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시괴담을 즐겨 읽는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이 많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면 좀 억지고, 그냥 재밌어서 읽는다.
오싹한 미스터리가 현대화된 도시 한복판에서 벌어진다는 점이 어쩐지 모순적이면서도 매력적이다.
그런 내가 최근 한 공포 소설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어느 정도였냐면, 자정 가까운 시간에 책을 펼쳐서 새벽까지 한 번에 모두 다 읽어버렸다.
일본 특유의 음산한 분위기가 책 전체적으로 묘하게 깔려있고, 모큐멘터리 답게 다양한 방식으로 쓰여서 읽는 재미가 있다. 예를 들면, 녹취록의 형태라던가, 인터넷 스레드, 잡지 기사 형태 등 지루하지 않게 구성되었다.
참고로 모큐멘터리란 'mock'(조롱하다, 흉내 내다)와 'documentary'(다큐멘터리)의 합성어로, 허구의 이야기를 마치 실제 다큐멘터리처럼 연출하여 보여주는 영화나 드라마, 소설의 장르를 의미한다. ’블레어 위치‘ 나 ‘파라노말 액티비티’ 같은 페이크 다큐와 비슷한 맥락이다.
이 책의 작가인 '세스지'는 소설 투고 사이트 '카쿠요무'에 이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순식간에 조회수 1400만 회를 돌파하며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호러물로서는 달성하기 어려운 성취다. 그만큼 재미있기 때문이었으리라.
읽다 보면, 소설인 줄 알고 읽으면서도 '이거 혹시 실화 아니야?' 라는 의문을 계속 갖게 한다. 읽어보면 내용이 그렇다. 언제든 벌어질 수 있을 듯한 무덤덤한 장면들이다. 물론 그게 더 무섭다. 아니, ’무섭다‘는 표현보다는 ‘오싹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현실에서 일어날 법하다는 것이 공포 그 자체. 나도 읽으면서 계속 '뭔가 이상한데, 설마 진짜는 아니겠지'라고 의심했다. 그래서, 긴키 지방이 어딘지, 저 스폿이 어딘지, 직접 찾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도 딱 0.5초간 했다.
공포물 특유의 뻔한 전개가 아닌 점이 마음에 들었다. 왜 그런 거 있잖는가. 독자에게 공포를 느끼게 하려고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어두운 뒤에 누군가 서 있었다는 것을.', 아니면 직접적으로 '창문 너머로 알 수 없는 형체가 나타났다!' 뭐 이런 뻔한 건데, 말로 구구절절 설명한다거나 갑자기 빡! 무섭게 하는 방식은 너무 많이 읽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단순히 객관적인 사실만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구체적인 공포의 근원을 직접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주변의 현상들을 단지 표현만 할 뿐이다. 너무 담담한 나머지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이게 무서워? 왜?'
그럴 수도 있다. 공포를 느끼는 지점은 사람마다 다양하니까. 그렇다면 테스트를 해 보자. 혹시, 아래 글을 읽고 섬찟하다던가, 무서워서 흥미를 느끼는 분들은 아마 이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를 재미있게 읽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어느 모텔의 야간 직원을 위한 매뉴얼‘이다.
저희 Sensual Love Motel에서는 야간근로 직원들의 안전을 위한 행동수칙을 제공합니다.
아래 내용을 절대 외부에 누설해서는 안되며, 이 항목들을 무시하거나 위반해서 발생하는 사고에 대해서는 우리 모텔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1. 복도를 돌아다니거나 CCTV를 보다가 302호의 방문이 열려있는 것을 발견했다면 즉시 방문을 잠가주시기 바랍니다.
이때, 절대 방 안에 들어가거나 내부를 들여다보아서는 안 되며, 302호는 열쇠가 없고 마스터키에도 안 맞기 때문에 방문 안쪽 손잡이의 잠금장치를 누르고 닫아서 잠기도록 해주셔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302호는 열쇠가 없고 마스터키로도 열거나 잠글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 방은 문을 열 수 없습니다.
2. 객실전화로 2층의 남자화장실의 전구가 나갔다는 여성의 전화가 걸려온다면 절대 전구를 갈아 끼우러 가서는 안 됩니다.
우선은 바로 조치하겠다고 대답한 후 데스크 마이크로 모텔 전체 2층에 화장실에 긴급공사가 진행 중이니 다른 층을 이용해 달라고 공지하십시오. 참고로 우리 모텔의 남자화장실은 홀수 층에 있습니다. 그리고 여자화장실은 1층과 짝수 층에 있습니다.
3. 가끔 모텔에서 자살한 시체가 발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모텔도 겪는 일반적인 사건이니 일반 매뉴얼 수칙에 따르면 됩니다.
다만, 목 메단 여성시체의 발밑 근처에 디디고 올라갔을 의자나 발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절대 시체에 접근하지 마시고 해당 객실은 이틀 동안 폐쇄하십시오. 그리고 이를 다른 근무자에게도 알리십시오.
