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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Aug 27. 2022

20220808 동네가 물에 잠겼다

기록한다


평소보다 비가 많이 내리는 저녁이었다.

아니, 내린다기 보다는 '쏟아부었다'라고 표현하는게 맞겠다.

KFC에 가서 치킨을 사올까, 편의점에 가서 과자나 사올까 고민하던 차였는데.

사오긴 글렀다. 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처음엔 그랬다.


창 밖으로 내다보니 (높은 층이라 제법 멀리까지 보인다.) 도로가 잠기기 시작했다.

비상깜빡이를 켜고 지나가는 차 옆으로 물살이 생긴다.

계속 지켜보기로 한다. (위험할 때는 '관찰'을 해야한다.)

어? 뭔가 이상하다. 상황이. 라고 생각하던 차에 차 한대가 도로에 멈춰섰다. 시동이 꺼진 듯하다.

뒤에 따라 오던 차들도 덩달아 멈춰섰다.

운전자는 차에서 내려, 허벅지까지 차오른 물에 들어가 차를 밀기 시작한다.(길 옆으로 차를 빼내려나보다.)

물이 들어찬 도로에 비상깜빡이 수십개가 어지럽게 점멸한다.

들이 붓는 비는 멈출 줄을 모른다.

이제 조금 무섭다.


혹시? 하는 생각에 지하 주차장에 내려가봤다.

전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차는 지하 3층에 잘 서있고, 물방울 하나 안보인다.

안심하고 그대로 올라왔다.


30분 쯤 지났을까. 옆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침수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내 친구들 단톡방을 통해 전해들었다.)

정전이 되고, 지하 최하층 주차 차량은 이미 침수되었단다.

다시 내려가봐야겠다.


현관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시끄럽다. 이게 무슨소리지.

폭포. 그래. 몇 달전 다녀왔던 천지연의 폭포 소리다.

여기는 아파트인데 폭포 소리?

엘레베이터 문 안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엘레베이터 룸 안 쪽에 폭포처럼 물이 쏟아지고 있나보다.

실제로 엘레베이터 문 앞으로 물이 마구 새어나오고 있었다.

엄청난 굉음에 이성이 잠시 마비됐다.


띵! 하고 엘레베이터가 도착했다. (작동은 하고 있었다.)

문이 열린다.

엘레베이터 안쪽은 형광등이 깜빡거리고, 천장에서 물이 쏟아지며, 이미 바닥은 흥건하다. 흡사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아무래도 타지 않는 게 좋겠다.


계단으로 걸어서 내려간다.


계단실 1층. 지하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계단실 지하 1층. 암전이다. (이때부터 휴대폰 후레쉬를 켜고 내려갔다.) 바닥에 물이 찰박찰박하다.

계단실 지하 2층. 발목 정도까지 물이 고여있다.

계단실 지하 3층.(아직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도 못봤다. 여기는 계단실이다.) 허벅지 높이까지 물이 차있다.

지금 이게 꿈인건가? 현실감이 떨어진다.


이때까지는, '아 여기는 계단실이니까. 좁아서 물이 차있겠지. 실제 주차장은 괜찮겠지.' 라고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상상을 하고 있었다. (사실은 그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싫었다.)


같이 따라온 아들이 그래도 가봐야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차를 확인해보고 주차 위치를 옮겨야 하는게 맞다는 의견이었다. 당시에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시다면. 절대 그래선 안됩니다. 지하 주차장 깊이 들어갔다가, 물이 급격히 차올라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사고 사례가 있습니다. 절대, 지하 깊은 주차장에 차량을 확인하러 들어가면 안됩니다.


아들을 일단 계단을 통해 집으로 올려보냈다.

(이 때부터 상황이 심상치않다고 생각했다.)


3층은 물이 너무 깊어서 진입이 불가능했다.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 주차장으로 진입. 차량이 오르내리는 길을 따라 지하 3층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정말 위험한 생각이었다.)


지하 2층으로 계단실로 올라갔다. 발목정도까지 차있는 물을 지나, 주차장쪽으로 걸어들어간다. 주차장 문을 여니, 마치 재난영화에서처럼 물이 계단실 쪽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흙탕물에서 악취가 난다.

미지근해서 더 기분 나쁘다.


2층에 주차한 차량들은 바퀴의 1/4 정도가 물에 잠겨있다. 그대로 걸어서 지하3층으로 향하는 차량 진출입로 쪽으로 향했다. 슬리퍼를 신고 왔는데 물 속에서 저항을 일으켜 걷기가 불편하다.

지하 3층으로 향하는 차량진입로.

