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등받이는 안녕하십니까?
비행기 이코노미석의 등받이를 뒤로 젖히는 행위는 수십 년간 해결되지 않은 고질적인 논쟁 중 하나다. 이는 '내 영역, 네 영역'의 단순한 물리적 공간 문제를 넘어선다. 개인의 정당한 권리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충돌하는 문화의 경계선 어딘가, 그 묘한 지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누군가는 비용을 지불하고 확보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누군가는 좁은 공간에서의 최소한의 매너를 요구한다. 나는 이 팽팽한 대립 속에서 현대 사회가 유지되는 보이지 않는 질서의 본질을 살짝 엿본다.
나는 좌석을 젖히는 행위('리클라인'이라고 불러보자.) 자체를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법적으로 제재할 수 없다는 점에 분명히 동의한다. 승무원에게 항의하더라도 규정상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오는 것이 현실이며, 이는 서비스 공급자가 정의한 좌석의 기본 기능이기 때문이다. 젖혀지잖아? 그렇게 만들었잖아?
하지만 나는 최소한 등받이를 조절하기 전 뒷사람의 상황을 살피고(적어도 음료가 있거나, 모니터로 뭔가를 보고 있을 수도 있잖은가. 덩치가 큰 사람일 수도 있고), 상대방이 불편을 느낄 정도까지는 젖히지 않는 길을 선택하고자 한다. 앞사람이 이미 좌석을 젖혔다면 나 역시 공간 확보를 위해 '뒤를 확인하고' 어느 정도 젖히는 행동을 하겠지만, 타인의 사정을 무시한 채 무작정 권리만을 앞세우는 태도는 경계하고 싶다.
자신의 권리를 누리는 것이 왜 참견의 대상이 되느냐고 반문하는 이들의 논리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내 자리 내가 젖히는데 뭐가 문제냐는, 아래와 같은 글을 쓰는 사람들 말이다.
그들에게 배려란 자발적인 선택이어야 하며, 강요된 배려는 일종의 폭력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이는 가치관이나 기질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선호의 문제이기에, 옳고 그름을 판관 포청천처럼 단칼에 베어낼 수는 없다. 세상에는 그렇게 무 자르듯 판단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다.
다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그렇게 배려 없는 사람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다.
인간의 무의식적인 신호는 명확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가 '배려'라고 부르는, 타인에 대한 공감 혹은 인지 감수성이 낮은 이들과는 거리를 두고 싶다는 본능적인 방어기제가 작동할 뿐이다. 예를 들면, 저 위 사진의 문장 같은 글을 쓰는 사람들 말이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저런 사람들과 가까이하면 힘들고 불편하다는 점' 만이 사실이다. 아닌 분들은 그런 분들과 가까이 지내면 된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다.
최근 진행된 미국의 어느 방송 채널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가 뒷좌석 승객을 배려하여 좌석을 젖히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는 개인의 편안함보다 기내 에티켓을 우선시하는 심리가 다수임을 시사한다. (좀 안심이 된다.) 물론 뒷사람도 젖힌 상태라거나, 너무 긴 비행이라 힘든 경우 등 특수한 상황에서는 뒷사람의 상황을 확인 후 리클라인을 살짝 활용한다는 유연한 답변도 존재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배려'를 선택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더군다나 비행기 좌석을 뒤로 젖히는 건 '권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해석도 있는 마당이니. 갑론을박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다음 기사를 참고하자.
https://www.newstop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21051
이러한 논쟁은 비행기 안에서만 일어나는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우리 일상 곳곳에 만연해 있다. 길거리에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걷는 행위나, 만원 지하철에서 거대한 백팩으로 주변 사람을 밀어붙이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층간소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새벽까지 소음을 유발하는 이들 역시 자신의 경제적 대가를 지불한 공간에서 권리를 누린다고 주장한다. 내가 내 돈 주고 산 담배고, 백팩이고, 아파튼데 뭐 어때? 남이야 내 아파트에서 축구를 하든 말든? 아니꼬우면 니들이 피해 가던가? 이들은 모두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말하지만, 공동체의 조화라는 측면에서는 심각한 결함을 드러낸다.
수십 년 인생을 살아온 결과, 나만의 편의를 위해 타인의 피해를 당연시하는 이들은 내면 어딘가가 어긋나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건 고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싸움만 날 뿐이다. 충고나 조언은 무가치하다. 그러니 그저, 그런 유형의 무례한 에너지가 내 삶의 영역에 침범하지 않도록 거리를 두는 것만이 현명한 처세라고 믿는다. 우리는 통제할 수 없는 타인의 행동에 분노하기보다, 내가 지향하는 가치관과 일치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좀 더 집중해야 한다. 그저 그런 사람들이 가까이 있지 않도록 애써 피하고, 당신 곁의 좋은 사람들을 아끼고 소중하게 대하란 뜻이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며, 문명은 법이 닿지 않는 곳에서 개인이 보여주는 절제와 양보를 통해 발전해 왔다. 그걸 우리는 보통 '성숙한 시민'이라고 부른다. 내 행동이 타인에게 실질적인 불편을 준다면, 나의 정당한 권리라 할지라도 잠시 뒤로 미루는 것이 현대 시민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누차 이야기하지만 이것이 정답은 아니다. 각자의 생각을 존중하는 것 또한 성숙한 시민의 자세 아니던가.
단, 나는 최소한 배려의 가치를 아는 동류의 사람들과 가까이하고 싶다. 상대방의 감정을 존중하는 이들과 함께라면, 우리는 비행기 안의 좁은 좌석보다 더 복잡한 사회적 문제들도 충분히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연대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오늘도 나는, 뒷좌석을 배려하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동체를 꿈꾼다.
당신은 오늘 누군가에게, 어떤 앞사람이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