4. 계단을 내려가던 중 원하는 층이 안 나오고 제자리로 계속 돌아오는 것 같다면 계단 구석으로 가서 구석을 바라보며 몸을 웅크리고 눈을 감고 귀를 막으십시오.
주간 직원은 매일 출근할 때마다 가장 먼저 계단을 확인합니다. 아침에 직원이 발견할 때까지 계속 그 상태로 있으셔야 합니다.
추가로, 이 항목을 부정하는 다른 항목이 존재하는 경우 절대 눈여겨보아서는 안됩니다.
5. 갑자기 뱀이 쉬잇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면 즉시 바닥에 납작 엎드리고,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숨소리도 최대한 내지 마십시오.
엄폐물에 숨거나 방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되니 최대한 신속히 몸을 낮추십시오. 그 후 청소직원을 불러 천장에 생긴 얼룩을 제거하십시오.
6. 복도에서 점액질의 자취가 발견된다면 즉시 화재경보를 울려서 직원과 이용객들을 전원 대피시키시오.
인원이 맞는지 체크하고 2시간 이상 지난 후에 다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이용객들에겐 화장실에서 담배를 핀 이용객 때문에 화재감지기가 울렸다고 안내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인원 체크 시에 비는 인원이 있다면 2시간 후 들어갔을 때 점액으로 발견되었던 층으로 가서 자취가 이어지는 방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미라처럼 메마른 사람이 정신을 잃은 채로 발견될 것입니다.
7. 본인의 성별에 상관없이 모텔 내에서의 수음 행위는 언제 어디에서든 절대 금합니다.
8. 데스크에 배치된 전화 중 분홍색 전화기가 울린다면 절대 받지 마십시오.
이 전화기에는 전력코드도 전화선코드도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9. 비 오는 날에 피부가 창백하고 눈이 충혈된 흑발의 여성이 체크인하는 경우, 그녀가 우산이나 우비가 없는데도 젖은 부분이 없다면 절대 아무 객실이나 내주지 마십시오.
그녀를 직접 302호로 안내드린 후 (그녀가 온다면 열려있을 겁니다), 방 안에 들어간다면 1번 항목과 마찬가지로 안쪽 손잡이를 잠그고 문을 닫으십시오.
이때, 절대 문에 귀를 갖다 대고 안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10. 비어있는 객실을 정리하다가 커다란 피얼룩이 생긴 침대보를 발견하셔도 걱정하지 마시고 평범하게 정리하시면 됩니다. 몇 분 후 다시 보시면 사라져 있을 겁니다.
하지만 흙탕물이나 정체불명의 끈적한 액체로 범벅이 된 침대보를 발견하셨다면, 즉시 방에서 나오시고 해당 객실을 폐쇄하시고 관리실에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방은 일주일 동안은 절대 체크인을 받지 마십시오.
11. 후드로 모습을 가린 5인조의 여성 이용객들이 들어와서 은근슬쩍 당신의 이름이나 연락처를 물어본다면 절대 알려주지 마십시오.
당신이 성실히 명찰을 착용하고 있다면 이름을 말해줄 필요는 없고, 직원의 연락처나 주소지는 개인 정보입니다.
당신이 대답을 회피한다면 그녀들은 금방 돌아갈 것입니다.
12. 3층 여자화장실 반대편에 있는 객실에서 여성 이용객이 상반신만 내밀고 무언가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면 절대 가까이 다가가지 마시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달아나십시오.
해당 위치에는 모텔 구조상 평범한 벽이며, 그 너머에는 외벽에 부적을 붙여놨을 뿐인, 아무것도 없는 허공입니다.
또한 여자화장실은 1층과 짝수 층에만 있다는 것을 다시 말씀드립니다.
13. 관리실에서 여성직원이 당신의 휴대폰으로 어디로 와달라는 등의 요청을 한다면 바로 전화를 끊으십시오.
관리실은 어떤 경우에도 당신의 휴대폰에 직접 전화를 걸지 않을 것이며, 관리실에서는 여성직원을 고용하지 않습니다.
14. 이 매뉴얼에서 4번 항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4번 항목에 어떤 내용이 적혀있든, 무조건 그 내용의 반대로 행동하십시오. 절대 4번 항목을 따라서는 안 됩니다.
15. CCTV에서 어떤 여성이 객실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장면을 보더라도 구하러 들어가거나 구급차를 부르지 마시고 해당 구역 CCTV를 OFF 상태로 바꾸십시오.
다른 모텔도 그렇듯, 우리 모텔에는 객실 내부를 찍고 있는 CCTV는 없습니다.
어떤가.
'대체 이게 뭐야? 이게 무서워? 재밌어?' 라는 생각이 든다면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는 과감히 패스하시라. 위 괴담이 마음에 들었다면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는 당신 마음에 들 가능성이 높다.
나 어릴 적, '오싹오싹 공포체험'이라는 책을 시리즈로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를 어른용 '오싹오싹 공포체험'이라고 불러주고 싶다. 어른을 위한 어른용 도시괴담.
이 더운 여름.
재미있는 호러 소설 한 권으로 시원한 밤을 보내시길.
제 얘기는 이것으로 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