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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퀴리'를 보다

by 이서


부의 기준을 돈이나 소유의 크기에서만 찾는다면 결국 최후에는 허망해질 수밖에 없다. 진짜 부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마음을 기울일지 아는 데서 비롯된다. 바로 '취향'이다.


특정한 취향을 가진다는 건 단순한 기호를 넘어선다.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렌즈를 가지는 것이다. 그 자체가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결국 취향이 있다는 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소비가 아니라, 나의 내면을 채우는 가장 순수한 자산이자 진정한 의미의 부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게 무엇이든 좋으니,

'취향'을 가져야 한다.




나는 요새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궁금하다.

그 분야에 대해 나만의 '취향'을 갖고 싶다.


뮤지컬에 대한 취향을 얻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결국 많이 관람하는 것이다. 글로 배우거나 남의 평을 듣는 것만으로는 결코 내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취향을 만들 수 없다. 극장의 조명, 무대 위 배우들의 숨결, 살아 숨 쉬는 음악과 함께하는 생생한 경험이 쌓일 때 비로소 어떤 장르가 끌리는지, 어떤 연출 방식이 마음을 흔드는지 알게 된다.


많이 본다는 것은 단순한 양적 축적이 아니다. 다양한 작품 속에서 나만의 감각을 다듬고, 반복된 경험 속에서 세밀한 차이를 구분해 낸다. 내가 더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결국 ‘내 취향’을 선명히 발견해 가는 과정이다.


뮤지컬 '마리 퀴리'를 보기 위해 광림아트센터를 찾았다.


뮤지컬 '마리 퀴리'는 흔히 ‘퀴리 부인’으로 알려진 폴란드 출신 과학자 마리 퀴리의 삶과 라듐 발견을 소재로 한 한국 창작 뮤지컬이다.


2019년 초연 이후, 2020년, 2023년을 거쳐 2025년 현재는 네 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시즌을 거치며 충분한 각색과 개선을 거쳤을 것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 검증이 된 작품이다.


퀴리 부인의 과학적 성취와 함께 그 이면에 존재하는 윤리적 책임, 그리고 여성들의 연대를 이야기한다.


공연장 앞에 이렇게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다. 마리 퀴리의 연구실을 재현해 놓은 듯하다. 그렇다면 초록색 돌이 '라듐'인 건가.


오늘의 캐스팅


무대는 넓지도 좁지도 않다. 어쩐지 분위기가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그것과 비슷하다.


나는 지지부진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야기가 갈지자로 흐르면 중언부언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작품, 전개가 빠르고 이야기에 군더더기가 없다.

처음엔 여성 인권에 대한 듯하다가 적절히 균형을 찾고 살짝 노동자 권리로 넘어가다가 결국 다시 마리 퀴리 개인의 서사로 안착한다. 쓸데없는 사족이 없다.


게다가 흔한 사랑 타령이 없어서 좋았다. (나에겐 이게 정말 중요하다.)


접근하려는 방향이 화려한 연출보다는 '마리 퀴리'라는 인물의 서사 그 자체인 것 같았다. 이야기를 탄탄하게 끌고 가는데 집중한다. 그래서 연기자들의 연기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작품이다.




주인공 '마리 퀴리' 역의 박혜나 배우는 처음 만났는데, 정말 잘하더라. 안정적인 가창력이 돋보였다. 주인공 '마리 퀴리' 역할이라 극 전체를 대부분 혼자 이끄는데도 모든 넘버 소화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와 잘 부른다'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뮤지컬 하면 '노래'와 '춤'에만 집중하기 마련인데, 이 분의 강점은 '연기'였다. 진짜 연기를 봤다. 기회가 좋아 가까이서 관람했는데, 얼굴이 보였다. 이 분, 정말 펑펑 울면서 연기하더라. 대사 전달은 그대로 하면서. 보는 내가 다 울컥하면서도 신기했다.


'안느' 역의 강혜인 배우. 이 분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박혜나 배우가 성숙한 가창력을 보여준다면, 강혜인 배우 이 분은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극의 균형을 잘 맞췄다. '꾀꼬리 같다'라고 표현하면 많이 진부한 듯 하지만, 그 표현이 가장 적확하다. 시원시원하게 전달력 좋은 가창력이 인상 깊었다. 이 분, 앞으로 어떤 작품에서 만날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아멜리아' 역의 홍이솔 배우. 이 분은 아멜리아뿐만 아니라 극 전체에서 많은 역할을 소화했는데, 참 고생 많으신데도 불구하고 흐트러지지 않게 모든 연기와 노래를 잘 소화했다. 내가 비평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수고하셨다는 말을 해드리고 싶을 정도다. 응원하겠습니다.



내가 뮤지컬을 관람하는 가장 큰 이유인, 음악.

라이브 연주의 생생한 울림은 녹음된 음악으로는 결코, 절대로, 대체할 수 없는 순간의 감동을 만들어낸다. 관객으로 하여금 극장이라는 공간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악기로 체험하게 한다. 나는 악기 안에 들어와 있는 듯 음의 파동을 직접 느낀다.


정말 정말 기회가 좋아서 가까이 접근해 지휘를 볼 수 있었는데, 보면 볼수록 오케스트라는 정말 매력적인 작업인 것 같다. 지휘자분이 높은 의자에 앉아서 무대를 직접 보며 음악을 리드했다. '멋'이란 바로 이런 것.


나는 좋은 공연을 관람하며, 나만의 '취향'을 내면에 아주 조금 더 쌓았다.


이런 경험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자산이다. 뮤지컬 극장에서 오케스트라의 선율에 휩싸여 극의 감동을 느낄 때, 우리는 단순히 음악과 노래를 듣고 연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종합 예술이 완성되는 '순간' 자체를 소유하게 된다. 그 경험이 쌓이고 쌓여 나만의 취향을 빚어낼 때, 그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진짜 가치로 남는다. 그게 결국, 나의 소중한 자산이 된다.


오늘도 잘 봤습니다.




이서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회사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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