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AI로 '뭐라도' 시작해야 하는 이유

by 이서



IT 제품 스프린트를 운영하고 있다.


'스프린트'라는 말이 낯설 수도 있겠다. 원래 육상 경기에서 단거리 전력질주를 뜻하는 이 말은, 제품 개발 현장에서는 '보통 2~3주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팀 전체가 하나의 구체적인 목표를 향해 전력질주하는 업무 방식'을 의미한다. 거대한 목표를 향해 끝도 없이 달리는 마라톤 대신, 짧은 구간을 여러 번 나누어 전력질주하며 결과물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다.


이 질주가 끝날 때마다 나는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한다. 결과가 기록되지 않는 스프린트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으며, 성찰 없는 질주는 결국 방향을 잃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마침표를 찍는 과정이 결코 우아하지 않다는 점이다.


스프린트 종료 선언을 하고 보고서 작성 작업을 시작한다. JQL로 지표를 하나하나 추출하고, 흩어진 티켓 데이터를 카테고리별로 조회해 엑셀 시트에 옮겨 담는다. 수많은 행과 열 사이에서 필요한 숫자를 골라내 표를 만들고, DB에 직접 쿼리를 날려 구체적인 제품 숫자를 산출한다. 이렇게 모인 파편들을 하나의 내러티브로 엮어 문서를 완성하는 과정은, 사실 좀 지난하다. 솔직히 말해 '노가다' 작업에 가깝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스프린트 종료 직후부터 다음 플래닝 전까지. 늘 촉박하다. 며칠 야근을 하며 모니터가 뚫어져라 숫자를 들여다봐야만 텍스트가 겨우 나온다. 스프린트는 멈추지 않는다. 계속되는 반복 또 반복. 내 지난 10년은 그런 식이었다.




그런데 AI라는 낯선 존재가 등장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 기술이 나의 반복되는 작업을, 고단함을 어디까지 덜어줄 수 있을까?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스프린트 보고서 생성에 AI를 투입해 보기로 했다. 참고로 나는 스스로를 '컴맹'이라 부를 만큼 기술적 깊이가 얕디얕은 사람이다. 하지만 일단 해보기로 했다. 안되면 말고니까.


나는 제미나이(Gemini), 챗GPT, 오픈코드(OpenCode), 클로드코드(ClaudeCode)를 섞어서 사용한다. 설치 후 앤트로픽 API 토큰을 설정하는 고비를 넘기니 절반은 성공한 기분이었다. 다음은 지라(Jira)와 컨플루언스(Confluence)의 연결. 각 서비스가 제공하는 토큰을 받아 클로드 코드에 설정했다. 티켓이 조회되는가? 된다. 그럼 거의 다 왔다. 컨플루언스도 같은 방식으로 연결한다. 페이지 자동 생성 테스트까지 성공하자, 마침내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프롬프트를 작성했다. 서두르지 않고 '플랜 모드'로 한 단계씩 걸어갔다. 내가 원하는 보고서의 형식을 학습시키고, 데이터 추출 프로세스를 클로드 코드와 논의하며 잡아나갔다. 이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 AI를 단순히 '명령을 수행하는 기계'로만 대하면 그 결과는 딱 기계적인 수준에 그친다는 점이다. 나는 AI를 '함께 업무 방식을 개선해 나가는 프로세스 이노베이터'로 대우했다. 의견을 조율하고, 막히는 부분을 토론하며 협업하자 훨씬 입체적인 결과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의도와 다른 결과에 당황하기도 했고, 부족한 토큰량에 좌절하기도 했다. 아마 내가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컴맹'에 가깝다.)


결과적으로는 얼추 만들어졌다. 이제 명령을 하면 최종 보고서와 비슷한 형식으로 떨궈준다. 작성을 위해 바쳤던 야근 시간과 안구의 피로는 많이 줄어들었다. 물론 문구와 숫자를 최종 검증하는 작업은 계속하고 있다. 컨펌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기에. 컨펌이 끝나 '최종 발행'된 문서는 오롯이 내 책임이다.



AI는 이제 우리 문 앞까지 다가온 손님이 아니다. 이미 거실 한복판에 자리 잡은 우리의 동료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당장 뭐라도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앱 개발이든, 사소한 업무 자동화든, 혹은 일상의 기록이든 상관없다. 단순히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라는 공포 섞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반복되는 노동'에서 해방되어, 더 가치 있고 인간적인 고민에 몰입할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AI라는 도구를 쥐는 순간, 우리는 개인의 한계를 넘어선 '슈퍼 개인'이 된다. 10년 동안 나를 괴롭혔던 숫자 지옥에서 나를 조금이라도 구출해 준 것은, 화려한 코딩 기술이 아니라 '한번 해볼까?'라는 작은 호기심이었다. 이 신세계를 경험하고 나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아니,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궁금하지 않은가? 당신의 삶에 AI가 스며들었을 때 과연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용기내시라, 나 같은 컴맹도 버벅대며 어떻게든 길을 찾아가고 있잖은가.

그러니, 지금 당장 뭐라도 도전해 보자.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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