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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Jan 05. 2023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다

왼손은 거들 뿐


중학교 1학년 시절, 키가 작았다. 많이 작았다. 키 순으로 번호를 부여받았는데, 10번대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한 반에 50명 정도 있었으니, 아주 작은 편이었다.


그러던 내가 2학년인가 3학년부터 갑자기 크기 시작했다. 농구를 많이 했던 것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그 당시 농구를 진짜 열심히 했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흙바닥 농구코트를 참 열심히도 뛰어 다녔다. 골대 하나를 가지고 두세팀이 농구를 하다보니, 공끼리 부딪혀 슛이 실패하는 경우도 많았다. (당시 학교 인프라라는게 그 정도로 열악했다.)


물론 내 농구 실력은 지금도 형편없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농구’ 그 자체가 좋았으니까.


당시 체육 시간에 농구 수업이 있었다. 농구를 잘하고 싶어서 열심히 들었다. 선생님이 슛 자세에 대해 가르쳐 주었는데 그 내용은 전혀 기억 나지 않는다. 선생님의 수업은 농구를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농구를 가르쳐준 교본은 따로 있었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왼손은 거들 뿐.' 이라는 대사를.



만화 ‘슬램덩크’의 이 대사 한 마디로 나는 슛 자세를 머리 속에 그려가며 연습했다. 멋지지 않은가? '이렇게 자세를 잡고 저렇게 공을 잡은 다음 어쩌구 저쩌구 해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왼손은 거들 뿐' 짧고 강렬한 설명이다. 레이업은 ‘놓고 온다’ 라는 문장을 기억했다. '놓고 오라'니,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가르침이다. 레이업도 만화로 배운 셈이다.


슬램덩크는 매달(격주였나 아무튼) 연재 되었는데, 슛 몇 번, 패스 몇 번 하고 한 회가 끝날 정도로 진행이 더디긴 했지만, 나는 그걸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슬램덩크


끝날 때 까지 끝난게 아니라는, 포기 하지 않는 자세.

승리를 향한 끝없는 도전과 노력.

서로 다른 성향의 선수들이 만들어가는 끈끈한 팀웤.

좌절을 넘어 결국 성장하는 캐릭터들.

열심히 노력하면 결국 ’할 수 있다‘는 주제 의식까지.

그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 없는 만화였다.


그런 슬램덩크가 2023년 1월 4일 애니매이션으로 개봉했다. 제목은 ‘THE FIRST SLAM DUNK’ 무려 원작자인 이노우에 다케이코가 각본/감독을 맡은 오리지널이다.



개봉 당일 관람했다.


'에이 뭐 설마 30년은 된 오래된 작품인데 별거 있겠어.' 하고 들어갔다.

하지만,

스케치 오프닝에, 시작한지 10초 만에 가슴이 뛰고 손이 뜨거워졌다.


줄거리는 언급하지 않겠지만, 원작자에게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수십년이 지난 이 상황에 리메이크 한다는 것이 쉽지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더군다나 요즘처럼 대부분의 영화 흥행 성적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말이다.

만들어 주어 정말 감사하다. 진짜다.

다시 한 번 그 벅찬 감동을 느끼게 해 주어 고맙다.


실제로 몇몇 장면에서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나왔는데,

아마 나와 같은 심정이었겠지.


처음 스타팅 5인의 등장을 그렇게 표현한 점.(이건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오프닝 음악을 첨부한다. 스타팅 멤버 등장의 전율이 다시 떠오른다. https://youtu.be/EEWVJ4RZ4Xg )

마지막 강백호의 ‘왼손은 거들뿐’이라는 대사를 그렇게 처리 한 점.(이건 스포일러라 말 할 수 없는 점이 안타깝다.)

멤버 그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비중을 배려한 점.

작화에 많이 신경 써 준 점.

음악에 공들여 준 점. (음악이 너무 좋아 솔직히 놀랐다.  음악만 들어도 당시 분위기가 떠오르고 가슴이 웅장해진다. 엔딩곡을 첨부한다. 나중에 언제든 바로 들을 수 있도록. https://youtu.be/EsJGbHJyXYc  )

영화의 마지막 20분. 꽉 들어찬 관객들이 숨소리도 내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박진감 있게 연출한 점.

모든 걸 다 떠나, 슬램덩크를 다시 만들어 준 점.

이 외에도 칭찬할 점이 더더 있지만, 자제한다.


영화가 끝나자 뭉클하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복잡하게 밀려왔다.


나는 비록 이렇게 나이가 들었지만,

슬램덩크의 그 멤버들은 여전히 그대로 최선을 다해 경기를 치러내고 있었다.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다고 외치며 드리블을 치고, 리바운드를 잡고, 슛을 던지고 있었다.

그들은 끊임 없이 성장하고 있었다.

과연 나는, 수많은 나날을 보내며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는지 반성했다.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다.



슬램덩크를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아니 슬램덩크와 함께 청춘을 보낸 분들이라면 관람을 추천합니다.

만듦새가 나쁘지 않아요. 솔직히, 훌륭합니다.


당신에게 영광의 날은 언제였습니까?


PS.

혹시 예고편이 궁금하시다면 다음 영상을 보시면 됩니다.

보고 가슴이 뛴다면, 예매하세요.

https://youtu.be/sdFIv-yogI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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