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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Feb 19. 2023

’다음 소희‘를 보다


마블의 수퍼히어로 영화 앤트맨이 모든 상영관을 뒤덮고 있다. 이런 와중에 좋은 작품이 개봉했다. 수준 높은 영화를 놓치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어야, 다음 좋은 영화가 또 나올 수 있다.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상영관을 찾았으나 없었다. 외딴 곳, 혹은 늦은 밤이나 평일 오전 뿐이었다. 이래선, 보란 말인가 싶다. 이렇게 좋은 영화가 또 묻히는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꾸역꾸역 찾았다.

코엑스 부띠크관. 적은 수의 좌석만 있는 고급 상영관인데, 주로 인디영화 등을 상영하는 것 같다. 잘 모르겠다 암튼. 그래도 상영관이 있는게 어디냐. 남은 좌석을 예매했다.



나는 이런 영화를 볼때 습관이 있다. 미리 좀 일찍 도착해, 입장하는 관객들을 유심히 살펴본다. 어떤 사람들이 이런 주제의 영화를 보는지, 앤트맨을 선택하지 않고 굳이 이런 작은 영화를 찾아오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얼굴의 특징을 잘 기억하려고 한다. 좀 다른 얘기를 하자면(갑자기?), 요새 관상에 관심이 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에서 담배를 피며 연기를 내뿜는 사람들, 침을 아무데나 뱉는 사람들, 거칠고 무례한 사람들, 약자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얼굴을 잘 기억해 놓으려 한다. 그 사람들의 삶의 궤적은 반드시 얼굴에 각인될테고, 그것이 관상이 되어 통계학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얼굴들을 잘 기억해 놓았다가 피하고 싶다.


아무튼, 들어오는 사람들의 면면을 잘 관찰했다. 굳이 이런 사회 문제를 다룬 작은 영화를 선택하고 시간을 내 찾아온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무슨 얼굴을 하고 있을까. 기억해 놓자. 그런 얼굴을 가진 사람과 친해지고 싶다. 노부부가 기억에 남는다. 머리가 하얀 두 분이 대기하는 쇼파에 나란히 앉아 차분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떻게 이 영화를 알고 찾아오셨을지 궁금했다.


이 영화는 2017년 1월 발생한, '전주 콜센터 현장 실습생 자살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https://m.pressian.com/m/pages/articles/152359#0DKW


의아했다. 고등학생이 콜센터에서 상담을 한다고? 왜? 한창 공부하고 친구들과 깔깔 웃으며 즐거워할 나이에 왜? 현장 실습이라하면, 특성화고에서 전공한 내용을 바탕으로 해야 하는거 아닌가, 설마 고등학교에 '콜센터 상담 학과'라도 있는건가. 그럴리가 없다. 또한 위 사건 내용을 보면, 한 콜센터에서 2014년에는 콜센터 팀장이 자살, 2017년에는 상담원이 자살했다고 한다. 이거 뭔가 잘못되어 있는거 아닌가? 문제는 해결된 걸까? 자세한 내용은 영화를 보면 알 수 있겠다.


영화가 시작되었다.

영화가 끝났다.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어떻게 제대로 된 어른이 한 명도 없냐'라는 거였다. 애들이 저렇게 당하고 있는데, 어떻게 도와주는 어른은 하나도 없고 죄다 지들 생각만 하고, 자기는 피해자인 척 남탓만 한다.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나도 그들이 만든 사회의 일원이니 공조하고 있는 걸까. 정말 저렇게 쓰레기들만 우글대는 세상인걸까. 국밥먹다가 펑펑 운 태석이가 북받쳤던 이유는 별거 아니다. '힘들면 언제든지 나한테 얘기해' 라고 말해주는 어른이 단 한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인간은 사회적 약자에게 잘 대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 음식점가서 종업원분들께 친절하게 대해야 하는 이유고, 콜센터 상담원분들에게 화내면 안될 이유다. 상담사분들은 아무런 죄가 없다. 전화를 이리돌리고 저리돌리고 고객을 최대한 귀찮게 해서 해약을 막는, XX같은 ‘인터넷 해지 방어’ 프로토콜을 만든 통신사가 문제인거지. 하청의 하청인 상담사분들은 그냥 그렇게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거다. 안그럼 경고,징계,감봉이다. 회사 내 인격적인 모독은 물론이고. 상담센터를 고용한 원청 업체의 비인간적인 대우와 압박도 이어질테지. 여러분, 상담센터 분들께 성질낼 필요 없습니다. 그 분들은 아무런 힘이 없어요. 그 분들은 대기업 직원이 아닙니다. 원청은 아마 모른다고 할겁니다.

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739251


노동부, 교육청 분들은 혹시 이 영화를 알고 계신다면, 꼭 제대로 검토 후 지시/감독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고등학생들이 '실습'이라는 명목으로 아무런 연관도 없는 공장,콜센터에 파견되어 고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도 모르는 '이면 계약서'를 쓰고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달 내내 야근특근을 하고도 100만원도 못받고 있습니다. 공장에서는 두드려 맞고, 콜센터에서는 폭언폭설을 듣고 펑펑울며 일하고 있어요. 18살 애들이 말입니다. 그럼 그만두면 되지 왜 그러고 당하고 있냐구요? 학교는, 실습 나갔다가 때려치고 돌아오는 학생들에게, 빨간 조끼를 입히고 쓰레기장 청소, 화장실 청소, 재활용 분리 등만 시킨대요. 선생님의 폭언과 폭설도 이어집니다. '그것도 못견디고 돌아오는 XX들' 이라는 플래그를 달고 괴롭히는겁니다. 학교 취업률 통계를 망쳤다나 뭐라나. 학교가 인력사무소도 아니고, 이게 말이나 됩니까?


배두나 배우님은 출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사회문제를 다룬 저예산 영화에 굳이 출연하지 않으셔도 될텐데, 이미 세계적인 스타임에도 불구하고 출연했다는 자체만으로 감사를 받기에 자격이 충분합니다. 연기는 당연히 훌륭하구요. 다른 많은 배우들이 비슷한 길을 걷도록 앞에 나서 주신 점,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 분명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영화 혹시나 우려하시는 분들께, 만듦새가 굉장히 좋습니다. 속도감 있는 전개에 지루할 틈이 없으며, 배우들의 연기도 굉장히 탄탄합니다. 감독의 역량이 그대로 드러난 좋은 작품입니다. 영화 자체로도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그러니 칸 영화제에 초청되어 비평가주간에 공개되었겠죠.


그러니, 꼭 관람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보고, 단 한 사람이라도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다음 소희는 없을테니까요.


https://youtu.be/wu9epe97B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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