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타쿠처럼 좋아하는 게 있다. 그건, 책과 관련된 것인데, 내면이 성장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공감했으면 좋겠다. 열심히 그걸 찾아보고 또 주변 사람들에게 공유도 한다. 여러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서 깊이 사고하고 성장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 그런데 쉽지 않다. 워낙 관심 있는 사람이 적은 분야라. 공유해도 대부분 시큰둥한 반응이다. (공유했다가 꼰대 소리도 들어봄)
그래서 직접 앱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 앱으로 여러 사람들과 지혜를 나눠보는 거다. 혹시 아는가? 비슷한 취향을 추구하는 사람들끼리의 공동체도 꿈꿀 수 있을지도.
IT업계에 PM으로 종사하면서 나의 앱 하나 만들어 배포하는 건 내 오랜 꿈이었다. 거창한 건 없다. 복잡한 세상에 기능을 더하기보다, 본질만 남기고 덜어내는 것이 내 철학이니까. 일단 기조는 다음과 같다.
iOS로, 미니멀하게, 기능은 최소화한다.
그 앱으로 나와 비슷한 동류의 사람들이 깨닫는 삶을 사는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게 다다.
퇴근 이후에 집으로 돌아와서 방에 틀어박혔다. 따뜻한 커피 한 잔 들고 노트북 앞에 앉아 주로 작업했다. 자정이 넘어가는 것도 모르게 몰입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오롯이 나만의 것을 만드는 즐거움이었다.
개발 환경을 세팅하고, AI와 앱에 대해 요구사항정의부터 시작했다. 원하는 기능과 느낌, 어떤 사용자들이 사용할지, 바라는 게 무엇이며 어떤 바이브를 원하는지 AI와 논의했다.
나는 PM으로 오래 일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진리가 하나 있다. 코드 한 줄 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거다. 기획자와 개발자가 함께 모여 기능과 피처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이 개발보다 10배 100배 더 중요하다. '왜 이 기능을 만드는가'에 대한 토론 말이다. 실제 개발에 들어가는 시간보다, 그 앞 설계의 시간이 훨씬 밀도 있고 짙어야 한다.
그 과정을 AI와 오래오래 가졌다. 요구사항정의가 끝나고 개발은 AI가 해줬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많은 수정이 있었다. 오랜만에 터미널로 작업하기도 하고, 빌드하고 커밋하고 화면을 테스트하며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다. 순수한 유희에 가까웠다.
어느 정도 모양새가 나오자, 가족들에게 리뷰했다. 로컬에 설치해서 보여줬다. 그리고 의견을 받아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아들과 아내가 많은 의견을 주었다.
개발이 완료되는데 까지 몇 주가 걸렸다. 로컬에서 테스트는 거의 마쳤다. 이제 앱 스토어에 올려야 하는데, 이 과정이 또 만만치 않더라. 애플 개발자로 등록하는데 거의 13만 원이 든다는 사실에 놀랐다. (₩129,000) Xcode를 설치하는 데도 좀 버벅댔다. 계속 원인 모를 에러가 났다. 결국 앱 스토어 말고, 웹에서 직접 파일을 다운받아 설치했다. 수많은 메타 데이터를 등록하고, 어찌어찌 앱 심사를 신청했다.
결과는 리젝.
리젝 당하고, 다시 수정한 빌드로 심사받고, 다시 리젝 당하길 몇 번. 해야 할 게 많더라. 앱을 등록하려면 개인정보처리방침과 Q&A페이지를 따로 만들어 관리해야 된다는 것도 이번에 배웠다. 실제로 혼자 힘으로 앱을 배포한 적도 없으면서, 그동안 IT서비스 PM이라고 스스로 소개하며 다닌 것도 참 소용없다 싶었다. 내가 아는 게 참 아무것도 없었구나. (아는 체와 아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많은 시행착오와 재미있는 일들이 있었다. 오랜만에 ‘문제를 해결하는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새벽까지
개발하고 배포준비하느라 힘들고 피곤했지만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개발자가 아니다. iOS개발은 전혀 몰랐다. AI를 믿고, 그냥 맨땅에 머리를 들이받으며 한 발씩 나아갔을 뿐이다.
결국 심사를 통과했다.(승인 메일 받았을 때가 제일 기분 좋았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심사는 통과했는데, 배포가 안된다 ㅠ 분명 자동 배포 설정을 해놨었는데.(인생이 어디 그리 쉽게 풀리던가.) 괜찮다 해결하면 된다. 뚝딱뚝딱.
결국 몇 가지 설정을 변경하고 나서야 비로소 배포가 시작되었다. 드디어. 앱 스토어 검색창에 내가 만든 앱이 조회되었을 때의 그 묘한 기분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덕분에 많이 배웠다. 오랜만에 느끼는 깊은 성장의 감정이었다.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개발하고, 앱을 세상에 선보이는 거였다니, 세상엔 참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다시 느꼈다. 나는 그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하나를 만들어 배포해 보니, 이제 두 번째와 세 번째는 그리 두렵지 않을 것 같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마침표를 찍어본 사람만이 누리는 근거 있는 자신감이다. 간만에 신이 난다. (다음에 뭘 또 만들어볼까나?)
아무것도 모르는 나도 만들었으니,
당신도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러니 일단 시작하시라.
그다음은 세상이 알려줄 테니.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