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전장에서 버티고 있을 당신에게

고난을 겪어본 사람에게 나오는 아우라

by 이서


나는 이야기가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 맥락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풀어보고 싶다. 내가 말하는 이야기란, 단순히 파란만장한 사건의 나열이 아니다. 그것은 고난을 통과하며 생긴 흉터, 그 흉터가 아물어 만들어진 독특한 분위기를 뜻한다. 슬픔과 아픔을 깊이 앓아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형언할 수 없는 아우라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안다. 늘 겸손해야 한다는 걸. 겸손은 가식이 아니라 생존의 태도라는 것을. 그들은 우연히 만난 행운에 크게 들뜨지 않는다. 반대로 다시 만난 고난 앞에서도 하늘이 무너진 듯 절망하지 않는다. 그저 ‘올 것이 왔구나’ 하고 담담히 맞이할 뿐이다. 한 걸음씩 의연하게 내딛으면 결국 이 길 또한 끝이 난다는 사실을 이미 온몸으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그 시큰둥한 무심함이 그 사람의 기품을 만든다. 묵묵히 걸어 나가면 언젠간 지나간다고 믿는 단단함이 차갑지 않은 지성을 빚어낸다.


만나는 사람마다 친절하라.
그들 모두가 각자의 전쟁을 치르고 있으니까.
- 이언 맥라렌(Ian Maclaren)


우리는 흔히 타인의 삶을 겉모습으로 판단한다. 번듯한 직장, 화목해 보이는 가정, 여유로운 SNS 피드.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각자의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남이 보기에 아무리 평온해 보여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밤은 누구에게나 있다. 나는 이 사실을 깨달은 뒤로 타인을 함부로 비난하거나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의 날 선 반응을 마주할 때도 ‘무슨 사정이 있겠지’ 하고 넘기려 애쓴다.




물론 감당하기 힘든 무례함까지 받아내라는 뜻은 아니다. 그럴 때는 그냥 도망친다. 도망은 비겁함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가장 지혜로운 전략이다. 나쁜 에너지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중요한 것은 고난 속에서 타인에게 독을 내뿜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예의와 다정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고통은 사람을 거칠게 만들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뿌리 깊은 인격체를 빚어내기도 한다.


지금 서 있는 자리가 너무 고통스럽다면, 시간을 아주 길게 늘려보자. 우리가 서 있는 30대와 40대의 시간도 찰나다. 앞으로 50년만 지나면 우리 중 누구도, 단 한 명도 이 세상에 남아있지 않는다. 역사 속 무소불위의 권력자, 천문학적인 부자, 지금은 모두 다 이 세상을 떠났다.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지금 우리가 집착하는 외모, 자산의 크기, 타인의 시선 같은 것들은 한 줌의 재로 돌아간다. 결국 남는 것은 내가 어떤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았고, 주변에 어떤 온기를 남겼는가 하는 본질적인 기록뿐이다.


요새 국장이 핫하던데, 투자를 할 때도 하락장의 공포를 견뎌낸 사람만이 우량주가 주는 결실을 맛본다. 삶도 마찬가지다. 고통 없는 삶은 없다. 다만 그 고통을 어떻게 껴안고 살아내느냐가 그 사람의 인격을 결정한다. 흉터는 숨겨야 할 치부가 아니라, 당신이 그 치열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았다는 훈장이다.


우리 모두 그런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고통에 매몰되어 스스로 괴물이 되는 대신, 그 고통을 잘 발효시켜 타인에게 따뜻한 그늘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오늘도 각자의 전장에서 치열하게 버티고 있을 당신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


부디 무너지지 말고, 당신만의 아우라를 완성해 나가길.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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