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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Sep 14. 2022

언젠가 잘리더라도, 다니는 동안은 잘 다니고 싶은데

나와 회사 사이에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요?

이직한 지 꼬박 5개월이 지났습니다. 입사 전에는, 그래도 나름 업계에서 알아주는 대기업이니까 기존 프로세스에 맞게 '일'만 하면 될 줄 알았습니다.


오만이었습니다. 여전히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정의와 범위를 정하고, 기존 조직원의 불편한 시선을 적당히 모른 척하며 자리를 잡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그렇다고 관계를 망쳐서는 안 되는, 열심히 해도 욕먹고 안 해도 욕먹을 게 뻔한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겨우 5년 차인 데다, 대단한 경력을 갖춘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회사에 꼭 필요하거나 힘이 있는 리더가 있는 부서 소속도 아니니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아직 실무에서도 배울 게 많은데, 그전에 해야 할 제반 작업이 너무 막막하고 두려웠습니다. 게다가 저는 사적으로 친구들을 만나도 기가 쭉쭉 빨리는 극강의 내향인인데. 저 스스로를 지키면서, 회사에서 주어진 역할도 다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더라고요.


욕심부리지 않고, 타협하기로 했습니다. 저 혼자서는 조직에서 기대하는 업무를 커버할 수 없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추가 채용을 요청했습니다. 제 자리가 공고해지기 전에 추가 채용을 하는 것을 많은 분들이 걱정했습니다. 그래도 저와 회사 모두에게 필요한 일을 하기로 했어요.


나름대로 해야 할 일 중 우선순위를 정하고, 로드맵을 그려 그 일을 당장 잘할 수 있는 저보다 높은 경력의 팀원을 모셔왔어요. 이미 레퍼런스와 경험이 있는 분이 오신다면, 제 존재감은 줄어들 수 있어도 함께 일하는 분을 설득하는 과정이 훨씬 더 수월할테니까요. 있지도 않은 제 입지는 좁아질 지 몰라도 팀은 훨씬 더 빠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어제 드디어 새로운 팀원이 입사하셨습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결혼하셨다는 걸 보니 선배여도 한참 선배입니다. 같은 업계에서 오셔서 업에 대한 이해도 높으신 분입니다. 내게 인사에 대한 의사 결정권이 있는 순간에 나보다 윗사람을 뽑는다는 것. 정글과 다름없는 직장 세계에서 제 선택이 어떤 의미인 지 잘 알고 있습니다. 내 자리, 내 밥그릇을 스스로 걷어찬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팀이 꾸려졌을 때, 거기에 내 역할과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 바로 직전 직장에서 선배들의 자리싸움을 보며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너무 오랫동안 주어졌을 때, 신뢰를 저버리고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이란 걸요. 두려움에 잠식되면, 그 누구도 저를 구원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요.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새로 오신 분께 내어드리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잘해보기로요.


내 것이 아닌 것을 무리해서 욕심내지 않겠습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들고 있는 일을 내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겠습니다. 그 일을 섬세하게 잘해보겠습니다. 그 일에서 나름의 목표를 세우고, 실행하고 개선하며 나름의 인사이트를 모아보겠습니다.


그리고 멀거나 가까운 미래에, 오늘의 제 선택을 후회하게 된다면 저는 이 글을 다시 보며 마음을 다잡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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