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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Feb 23. 2022

부러졌지만 풀업을 하고 싶어요 7

내 병실 침대에 붙어있는 Description. '왼쪽 팔꿈치 플레이트 제거'로 보인다.


병실은 10시 소등, 조금 뒤척이다 일찍 잠들었다.


잠결에 무슨 소리가 들린다.

응??

어디선가 들려오는 날카로운 비명소리.

누가 비명을 지르는거지? 사고가 났나?


잠을 깨고 정신을 차려보려고 애썼다.

이건 올림픽 중계방송 소리다.(요새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한창이다.) 

얼마 잔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아침인가?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새벽 2시에, 누군가 갑자기 TV를 틀고 볼륨을 높여, 여자 컬링 중계를 보고 있다. (컬링은 나름 정적인 스포츠로 알고 있는데, 중계진은 엄청나게 소리를 지른다. 목이 걱정된다.)

‘밤 10시 이후에는 다른 환자분들을 위해 이어폰으로 시청해주세요.’ 

분명히 개인 티비 위에 저렇게 크게 쓰여있는데.

하아...

한번 잠이 깨니 다시 잠들기 힘들다.

잠이 들지 않는 새벽, 이런저런 잡생각이 든다.

수술 후, 부러진 나사가 팔꿈치 뼈에 여전히 박혀있는 망상이 머릿속에 맴돈다.


4인실.

같이 생활하는 곳이니 어느정도의 불편을 감수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새벽 2시에 최대볼륨으로 올림픽 중계를 보는 것까지 공동 생활의 인내 허용 범위에 넣어야할지는 잘 모르겠다.

저 분은 어제부터, 한껏 볼륨을 높인 전화 벨소리, 목청 높여 통화하기, 뽕짝 매들리 크게 틀어놓기 등 아마 청각쪽에 문제가 있으실 것 같다. 그래. 귀가 불편하신 분이겠지. 그래서 저러시는 거겠지. 다 이유가 있겠지. 라고 이해해본다.


수술 당일 아침.

아침밥은 먹는 둥 마는 둥. 대충 먹고, 양치했다.

오전 회진이 있다. 주치의가 병실로 찾아왔다. 오전 중(두시간 쯤 후에) 수술하고, 이렇게 저렇게 진행할 예정이라는 설명을 듣는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ㅇㅇㅇ님~ 수술 들어가실께요."

수술실로 간다는 통보를 저렇게 하이톤으로 친절하게 해주니 너무 고맙다.


침대에 누웠다. 기억대로, 침대에 누운 채 이동한다. 하늘을 보고 누우니, 천장이 다시 한번 움직인다. 형광등이 움직이고, 예의 그 서늘한 수술실로 들어간다. 따뜻한 이불을 덮어준다. 따뜻해서 좋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불이 아니라 핫팩이 십수개 달려있는 덮개였다. 환자의 체온 유지를 위해 고안된 듯 하다.)

의사가 이름, 생년월일, 수술부위를 나에게 묻는다. 

나는 혹시 몰라 "왼쪽 팔꿈치 입니다." 라고 최대한 명확한 발음으로 대답했다. (혹시 오른쪽 팔꿈치를 절개할까봐 무서웠다.)

"신경마취 합니다."

신경마취 주사는 바늘이 커서, 일단 왼쪽 어깨에 작은 주사로 1차 마취를 한다.

그리고 큰 주사를 가지고 초음파로 보면서 찌른다. 

"약 들어갈께요. 10, 20, 30, 40...."

약을 넣는 분은 용량을 크게 이야기하고, 마취의는 초음파를 보며 방향을 잡는다. 한참을 주사한다. 아프진 않은데, 어깨부터 따끔따끔 저릿저릿하다.


약이 퍼질때까지 기다린다.

왼팔에 힘을 줘도 들 수 없다.

조금 더 지나자, 몸 왼쪽이 안 움직인다.

정신은 또렷한데 움직일 수 없으니 불쾌하다.


신경마취가 다 되었음을 확인하고, 이제 수술 자세를 잡는다.

엎드려 누워서 팔을 올린다.

이제 시작이구나.


"재워드릴께요. 약 들어갑니다."

속으로 숫자를 세어본다. 하나,둘,셋.... 스물이 넘어간다.

어라 왜 잠들지않지? 이상하다?


눈을 잠깐 감았다 뜬 것 같은데, 다시 병실이다.

역시 마취의 힘은 대단하다.

나는 또 시간 여행을 했다.


맞다. 

핀. 

핀은 부러지지 않았을까?



https://brunch.co.kr/@dontgiveu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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