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 Life Life in Art
성수동 D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취향가옥2' 전시에 다녀왔다. 이름부터 묘한 구석이 있다. '집'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는 것. 요새 현대인에게 집의 개념은 예전보다 조금 더 차갑다. 휴식의 공간이라기보다 잠시 잠을 채우고 회사로 떠나는 정거장, 혹은 돈으로 치환되는 숫자에 가깝다. '똘똘한 한채'와 같은 말로 불리는 안타까운 현실. 그 틈바구니에서 집에 '취향'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은 이 전시는, 우리 인생에 '취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준다.
내가 앞의 여러 글에서 누차 이야기 했듯, '취향'은 앞으로 인간을 판단하는 주요 지표가 될 것이다. 취향은 단순히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의 기호를 넘어, 한 인간이 세상을 대하는 '필터'이자 '태도' 그 자체다. 남들이 좋다는 것, 유행하는 것에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일. 바른 이성으로 가꾸는 훌륭한 정신. 그 무엇보다 주요한 일은 자아의 뼈대를 세우는 과정이다.
무채색의 일상 속에서 내가 어떤 색과 질감의 컵을 쥐었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지, 어떤 문장의 호흡에서 위로를 얻는지를 아는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좋은 취향을 갖고 있는 사람은 늘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취향이 확고한 사람은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서 해방되어 오롯이 자신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을 갖기 때문이다.
결국 취향을 가꾼다는 것은 나를 나답게 만드는 가장 능동적인 철학이자, 무질서한 세계에서 나만의 질서를 구축하는 숭고한 행위다. 종교에 가깝다고 봐도 된다. 그러니 남 눈치 보지 말고, 당신이 좋아하는 그 사소한 것에 더 집착하시라. 그럼 성공할 수 있다. 앞으로는 취향을 가진 사람이 가장 매력적인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이번 전시는 거실, 침실, 주방 등 집의 요소를 예술가의 시선으로 재해석한다. 단순히 가구를 배치한 쇼룸이 아니다. 얼핏 모델하우스 같을 순 있겠다. 하지만 조금 더 신중하게 살펴보면 가구와 조명, 그리고 그 공간을 채우는 회화와 조각들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연결되어 있다.
'공간은 그곳에 머무는 사람의 정신을 투영한다'는 말처럼, 각각의 방들은 누군가의 지독하고도 아름다운 고집을 보여준다. 취향이다. 그게 취향인 거다. 훌륭한 기획이다. 억지로 '예술은 이런 것'이라 가르치려 들지 않고, 그저 잘 차려진 공간 속으로 관객이 걸어 들어가도록 만들어 놨을 뿐이다.
예술을 관람하는 기쁨은 '이질적인 것들의 조화'를 발견할 때 극대화된다. 거친 질감의 캔버스 옆에 매끈한 미드센추리 모던 가구가 놓여있을 때, 그 어색한 긴장감이 주는 쾌락이 있잖은가. 이번 전시에서도 그런 지점들이 눈에 띈다. 아래 사진처럼, 누가 봐도 야외에 심어져 있어야 할 나무가 실내에 높다랗게 서있는 모습 같은 것 말이다. 그 이외에도 아티스트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각종 오브제들은 일상적인 물건의 기능을 넘어 하나의 서사가 된다.
우리는 왜 굳이 시간을 내어 남의 취향을 구경하러 오는가. 시간이 남아돌아서? 아니다. 결국 내 안의 빈칸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타인의 정돈된 취향을 보며, 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어떤 색감을 볼 때 마음이 편안해졌는지를 역추적하는 과정이다. 많이 봐야 알 수 있다. 이해가 높아지면 취향도 고상해진다. ‘나 이런 거 좋아하네?’라고 깨닫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예술 관람은 거울을 보는 행위와 같다. 작품이라는 거울에 비친 내 감정의 실루엣을 확인하는 일이다. (거울 속 내 모습이 생각보다 못나서 놀라기도 하지만 ㅋㅋ) 반드시 나 스스로가 아니어도 된다. 비슷한 결의 타인과 교제를 지속하면 취향도 같이 고상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늘 좋은 사람과 어울려 지내야 한다. 올바른 취향의 사람과 교제하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다.
전시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매력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취향으로 빚는 것이라는 점이다. 값비싼 가구를 들여놓는다고 세련됨이 자동으로 생겨지지 않는다. 그 물건에 어떤 기억을 입히고, 어떤 태도로 그것을 대하느냐가 본질이다. 물건을 줄이는 것이 미니멀리즘의 시작이라면, 남겨진 물건에 영혼을 부여하는 것이 취향의 완성이다.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더 많이, 더 빠르게'를 요구한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전시회가 제안하는 삶의 궤적은 정반대다. 일단 느리다. 묵묵히 걸으며 따분하게 관람해야 한다. 보다 보면, 대체 이게 뭔가 싶다. 천천히 둘러보고, 깊게 응시하며, 나만의 리듬을 찾으라고 말한다. 네가 좋아하는 건 뭐지? 뭘 보면 행복하지?
줄곧 무례함과 저질스러움에 시달리다 이곳에 발을 들이니, 어쩐지 뇌가 정화되는 기분이다. 회사에서 듣는 가치 없는 말들의 나열보다, 눈앞에 놓인 견고한 오브제 하나가 주는 위로가 훨씬 크다.
예술은 뭐 대단한 구원이 아니다. 나 같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성역도 아니다. 그저 굳어있던 시야를 한 번 흔들어 깨우고, 내일 아침 커피 한 잔을 마실 때 컵의 입술 닿는 촉감을 한 번 더 음미하게 만드는 정도의 간단하면서 단순한 힘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어쩌구저쩌구 거창한 담론은 평론가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그저 오늘의 감각에 집중하면 된다.
당신의 방은, 책상은, 가방 속은 지금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혹시 타인의 시선과 유행템에 잔뜩 둘러 쌓여있지는 않은가. 오늘은 불필요한 것들을 좀 덜어내고, 오직 당신만이 사랑하는 물건 하나를 정성껏 닦아보길 권한다.
취향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니까.
건투를 빈다.
오늘도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