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점심을 먹고 골목을 걷고 있었다.
커피를 같이 한잔하고 싶었다. 평범하고 평온한 오후.
앞쪽에서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개가 유난히 심하게 짖는다. 좀 이상하다. 주변 행인들에게 공격적이다.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
골목이 좁았다. 멀리 돌아가거나 피해 가긴 마땅치 않다.
나는 본능적으로 한쪽 구석으로 붙었다. 아내는 다른 방향으로 거리를 두었다.(결과적으론 아내의 선택이 옳았다.)
찰나였다. 개는 내 옆을 으르렁 거리며 지나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고개를 나에게 획 틀었다. 미친 듯 짖기 시작했다.
나는 그 자리에 섰다. 전두엽이 마비되어 얼어붙었다.
그 이후 내 기억 속 장면은 묘하게 비현실적이다.
개가 바로 앞에서 있는 힘껏 컹컹 짖더니,
갑자기 지면을 박차고 나에게 날아올랐다.
정말로 '날아올랐다'는 표현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몸을 틀어 피하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날카로운 이빨이 살점을 파고드는 감각이 선명했다.
나는 개한테 물렸다.
물린 다리의 청바지는 찢어졌다. 바지를 올려보니 개 이빨 자국 사이로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여기저기 물어보니, 광견병도 걱정이고 감염도 걱정이니 병원에 가보란다.
헛웃음이 나왔다.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기대했던 오후가 순식간에 응급 상황으로 변했다.
근처 병원을 찾았다.
병원 창구에서 간호사분이 물었다.
어떤 증상 때문에 오셨을까요?
개한테 물렸습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주식도 아니고 개한테 물렸다는 내 대답이 생경했을 수도.
네, 잠깐 앉아계세요.
진료실로 들어가니 의사가 나를 보고
'아이고'라고 한다. 개한테 물려서 온 게 안타까우셨을까.
상처를 소독하고, 몇 가지 처치를 했다.
파상풍 주사를 맞으란다. 맞아야죠 뭐.
ㅇㅇㅇ님 주사실로 들어오세요.
주사를 기다리는데, 평온한 날 이게 웬 날벼락인가 싶어 실소가 터져 나왔다.
인생이란 게 이런 거지, 개한테 물리는 날도 있는 거고 ㅋㅋㅋ 생각할수록 웃긴다.
주사를 맞고, 결제를 했다.
처방전을 들고 근처 약국을 찾았다. 한 보따리 항생제를 들고 나왔다.
개한테 물려보니 피해자로서 여러 생각이 든다.
개를 키우는 건 자유다. 그러나 남한테 피해를 주는 순간 폭력이 된다.
비뚤어진 소위 '애견'문화를 고쳐야 한다. '우리 애는 안 물어요'라는 무책임한 확신은 타인의 일상을 위협하는 오만이 된다. 입마개와 타이트한 목줄은 반려견에 대한 구속이 아니라, 사회를 향한 최소한의 예의다.
불과 몇 년 전 슈퍼주니어 출신의 가수 겸 배우 '최시원'씨의 개가 아파트 옆집 사람을 물어 사망케 한 비극적인 사고가 있었다. 그 개는 이미 여러 번 사람을 물어 위험한 상태였는데도 최시원 씨는 목줄 없이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사람이 사망했는데, 당시 최시원 씨는 '목줄 미착용'으로 과태료 5만 원을 부과받았을 뿐이다. 그 개는 지금도 어디선가 사람들을 물고 있겠지.
사건 이후로도 애완견 관리에 대한 경각심이나 법규 강화는 이루어진 게 없는 것 같다. 제자리걸음이다. 당장 어린아이들이 타 있는 엘리베이터에 개를 그대로 끌고 타는 사람들만 봐도, 아무런 관리를 안 하니. 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스타벅스에서도 방금 웃지 못할 광경을 목격했다. 당당하게 개를 끌고 매장 안으로 한 사람이 들어왔다. 점원이 얼른 다가가 '개를 데리고 들어오시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견주는 '왜 나한테 그렇게 거칠게 말하냐!'라고 도리어 역정이다. 바로 옆에서 내가 듣기로는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요청했는데 말이지.
심지어 '우리 애가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어요!'라고 소리치던데. '우리 애'가 누구를 말하는 건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인권보다 견권이라는 건가. 친절을 권리로 착각하고, 타인의 안전보다 개의 편의를 우선시하는 이기심이 참, 서글프고 웃기다.
모두 길을 걸을 때 개를 조심합시다.
개를 조심하자니, 이거 원 야생이 따로 없군.
아무튼, 물리지 말자구요.
꽤 귀찮답니다.
(그나저나 찢어진 내 501은 어쩌지. 아끼던 바지였는데.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