인 건축물이다.

전통적인 우리 정서를 담아냈으면서도 유럽의 신전 같기도 하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면 볼수록 한국적이다.

그 앞의 너른 광장까지도 세종문화회관 건물의 일부라고 느껴졌다. (한국에서 광장은 참 귀하다.)

마치 유럽 오래된 도시의 빽빽한 건물들 사이에 웅장한 성당과 광장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안 쪽에는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다들 기대하는 눈빛이다. 나는 분위기를 충분히 즐겼다.


오늘의 캐스팅은 팬텀 역의 박효신, 크리스틴 역의 이지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처음 와봤는데 지금까지 보던 극장들과 뭔가 다르다.

웅장하고 거대하다.

'대극장'이라는 명칭에 참으로 걸맞다.


잘 보면 무대 좌우가 넓기도 하지만, 안쪽으로도 깊다.

지금까지 공연장들관 비교 불가다.


공연은 인터미션을 합쳐 3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작품은 좋았다.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게 구성된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개인적으론 1막이 더 흥미로웠다)

무대 구성이나 음악도 훌륭했다.


왜 한국에서 팬텀이 인기가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스포일러라 말은 못 하겠지만, 이야기가 묘하게 한국적이다.


뮤지컬의 근본은 음악.

원작이 ‘오페라의 유령’인 만큼 음악 자체를 감상하기에는 정말 최고의 작품이다.

오래도록 사랑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아이돌 출신 뮤지컬 배우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회사에서도 '낙하산'들을 혐오하는 내 신념과도 연관이 있다.

이미 뮤지컬판에서 절대 권력으로 군림하는 유명한 사람도 몇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수익을 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제작사의 선택일 수도 있겠지만, 부디 다양한 배우들이 성공할 수 있는 공정한 환경이 되길 빈다.


팬텀 역의 박효신은 아이돌 출신이 아니다. 순전히 가창력만으로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은 '김나박이'의 일원 아니던가.

박효신의 연기와 노래는 당연히 훌륭했다.

하지만 나는 크리스틴 역의 이지혜가 조금 더 굉장했다.

이 작품 '팬텀'의 여주인공은 아무나 하지 못할 것 같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오페라 배우'역할이니만큼 극한의 가창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지혜는 성악을 전공한 배우답게 음색이 깨끗한 데다가 가창력까지 뛰어나 듣기에 편하고 감동적이었다. 그만큼 대사 전달력도 좋았다.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를 모두 완벽히 소화하며 극 전반을 이끌었다. 왜 '믿고 보는 대극장 배우'라는 별명이 있는지 납득되었다.


재미있게 공연을 감상했다.

공연이 끝나고 아들이 많이 보고 싶어 졌다.


생일 선물로 뮤지컬 티켓을 준 아내에게 감사하다.

아내가 내 취향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이 새삼 고맙다.

아내 덕분에 나는 공연을 관람하고 또 한 번 성장했다. 경험은 이렇게나 중요하다.


그나저나 도대체 '팬텀'의 얼굴이 어떻길래, 보는 사람마다 충격에 경악하는지 나는 좀 의아했다.

원작 소설에는 '해골 같은 얼굴, 뼈만 남은 것처럼 생긴 코, 움푹 파인 눈' 이라고 묘사되어 있다던데, 캡틴 아메리카의 레드스컬 같은 건가.

만약 내가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았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할지 스스로 궁금하다.


살면서 그럴 일이 없기를 바란다.


오늘도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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