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서 Feb 28. 2022

부러졌지만 풀업을 하고 싶어요 8 (마지막)

왼쪽팔이 불에 덴 듯, 욱신욱신하다.

하지만 참을만 하다.


왼팔을 내려다보니, 두꺼운 붕대로 칭칭 동여져있다. 

그 이후 이어지는 몇번의 소독, 그리고 퇴원했다.

(수술까지 모두 2박 3일 입원이었다.)


이틀에 한번 집에서 스스로 소독을 하고 보호거즈(?)를 교체했다. 이번에도 담당의분이 꼼꼼하게 꿰매주신 덕분에 팔꿈치 수술부위는 벌어지지 않고 잘 버텨줬다. (아무래도 팔꿈치는 피부가 많이 늘어나는 부분이라 신경을 썼다고 말씀해주셨다. 이런 섬세한 부분에서 나는 담당의를 잘 만났다고 생각했다.)


2주 후 병원을 다시 찾았다.

수술부위 실밥을 제거하고 지난 1년, 치료의 여정을 마무리하러 왔다.

사람이 많다. 대기가 한 시간 가량. 괜찮다.

병원 대기실을 찬찬히 둘러본다. 오늘 다쳐서 온 사람. 이제 수술 일정을 잡는 사람. 다양한 환자들이 여전히 대기실에 모여있다. 수십의 인생과 사연이 대기실에 앉아 치료를 기다리고 있다. 정확히 1년 전 나도 그랬다. 시간은 어쨌든 흐르고, 아픈 일은 지나간 과거가 되어 나를 성장시킨다.


"ㅇㅇㅇ님 진료실로 들어가실께요~"

수술 부위 실을 제거했다.

"ㅇㅇㅇ님, 상처가 잘 아물었네요. 실밥도 다 제거했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다시 저 볼 일은 없으실 것 같네요. ㅎㅎ"

"고생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잘 지나온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마지막 진료가 끝나고 집에 가는길에 찍은 '발산역' 입구. 이제 다시 여기 올 일은 없겠지.


이렇게 나의 치료는 마무리되었다.

나는 이 1년이 넘는 과정을 겪으며 많은 감사한 일을 겪었다.


1. 정말 좋은 담당의를 만났다.

다정하고 친절하며 매우 상세하게 설명해주셨다.

말투가 조용하고 침착하여 매우 신뢰가 갔다.

나는 개인적으로 좋은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 만큼 훌륭한 인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비단 병원에서 뿐만이 아니라, 인생의 모든 상황에 적용된다. 내가 만난 주치의가 그랬다. 참 다행이다.

수술의 경과와 예후가 좋았으며, 꿰맨 부위도 신경을 써 주신 흔적이 역력하다.


2. 아내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아내는 내 수술 이전과 이후, 나를 최대한 배려해주었다. (심지어 이 병원을 찾아준 것도 아내였다.) 많이 힘들었을텐데도 불구하고, 집안일과 육아 등 여러 방면에서 희생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마음 편히 회복할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3. 매사에 조심하는 버릇을 들였다.

걷고, 어딘가 올라가고 내려오며, 달리는 등 여러가지 몸가짐에서 항상 조심하는 법을 배웠다. (움직이기 전 주변 확인은 필수다.) 골절은 아주 쉽고 빠르게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사고다. 나는 매사에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4. 팔다리를 편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배웠다.

팔, 그것도 왼팔 하나 뿐이었는데도 생활에 지장이 많았다. 사지를 올바로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며 감사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늘 감사해야 한다.


5. 걷기에 맛을 들였다.

아무래도 팔이 불편하니 뛰거나 격렬한 운동 보다는 조금 더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운동을 찾았고. 그게 바로 걷기 였다.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받은 일이다. 앞으로도 무릎과 발을 소중히 사용하며 오래 걸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6. 삶을 배웠다.

세상사는 뜻대로되지 않는다. 어떤 일을 당하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 일을 대하는 내 태도가 문제다. 앞으로도 많은 일이 생기고, 나는 헤쳐나가겠지만. 매사에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시큰둥하지만 객관적인 시점으로 이겨내고 싶다. 


+ 아 그리고, 핀은 하나도 부러지지 않고 모두 잘 제거되었다. 이 또한 감사할 일이다.


이 글의 제목이기도 한, '풀업'은 어떻게 되었냐면,

일단 매달리기를 조금씩 꾸준히 하고 있다. (언제나 무리는 금물)

제대로 된 풀업바까지 마련했다. 차근차근 해 나가면 실력이 늘겠지.

작년에는 왜 그렇게 얼른 풀업을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언젠간 나도 넓은 어깨를 장착한 멋진 중년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나는 여전히, 몸도 마음도 회복중이다.

팔은 부러졌지만 (이제 회복했으니) 풀업을 딱 1개만 하고 싶다.

회복하고 있으며, 운동할 수 있다는 것.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https://brunch.co.kr/@dontgiveup/30


매거진의 이전글 부러졌지만 풀업을 하고 싶어요 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