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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Jun 27. 2021

부러졌지만 풀업을 하고 싶어요 1

도대체 왜 그랬지?

내가 대체 왜 그랬을까? 싶은 이상한 날이 있다.


화창하고 나른한 토요일 오후였다. 아내는 누워서 쉬고, 아들은 방에서 놀고 있는 그저 평범한 하루. 불현듯 정말 이상하게도, 나는 무슨 바람이 불어서 부엌 싱크대 찬장을 정리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없다.

찬장은 꽤 높아서(내 키가 작은 걸 수도) 뭔가 밟고 올라가야 원활한 작업이 가능할 듯 했다. 식탁 의자를 하나 싱크대 앞에 가져다 놓고, 올라갔다. 찬장을 열고 싱크대 위에 있던 그릇을 올렸다. 올리면서 정리했다. 같은 종류의 그릇은 잘 포개놓고, 다른 종류는 분리했다. 냄비, 플라스틱 용기 등등도 보기 좋고, 사용하기 편하게 정리했다. 흠. 만족스럽군. 하는 마음이 들었다. 찬장 문을 탁 닫았다. 이제 의자에서 내려가, 의자를 다시 식탁에 위치시키면 일은 끝난다.


그런데, '의자에서 내려가는 방법' 선택에서 실수를 저질렀다. 내 뇌는 '점프해서 내려간다.' 는 방식을 채택했다. '쉭' 뛰어서 '탁' 하고 착지. 뭐 의자는 별로 높지도 않아서, 신나는 일일 것 같았다. 가장 빠르게 내려가는 방법이기도 했다. 좋았어.


나는 점프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몸이 의자에서 떠올라야 하는데, 응? 아래를 봤다. 아뿔싸. 바짓단이 의자 손잡이에 걸려있었다. 나는 이미 의자 위에서 균형을 잃고 있었다. 넘어진다. 떨어진다. 급하게 주변을 살폈다. 뭐라도 잡을 것이 있으면 잡아서 균형을 되찾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 몸은 이미 절반은 기울어져 떨어지고 있었다. 머리부터 떨어지면 큰일이다. 턱을 최대한 당겼다. 쿵.


아프다.

어딘가 모르게 아프고 쑤신다. 바닥에 누워서 곰곰히 생각했다. 어디지? 괜찮겠지. 타박상 정도일까. 몸을 움직여본다. 머리도 움찔움찔, 오른다리, 왼다리, 오른팔, 왼팔, 오케이 이제 일어나 볼…. 응? 왼쪽 팔이 이상하다. 움직일 수 없다. 팔이 80도정도 굽혀있는데, 더이상 굽혀지지도, 펴지지도 않는다. (이상하게 아프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건 최악의 상황에서 내 뇌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겠지.) 가만히 누워서 떨어지는 순간을 복기해본다. 아.. 떨어지면서 팔꿈치로 바닥을 짚었나보다. 팔꿈치. 왼쪽. 이 와중에 ‘그래도 왼팔이라 다행이네’ 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그렇지 모름지기 사람은 늘 낙천적이어야 한다.


이미 아내와 아들은 '쿵'하는 소리와 내 '악'하는 단발마를 듣고 달려와 옆에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웃겨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너무 어이가 없으면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아내와 아들이 바닥에 누워 낄낄 웃고있는 나를 보고, 내가 머리를 다쳐 미쳤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만 한 상황이었다.


병원에 가야 할까?

아니야 이거 뭐 그냥 살짝 인대가 늘어난거겠지. (병원에 가긴 정말 싫다. 접수도 해야하고, 주사도 맞고 엑스레이도 찍을텐데.) 하지만 그렇게 합리화하기엔 팔이 굽혀지지도 펼쳐지지도 않는다. 아픈가? 가만히 감각을 집중해본다. 아프진 않다. 하지만 인간은 본능적으로 안다. '이건 심각한 상황이다.' 나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나 응급실 좀 다녀올께."

"왜 많이 아파?" 아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는다.

"괜찮아괜찮아, 혹시나 해서 확인해보려고 가는거니까 걱정하지마."

"조심히 다녀와요." 아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본다.


"ㅇㅇㅇ 병원 응급실 부탁드립니다." 택시를 탔다.

버스로는 도저히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가면서도 속으로 생각했다. 엑스레이 찍어야 할까? 귀찮은데.. 

에이, 인대가 늘어났거나 근육이 좀 놀란 정도겠지 뭐. 

명확하게 확인하면 좋지 뭐, 부러졌으면 이렇게 안아플리가 없잖아. 안그래? 괜찮을꺼야.

택시는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잘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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