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나의 내면, 그 위태로운 중간 지대

예수도 히틀러도 아니지만, 그 둘 사이 어디쯤

by 이서



요새 정유정 작가의 소설에 깊이 빠져 있다. '종의 기원'과 '7년의 밤'을 연달아 읽으며 인간 본성의 심연을 뚫어지게 관찰하는 중이다. 작가가 묘사하는 악의 감정이나 동물적인 선택들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질문이 스스로에게 향했다.


나는 대체 어떤 인간인가.


나는 어떤 가치를 우선순위에 두고 선택하며, 그 선택의 끝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가. 이 근원적인 궁금증이 나를 사로잡았다.


사실 혈액형별 성격이나 별자리 운세 같은 근거 없는 분석은 냉소적으로 무시해 왔다. 아니, 솔직히 혐오했다는 쪽에 가깝다. 하지만 MBTI는 어느 정도 신뢰를 가지고 들여다본다. 검사를 할 때마다 'INFJ'라는 결과가 고정적으로 나오고, 특히 내향성(I) 지표가 100%를 기록하는 데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항목들은 상황에 따라 소폭 변동되기도 하지만, 내향성만큼은 요지부동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역사 속에서 INFJ로 분류되는 인물은 누구이며, 나는 그들 중 누구와 더 닮아 있는가. 자료를 좀 찾아봤다.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인류의 스승으로 추앙받는 '예수'와 사상 최악의 독재자로 기록된 '히틀러'가 둘 다 똑같이 전형적인 INFJ 유형이라는 것이다. 이럴 수가 있나? 극단과 극단에 서 있는 두 인물이 같은 성격 유형을 공유한다고?




예수와 히틀러가 같은 유형으로 묶이는 이유는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닮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눈앞의 지엽적인 현실보다 자신만의 거대한 비전을 중요하게 여기는 '내향 직관' 기능을 주체적 핵심 동력으로 삼았다. 예수는 이 능력을 인류애와 구원이라는 보편적 가치로 승화시켰고, 히틀러는 특정 민족의 우월성이라는 위험한 망상에 쏟아부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다들 알다시피, 예수도 늘 온화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성전에서 장사판을 벌이는 기득권층의 상을 뒤엎으며 분노를 표출했던 사건을 기억하는가. 예수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때로는 과격한 행동을 불사했던 면모를 보여준다.


타인의 마음을 읽어내는 '외향 감정' 능력 또한 공통적이다. 예수는 이 공감능력을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는 데 썼고, 히틀러는 대중의 결핍과 분노를 정확히 파고들어 선동의 무기로 사용했다. 실제로 히틀러는 사석에서 어린아이와 동물을 다정하게 대했다는 기록이 많이 있다. 그가 타인의 감정을 다루는 데 얼마나 능숙했는지 알 수 있다.


성격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의 양상도 비슷하다. INFJ는 스스로 만든 고립 속에서 자기 논리에 침잠하는 경향이 있다. 예수는 광야에서의 고독을 통해 생각을 정리했다. 히틀러는 외부의 비판을 완전히 차단한 채 자신의 신념에 빠져들었다. 히틀러는 스스로 만든 논리의 감옥에 갇혀 파멸로 걸어 들어갔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똑같은 성격적 재능을 부여받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오롯이 개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라는 거다.




그렇다면 나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솔직히 말하자면 히틀러 쪽에 조금 더 가깝지 않나 싶다. (오해는 마시라. 사람을 학살하고 싶다는 뜻이 아니다.) 신념을 굽히지 않는 고집과 기성 질서에 저항하는 반골 기질을 가진 입장이 어쩐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오직 '사랑'만으로 구원할 수 있다는 낙관론에는 솔직히 동의하기 조금 어렵다. 냉정하게 말해, 세상은 그리 말랑말랑한 곳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없이 많은 (처참한) 인간 군상들을 만나며, 회사를 20년 넘게 다녀보니 깨달은 점이다.


지금까지 여러 회사를 거치며 실체 없이 말로만 일을 부풀리는 '광팔이'들과 실력 없는 낙하산들, 그리고 조직원을 도구로만 여기는 소시오패스적 리더들을 숱하게 만났다.(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무조건 품어주고 사랑한다고 해서 조직의 적폐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당신도 잘 알고 있잖는가. 그들은 절대 자연적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럴수록 내 신념을 묵묵히 지키며, 한 발짝씩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는 행동주의가 필요하다.


나는 예수가 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네이비씰' 같은 단단한 조직을 꿈꾼다. 도움을 줄 수 있는 동료와 후배들을 세심하게 관찰하여 판별하고, 그들이 불필요한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멋지게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의 도움을 주고 때로는 방패가 되어주는 것. 그것이 내가 세상을 조금 더 낫게 만드는 방식이다. 맹목적인 증오에 빠지지도, 현실성 없는 자애에 머물지도 않는 적절한 지점을 찾는 과정이다.


나는 예수도 히틀러도 아니다. 아마 나는 그 둘 사이 어딘가에 위태롭게 서 있을 것이다. 지나치게 뜨겁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얼어붙지도 않은 온도를 유지하며 묵묵히 내 길을 간다. 그냥 그렇게 일관되게 살면 된다. 그뿐이다.


당신은 어떤가?

지금 어느 지점에 서 있는가?

오늘도 당신의 신념이 안녕하길 바란다.


부디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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