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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Feb 19. 2022

부러졌지만 풀업을 하고 싶어요 6

'ㅇㅇㅇ님, 예약하신 병원 안내입니다.'

응?

갑자기 병원 예약 문자가 왔다.

내가 진료를 예약했었나?

ㅇ월ㅇ일 늦지 말고 병원에 방문해 달라는 자동 메시지였다.

나는 병원 예약을 한 일이 없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팔 수술후 1년이 지나 받는 정기 검진 이었다.

작년에 1년 후 예약을 미리 잡아놨었나보다.

아... 그게 벌써 1년이 되었구나.

(히스토리는 이 글에 https://brunch.co.kr/@dontgiveup/30)


맞다, 나 팔이 부러졌었지.


오랜만에 병원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여전히 사람이 많구나.

새삼 당시에 깁스를 하고 오고갔던 기억이 났다.


병원은 인산인해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부러지고, 금가고, 접질리고, 인대가 늘어나는 등 정형외과 손님이 많다.

엑스레이를 찍고, 오랜만에 담당의와 재회했다.

여기 올 때 마다 매번 하던 일.


"네, 뼈는 아주 잘 붙었고 이제 더 이상 사진 찍으실 일은 없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자, 그럼 이제 핀 제거 이야기를 해봐야죠? 바로 제거해볼까요?"

"네???"


내 팔에는 수술하면서 금속 플레이트와, 많은 핀이 들어가있다. 그걸 빼내자는 이야기다.

"1년이 지났으니 이제 제거해도 됩니다. 그대로 넣고 계시면 불편하시기도 하고, 혹시 다시 그 부위가 부러질때 위험할 수 있어요."

늘 그렇듯 그는, 친절하게 그림을 그려가며 찬찬히 설명을 해준다.

"네네."

당황스러웠다. 오늘은 경과를 보고 그냥 가면 되는 줄 알았는데, 다시 수술 결정을 해야할지는 몰랐다.

신경마취, 전신마취, 드릴 등의 단어가 빠르게 머릿속을 오갔다. 쓸데없는 상상력.

"일단 오늘은 그냥 가고, 다음에 다시 결정해서 오겠습니다."

"네네, 시간이 오래되면, 금속판 위로 뼈가 웃자라서 나중에 제거 수술할때 뼈를 깎아내야 할 수도 있어요, 빨리 제거하시는게 좋을 꺼에요, 최대한 3년 이내로."

맙소사, 늦으면 뼈를 깎아내야 한단다. 하지만 수술이 겁나는게 더 컸다.

"알겠습니다."


병원을 나와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면서, 아내와 통화를 했다.

"아니, 바로 수술 날짜를 잡고 오지 그냥 나왔어? 다시 수술 예약 하려면 또 병원 가야 하잖아."

아내의 질책. 맞네. 맞는 말이다.

역시 아내가 결단력이 있고, 추진력이 좋다.

나는 걷던 길을 멈추고 다시, 병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수술 예약 하려고, 다시 왔습니다."

이렇게 수술 날짜는 잡혔다.

(예약이 꽉 차서, 한 달 후로 잡혔다.)



입원 이틀 전.

입원을 위해서는 코로나 음성확인서가 필요하다. 근처 선별진료소로 갔다. 줄이 길다. 요새는 방역정책이 바뀌어, 신속항원을 하고 양성이 떠야  PCR 검사를 해준다고 한다. 확진자가 만명을 넘어가며 어쩔 수 없이 바뀐 정책이다. 그렇지,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일일이 PCR 검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100명 단위의 확진자 발생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관계자에게 '입원 예정 통지서'를 보여주니 PCR 부스로 이동된다. 인적사항을 기재하고, 지시에 따라 창구로 이동. 면봉을 코에 넣고 슥삭슥삭. 빨리 끝났다.


입원 하루 전.

오전 10시 코로나 검사 결과, '음성' 확인 메시지 수신.

수술할 수 있다고 기뻐해야 하는 걸까. 흠.


입원 일.

오후 입원이다. 회사에는 이미 반차와 휴가를 공유한 상태다.

이북리더, 치약칫솔, 수건, 슬리퍼, 충전기, 이어폰, 물티슈, 휴지, 종이컵 등을 챙겼다

이어폰은 에어팟을 챙겼다. (이건 잘못된 선택이었다. 병실 TV는 유선 이어폰이 필요했다.)


병원 도착.

"입원하러 왔습니다."

신분증과 코로나 음성확인서를 제출하고,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병실로 올라갔다.


병실에 짐을 풀었다. 요새는 '통합 간호 시스템(?)' 으로 특별히 보호자가 없으면 몇 분의 간호인께서 다수의 환자를 케어해주는 서비스가 있다. 나도 혼자 와서 대상자가 되었다.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고맙다.

엑스레이, 심전도, 혈압, 피검사, 소변검사 등등 수술 전 검사를 하고 다시 주치의를 만났다. 마취, 수술 방법, 수술 예상 시간, 우려되는 점, 입원기간 이후 관리 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여기서 '우려되는 점' 이 부분이 좀 인상깊었다.

뼈에 박아넣은 핀은 생각보다 얇다.

엑스레이 상에는 마치 건축용 철근처럼 굵게 보이지만, 아주 얇은 금속 나사를 박아넣은 것이다.

그리고, 그 핀을 제거하는 건 일종의 십자 드라이버로 스크류 나사를 돌려서 뽑아내는 것이다.

뼈가 붙어가며, 얇은 나사에 의도치 않은 하중을 주어, 나사에 금이 가 있을 수 있다.

이에, 핀을 뽑다가 중간에 핀이 부러질수도 있다.


???? 핀이 뼈 속에 부러진채 남는다고????

"그럴 경우 어떻게 빼내나요?"

"아, 그걸 빼려고 하면 이제 일이 좀 커져요. 해당 나사 구멍을 넓게 뼈를 깎아 더 파내려갑니다. 부러진 나사가 보일 때 까지. 그리고 빼내는거죠."

"그런 작업을 추천하시나요?"

"아닙니다. 보통은 그냥 뼈 속에 둡니다. 생활하는 데 아무 지장 없어요."


나는 그 의견에 동의했다.

뼈 속에 부러진 나사를 심어놓고 사는게 뭐 대수랴. 울버린은 뼈 자체를 금속으로 교체하기까지 했잖는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생님"

수술은 내일 오전, 나는 다시 병실로 이동했다.



https://brunch.co.kr/@dontgiveu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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