불이 꺼져 어두운 지하층으로 발목 깊이의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려가고 있었다. 롯데월드의 ‘신밧드의 모험’이라는 놀이기구 실내와 비슷하다.(공포)


차량 진입로를 따라 걸어서 내려갔다.

지하 3층은 종아리 살짝 아래 정도 깊이다. (아까 확인한 지하 3층 계단실은 좁고, 물이 빠지지 않는 구조라서 허벅지까지 물이 차있었나보다.)

주차된 위치로 찾아갔다. 물이 조금씩 불어나는 게 느껴진다.

바퀴의 1/3 살짝 위로 잠겨있다.

내 차 도강 높이가 얼마더라. 50cm였나. 미리 좀 알아둘껄.


차를 빼야하나 잠시 고민했다.

그런데 어디로?

이미 강으로 변해버린 바깥 도로쪽으로 이동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설마 지하 3층까지 물이 찰까?

하지만 물이 차오른다면 가장 깊은 지하 3층부터일테니, 지하 1층으로 옮기는 것이 맞겠다고 판단했다.

차에 올라탔다.

시동을 켜고 물살을 가르며 이동한다. (실제로 물살을 가르는게 보였다.)


폭포수 처럼 물이 쏟아지는 지하 2층을 지나 지하 1층으로 갔다.


지하 1층은 난리였다.

외부에서 물이 계속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말 그대로 쏟아졌다.)

저 멀리서 차수판을 들고 뛰어오는 주민들과 관리소 직원들이 보인다.


적당한 곳에 차를 주차했다. 사실 더이상 갈 데도 없었다.

차에서 내렸다.

차 바퀴 절반 정도까지 물이 차올랐다. (밖으로 나갈 순 없었다.)

침수될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보험처리는 될까, 당분간 뭘 타고 다녀야 하나.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리속을 떠다녔다.


슬리퍼가 불편해서 벗고 맨발로 걷다가 플라스틱 조각에 발바닥이 아주 조금 찢어졌다.

(그땐 아비규환에 아픈지도 몰랐다.)


1층 진출입로에 설치한 차수판 저항선이 무너지면 엄청난 물이 쏟어져 들어올 수 있는.

정말 위험한 상황이다.

바깥쪽 도로는 이미 강물이 되어 어마어마한 흙탕물이 빠른 속도로 흐르고 있다.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하 1층 계단을 통해 걸어서 다시 집으로 올라왔다.

이미 새벽이었다.


그날 지하 주차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목격했다.


1. 초등학생쯤되는 자녀 둘(아들,딸)을 데리고 구경하듯 지하 주차장을 돌아다니는 가족이 있었다. 장화까지 신기고 아이들을 데려왔던데. 물이 갑자기 차오르면 어쩌려고 저렇게 위험한 생각을 했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2. 아내에게 고래고래 욕을 하며, 차를 어디 세워놨냐고 통화하는 아저씨를 잊을 수 없다. 소리소리를 치며 전화기에 쌍욕을 퍼붓고 있었다. '차가 물에 잠겼는데 어디서 뭐하는거야!! XX!!' 이런 식이었다. 댁에 돌아가서 사과 하셨을라나.

3. 차가 어찌될까 전전긍긍 차 옆을 떠나지 못하는 청년. 차는 벤츠였는데, 차가 혹시나 침수될까봐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직 할부가 많이 남아있나보다. 아마 그 친구는 거기서 그대로 밤을 새었을 가능성이 높다.

4. 두팔걷고 배수구 쓰레기를 맨손으로 걷어내는 아저씨. 지하 주차장도 배수구가 있다. 밖에서 들이치는 물에는 나뭇잎이며 이런 저런 쓰레기가 많이 섞여있었는데, 그것들이 배수구를 막아 물이 더 차오르고 있었나보다. 아저씨 한 분이 물속 깊이 손을 넣어 그 쓰레기를 다 걷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손이 물살에 빨려들어가 끼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5. 남편이 아직 안들어왔다며, 차를 좀 옮겨줄 수 있냐고 부탁하는 아주머니도 안타까웠다. 운전을 못하시니 차를 옮길수도 없고.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춰 부탁하고 계셨다. 모두 친절하게 대신 차를 옮겨주었다.

6. 사람들 앞에서 연설하는 아저씨가 인상깊었다. 아저씨는 웅성웅성 모여서 걱정하는 사람들 앞에서 '현재 내리는 비는 언제 그칠 예정이고, 이 아파트는 배수 펌프가 있으므로 이 이상의 피해는 없을 것이며, 현재 관리사무소가 위기 대응 프로토콜을 발동 중'이라는 여러 정보들을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맞장구를 치며 주의깊에 경청했다. (역시, 위기에는 이런 선동가가 인기를 끌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로,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치산치수(治山治水)는 치국(治國)의 기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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