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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Aug 18. 2022

회사 다닐 힘도 모자란데 N잡이 웬 말이에요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란 말이죠.

입사하기도 전부터 (언젠가 본업이 되었으면 하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했다. 내 이름과 얼굴을 건 개인 채널을 운영했고,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어쩌면 그게 포트폴리오가 되어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취업을 한 게 기쁘기도 했지만 동시에 입사 첫날부터 퇴사를 꿈꿨다. 언젠가 회사 로고가 박힌 명함 없이도 먹고살 수 있게 된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탈출하겠다는 패기가 있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지속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특히, 나처럼 에너지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더더욱.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주말에 꿀 같은 휴식을 포기하고? 5년 전의 나는 내 개인적인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회사에 집중하겠다는 선택을 했다.


아니었으면, 피곤해서 회사도 제대로 못 갔을 거다. 한편으로는 내 역량과 가능성을 과소평가했던 건 아닌지, 너무 빨리 한계를 그어버린 건 아닌지 반대의 선택을 했던 비슷한 연차의 동료들을 보며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동시에 그 당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잘 선택했다는 생각도 든다. 회사만 다녀도 숨이 꼴 딱 꼴 딱 넘어가는데 N잡이라니. 당장 학생 때도 공강 시간마다 여자 휴게실에 가서 수면을 보충하던 나였는데, 남들 다 대외활동 2-3개씩 할 때도 늘 혼자 있는 시간 확보가 최우선이었는데 사이드 프로젝트라니. 사업 자영업이라니. 아무래도 일도 미숙한 사회초년생의 내가 감당하기엔 아무래도 피지컬리, 멘탈리 무리였을 것이다.


어쨌든 회사에 매진한 덕분일까? 보기에 따라서는 안정적(?)으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기도 하고. 최저시급에 가까웠던 월급도 꽤 많이 올랐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지난 5년 간 회사 생활은 아주 매우 많이 스펙타클했다.


그리고 그 5년 사이에 사이드 프로젝트의 종류와 수익 창출 방법도 정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개인 채널을 가진 인플루언서의 콘텐츠 자체가 돈이 되기 시작했고, 일반적인 광고, 브랜디드 콘텐츠는 물론이거니와 온라인 클래스, 개인 상담/레슨, 전자책, 굿즈, NFT 등 별의별 형태의 콘텐츠 연계 상품이 돈이 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돈을 엄청 벌었다는 이야기가 떠돌기 시작하니 이제 (언젠가 자신을 회사로부터 탈출시켜줄) 부캐와 사이드 프로젝트를 꿈꾸지 않는 직장인이 없었고, 오죽하면 직장인 2대 허언 '나 퇴사할 거야와 나 유튜브 할 거야.'라는 짤이 한창 돌아다녔다. 내가 놓쳐버린 기회를 신포도 취급하고 싶어서인지, 이미 기가 쭉쭉 다 빨려서인지 모르겠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저 취미 많은 평범한 직장인을 꿈꾸기 시작했다.


회사 다니기도 힘이 모자란데, 부캐에, N잡에, 메타버스까지 갔다가 또 거기서 벌어서 끝이 아니다. 경매든 코인이든 주식이든 열심히 모으고 굴려서 결국 경제적 자유까지? 오 마이 갓. 생각만 해도 멀미가 난다. 그럼 도대체 언제 쉬라는 건지. 그거 다 이루고 쉬려면 정말 관 뚜껑 닫아야 되는 거 아닌가.


이게 열정 페이랑 다를게 뭐가 있나. 아니다. 심지어 이건 열정 페이의 상위 호환이다. 열정 페이는 어쨌든 퇴근이라도 하지. 이건 진짜 지쳐 쓰러질 때까지 계속 일하는 거잖아.


믿고 기댈 곳 그런 건 처음부터 없었다.
살아남는 놈이 강한 놈이니까
각자 어떻게든 살아남자.
 
할 이야기가 없으면 지어내서라도
팔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던지
 
그것도 안되면 배달이라도 하고.


마치 전쟁통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는 기분이었다. 죽지도 않고 계속 살아나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보았고, 나를 포함해 함께 쫓아다닐 기력은 없지만 불안한 마음으로 자괴와 우울에 빠져드는 사람들도 보였다.


물론 와중에 뛰어난 균형 감각으로 자신을 갉아먹지 않으면서 건강하게 살아남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든 자신을 셀프 채찍질하며 힘겨워했다.


아무리 자본주의가 원래 무한 경쟁 사회라지만 타인과의 경쟁은 욕이라도 한 바가지 시원하게 하지. 나와의 경쟁은 모든 화살이 스스로에게 돌아와 꽂힌다. 해내는 사람이 대단한 거지, 내가 나를 다그치며 몰아치고 상처내면서까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당장 회사에서 받는 데미지 회복하기도 힘든데, 내가 나한테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고.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구조적으로 생기는 문제를 건조하게 바라보자고. 나를 지키는 게 최우선이라고.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회사 밖에서 새로운 일을 벌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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