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위대한 개츠비'가 오리지널 내한했다고 한다.
보통 뮤지컬을 가볍게 즐기는 (나 같은 라이트 유저) 관객들은 '오리지널 내한'의 의미를 이렇게 본다.
<브로드웨이(혹은 웨스트엔드)에서 장기간 공연한 원 프로덕션 팀이 그대로 한국에 와서 공연할 때 쓰는 표현, 그러니까 관객 입장에서는 '미국에서 보던 그대로'라는 기대감을 주는 일종의 브랜드> 같은 거다.
그래서 나에게 오리지널은 의미가 크다. (어디까지나 뮤지컬 잘 모르는 사람의 관점이다) 게다가 최초 내한 아니던가. 놓치고 싶지 않은 기분도 든다. 브로드웨이 공연을 언제 또 볼 수 있겠나.
GS아트센터를 방문했다.
어쩐지 뭔가 초라하게 느껴지는 건 내 기분 탓일지도.
오늘의 캐스팅
무대는 좁다. GS아트센터가 오래되기도 했고.
브로드웨이 오리지널인데 이렇게 작은 데를 임차해서 공연한다는 게 의아했지만, 아마 원작 자체가 작은 공연장에서 진행할 수 있는 수준인가 보다.
그런데, 좌석 절반 이상이 비어있다.
내 의아함을 뒤로하고 공연은 시작되었다.
영어로 이루어진 공연이다 보니, 무대 좌우의 모든 모니터에서 자막이 뜬다.
눈을 돌려 공연과 자막을 동시에 감상하는 스킬이 필요하다.
나는 잘 못하겠더라.
공연이 시작되었다.
1막을 보는데 좀 이상했다.
뒷배경과 배우의 연기가 합이 맞지 않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배우들의 군무도 어딘지 어설펐다.
아이돌급의 칼군무를 바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춤이 제각각 따로 노는 모습이었다.
노래들도 뭔가, 음이 묘하게 어울리지 않아서. 처음에는 가창력 문제인가 했었는데. 그냥 작곡이 그랬던 것 같다. 영어 가사에 익숙하지 않은 내 탓도 있겠지.
개츠비 하면 성대한 파티와 상류 사회의 경박한 문화가 포인트인데, 무대 연출이 '오!'라는 소리가 나올 만큼 막 화려하진 않았다.
브로드웨이에서 이렇게 공연하는 걸까?
아무래도 전반적으로 내 기대가 너무 컸을 수도 있겠다.
궁금한 건 참지 못하니, 1막이 끝나고 인터미션동안 인터넷을 뒤져서 좀 찾아봤다.
오리지널 내한이라고 해서 '캣츠' 같은 건 줄 알았는데. 브로드웨이에서 꽤 오래 공연한 작품인 줄 알았는데, 아니 적어도 몇 년은 유지해 온 작품인 줄 알았는데.
이 공연, 한국 제작사가 작년(2024년)에 브로드웨이에 올린 한국 창작 뮤지컬이었다. 그걸 1년 만에 다시 한국에 가지고 들어온 것. 그래서 기사에 '한국상륙'이란 단어를 많이 쓴 걸까. '역수입'이라고 표현하면 알맞아 보인다.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오리지널 내한과 조금 다른 결이었다. 단순히 '외국 팀 = 오리지널'이라고 의미가 확장, 남용되었던 결과가 아닐까 싶다.
'브로드웨이 인증' 스탬프를 찍고 싶은 제작진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나 같아도 그랬을 거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내 불찰이다. 조금 더 깊이 알아봤어야 했나 보다.
좀 뒤져보니, 실제로 이렇게 제대로 된 기사 제목도 찾을 수 있었다.
작품의 내용은 조금 아쉬웠다.
극 중 계속 등장하는 '초록 불빛', '안경 광고판' 등등 무얼 말하고 싶은지 명확하지 않은 내용들이 이어지다 보니, 이 작품이 추구하는 바를 제대로 따라갈 수가 없었다. 상류 사회의 부도덕성, 미국 내 계층 간 갈등 등 제대로 철학적인 메시지는 주지 못했다. 그렇다고 화려한 쇼에 집중한 것도 아닌 데다가 뜬금없는 러브라인 추가까지. 이도저도 아닌 상태의 어정쩡한 느낌.
배우 중에는 '닉 캐러웨이' 역할의 에럴드 시저의 연기와 노래가 좋았다. 오히려 주인공인 개츠비 보다 더 주인공 같은데, 고음에서도 불안하지 않게 시원시원하게 노래하며, 연기했다. 사실, 극 중 캐릭터 중에서 유일하게 정상인은 '닉'밖에 없어 보였다. 나머지는 행동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아서 ㅠㅠ
이 작품에 대해 영국 가디언지는 별 5개 중 1개를 주었다.
오히려 뮤지컬이 아닌, 대사만으로 구성하는 진중한 연극으로 접근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나 같은 뮤지컬 비전문가가 이래라저래라 할 문제는 아니다만 서도.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 내가 아직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뮤지컬을 조금 더 봐야 식견이 올라가려나.
유명한 명작 뮤지컬들도 초반에는 시행착오를 겪고, 음악을 손보고, 안무를 고치고, 이야기를 수정해 가며 수십 년간 갈고닦아 지금의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도 작년에 초연이니, 이제 막 시작한 셈이다. 앞으로 개선하고 발전해 더 멋진 작품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고,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다. 시간이 그렇게 만들어 준다. 이 글을 쓰고, 10년 후, 20년 후에 다시 이 공연을 관람하고 싶다. 그때는 또 다른 감상평을 남길 수 있겠지.
오늘도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