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무대 뒤, 가려진 일상의 목소리

'우리'라는 이름으로 개인을 지우는 전체주의의 위험성

by 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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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이 들썩이고 있다. BTS의 컴백 공연 소식에 전 세계의 이목이 서울의 심장부로 쏠렸고, 벌써부터 거리는 기대감으로 부풀어 올랐다. 국익과 문화적 위상만을 생각하면 분명 가슴 벅찬 일이다. 하지만 화려한 무대 장치가 세워지는 뒤편에서, 그 광장의 진짜 주인이었던 평범한 개인들의 일상은 가려지고 있다. 축제의 서막 뒤에는 '통제'와 '희생'이라는 단어가 불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미 인터넷 커뮤니티와 관련 게시판에 우려 섞인 목소리가 드문드문 보인다. 공연 당일 광화문 인근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예비부부들은 하객들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며 밤잠을 설치고 있다. (내가 하객이라면 결혼식 불참을 통보할 것 같다.) 인근 상인들 역시 밀려드는 인파로 인한 안전사고와 단골손님들의 발길이 끊길 것을 걱정하며 대책 없는 행정에 한숨을 내쉰다. 국가적 행사라는 거창한 명분 아래, 개인에게는 평생 한 번뿐인 소중한 하루와 생존권이 너무도 당연하게 '사소한 불편'으로 치부되고 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603200600041


더욱 기막힌 것은 인근 직장인들이 겪어야 할 유무형의 압박이다. 광화문 일대 일부 회사들은 공연 준비 및 극심한 혼잡을 이유로 공연 준비기간 혹은 당일 '공동 연차'를 권고하거나 강제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주말에도 근무해야 하는 직장인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보호받기 어려운 계약직일 가능성이 높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소중한 휴가권을 아이돌 공연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반납해야 하는 상황이다. 내 연차는 내가 쉬고 싶을 때 쓰는 것이지, 남의 공연을 위해 소모되는 소모품이 아닌데도 말이다. 이는 명백한 노동권 침해이자, 개인의 일상을 공적인 목적 아래 종속시키는 행위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50071.html


이러한 '희생'의 요구가 더욱 기만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이 축제를 주도하는 자본의 불투명함에 있다. 하이브의 방시혁 의장은 상장 과정에서 투자자들을 속여 부당 이득을 챙긴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로 여전히 수사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얼마 전 법원이 방 의장의 주식 1,500억 원 상당을 동결했다는 소식은 대중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패가망신'은 아직 먼 일인 걸까. 국가적 대의와 K-컬처의 영광을 외치는 회사의 대표가, 정작 안으로는 개인의 사익을 위해 시장의 규칙을 어겼다는 의혹은 이 축제의 도덕적 정당성을 근본부터 흔들고 있다.

https://www.sisajournal-e.com/news/articleView.html?idxno=417606




이러한 현상의 기저에는 아주 위험한 논리가 깔려 있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일부 시민의 불편은 물론, 자본가의 불투명한 행보조차 눈감아줄 수 있다는 맹목적인 믿음이다. 이는 전형적인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의 변종이다. 전체주의는 집단의 목적을 위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도구화하거나 말살하는 체제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그 끝이 얼마나 황폐했는지 이미 충분히 학습했다.) 나치즘과 파시즘 역시 처음에는 국가의 번영과 민족의 영광이라는 달콤한 구호로 대중의 이성을 마비시켰던 것 아닌가.


역사상 전체주의 사상은 언제나 '공동의 선'을 강조하며 개인의 비극을 정당화해 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국가총동원령은 전쟁이라는 대의를 위해 청년들의 목숨과 서민의 숟가락까지 빼앗아 갔다. '전체를 위한 부분의 희생'이라는 문장은 얼핏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존엄에 대한 존중이 거세되어 있다. 소수의 피해를 당연시하는 사회는 결국 권력을 쥔 집단이 정의를 독점하게 만든다. 오늘 광화문에서 허용된 강제적 통제가 내일은 당신의 평범한 일상을 침범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더 세련된 행정과 철학을 요구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그만큼 이미 성숙했잖는가. 진정한 문화 강국은 화려한 공연의 규모가 아니라, 그 공연으로 인해 불편을 겪을 단 한 명의 시민을 어떻게 배려하고 설득하느냐에서 결정된다. 다수를 위해 소수가 참아야 한다는 말은 행정 편의주의와 거대 자본이 낳은 변명일 뿐이다. (공연장 위치 선정부터 세밀한 교통 대책까지, 고민할 지점과 시간은 충분히 많았다.) 생각하지 않고 시스템에 순응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전체주의의 부속품으로 전락한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끊임없이 묻고 불편해해야 하는 것 아닐까.


축제는 누구도 눈물짓지 않을 때 비로소 그 빛을 발한다. BTS의 위상이 높아지는 만큼, 우리 사회의 시민 의식과 자본의 투명성도 함께 성숙해졌으면 좋겠다. 거창한 대의보다 소중한 것은 오늘 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이다. 그 작은 하루하루가 모여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내는 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진짜 민주주의의 모습이다. 공연 당일, 광화문에서 환호성과 함께 소외된 이들의 권리도 함께 울려 퍼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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