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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INFJ 여행기

걷기, 성수동에서 강남역까지

걸으면 많은 것이 해결됩니다

by 이서


날이 선선해졌다. 걷기에 제법 적당하다.

그럼 또다시 걸어봐야지.


일이 있어서 성수동에 왔다. 듣던 대로 핫플이더라.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지하철 역 밖으로 나가는데도 한참 걸렸다. 이렇게 사람 많은 곳은 오랜만이다.


볼 일을 서둘러 마쳤다. 얼른 여길 떠야겠다.

찾아보니, 마침 걸어서 돌아가는 코스가 괜찮다. 강남역까지 걸어가 보자.


2시간 30분 정도 예상이다.


해가 뉘엿뉘엿 내려간다. 가을이 가까워지니 낮이 짧아진 게 체감된다.


이 동네에는 강남과는 다른 온도가 있다.

그 미묘한 차이가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어, 자연스레 인기 있는 장소로 자리 잡은 게 아닐까.


세차장을 지나갈 때마다, '아 맞다. 세차해야 되는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차한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나는 게 현실. 폭우 내릴 때 드라이브나 나가야겠다.


'양꼬치거리'라는 데가 있네.


전선줄이 많이 뻗어있는 모습이 운치 있다.

물론, 관리는 힘들겠지만말이지.

저 선들은 대체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영동대교 가기 전에, '영동교 골목식당'이라는 데가 있다. 사진 속 입구를 따라 길~게 상가들이 뻗어있더라. 재미있는 구성이다.


'밤비 내리는 영동교를 홀로 걷는 이 마음~'

'비 내리는 영동교'라는 노래인데. 잘 모르는 사람이 많겠지만 85년도 주현미의 데뷔곡이다.(혹시 들어보실 분들은 커버곡 말고 주현미의 원곡을 추천합니다.)


그 노래 속 영동대교를 내가 지금 홀로 걷는다. 걸을 때 음악을 잘 듣지 않지만, 오늘은 이어폰을 꺼냈다. '비 내리는 영동교'를 플레이했다. 낭만이 별 건가. 이런 거지.


자동차들이 강변북로를 바쁘게 달린다.


강 아래로 건너왔다. 이젠 해가 져서 어둡다.


넌 어디에 있어야 되는 블록인데, 여기 혼자 빠져나와있니.


간판에 관심이 있다. 걸으면서 보는 간판들이 재미있다.

멀리서 'KSC'가 보여서 케네디 우주 센터가 한국에 지사를 설립한 줄 알았는데, 스타벅스였다.

관리 안된 스타벅스 로고가 인상적이다. 내가 매니저였다면, 도저히 참지 못할 상황이다.

하지만 내 제품이 아니니, 웃으며 지나간다.


‘두껍공원’이라는 데가 있네. 하이트진로 본사 옆인가 보다.


벌써 청담역까지 왔다.


정말 선선해진 건지, 땀이 나지 않는다. 걷기 좋구나.

갑자기, 문득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경기고 옆길은 인적이 드물다.

한참 걷는데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가로등은 잘 되어 있다.


삼성중앙역.


역 근처 자전거와 킥보드가 잘 정리되어 있어 마음이 편안하다.


선정릉역이다.


서브웨이 간판도 이렇다.

일부러 눈에 띄게 하려는 고도의 마케팅인가 라는 생각을 1초간 했다.

그렇다면 전략은 성공이군.


언주역을 지나.


얼마 전에 결혼식이 있어서, 여기 방문했었는데, 외관이 인상 깊었다.(리모델링일까)

독특해서 지루하지 않다. 이런 건축물이 많이 지어졌으면 좋겠다.


역삼역.

오래된 지하철 입구가 정감 있다.


역삼역에서 강남역방향 큰 길가는 언제부턴가 택시들이 무단으로 점거해 대기장소 비슷하게 사용하는 듯하다. 실선이라 정차 불가 지역인 것 같은데. 왜 우리나라는 이런 부조리가 당연하다는 듯 횡횡하는지 대체 알다가도 모르겠다. 질서의식 부재와 단속의 허술함이 잘 맞아떨어진 거겠지.


오늘의 베스트 컷.

이런 게 인생의 아이러니 아닐까.

분명 많은 보행자들이 담배연기에 불편을 호소했을 테다. 그래서 '불편신고 다발지역'에 선정되어 강남구보건소에서 금연구역으로 지정한 곳인 듯한데.


‘흡연금지’ 스티커 옆에 당연하다는 듯 걸려있는 ‘깡통 재떨이’.

보란 듯이 대형 참치캔을 재떨이 대용으로 걸어놓는 뻔뻔함. ㅋㅋㅋ


사진 찍는 저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대로에 바글바글 모여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현대 미술이 별게 아니다. 이 장면 그대로 MoMA에 보내고 싶을 지경이다.


재밌네, 재밌어.


강남역에 도착했다.


사진도 찍고, 건물도 구경하며 기웃기웃 하다보니,

3시간 가량 걸었다.


도심 속 길 위를 걸으며 다양한 경험을 했다. 불편한 것도 느꼈고, 문득 스쳐간 감정에 마음이 센치해지기도 했다. 그 모든 순간이 결국은 하나의 여정이었다. 인생과 꽤 비슷하지 않은가.


걷기란 그런 것이다.


길을 걸으면 불쾌와 기쁨, 고독과 위로, 사소한 불합리와 뜻밖의 아름다움이 함께 다가온다. 마치 인생처럼. 희로애락이 섞여 흘러가는 길 위에서 나는 배우고, 깨닫고, 조금 더 단단해진다. 걸음은 발끝에서 멈추지 않고 마음 깊은 곳까지 이어져, 결국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조금 더 성장했다.

오늘도 잘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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